집사의 장바구니엔 '가성비'가 산다

메추리알 대첩

by Anne H



집사는 장을 보러 가면, 항상 그람 당 가격이 얼마인지 궁금해한다. 세일 중이라고 붙은 물건을 신나게 집어가면, 어김없이 나오는 단골 질문.


"그람 당 가격이 얼마인데? 싼 지 비싼지 그람 당 가격으로 비교해야지~ 세일이 다 싼 게 아니야."


아니..! 맙소사. 이걸 굳이 그렇게까지 비교해서 사야 돼?.. 툴툴거리며 못내 다시 상품 정보를 확인하러 가는 나. 이것이 우리의 흔해빠진 장보기 레퍼토리인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물건을 구매하며 그람 당 가격을 따져본 적이 없다. 아 물론 부잣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면 너무 좋겠지만, 그런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유서 깊은 엥겔족의 후손이다. ‘식’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지출하는 것은 나의 지론이요,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8년 전부터 그런 나의 평온한 삶에 침입자가 등장했다. 그는 바로 우리는 재정을 도맡아 관리하는 나의 남편, 가성비 추종자 송 집사이다.





집사는 사사건건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딴죽을 걸 곤 했다. 그래도 연애 초반에는 내 눈치를 봤는지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물론,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 낌새를 보이긴 했지만.


"와, 대체 조각 케이크 한 조각이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이걸 꼭 먹어야겠어?"

"물은 다 똑같은 물인데~ 그냥 제일 싼 거 먹는 건 어때?"


그나마 위와 같은 제안으로 시작했던 집사의 잔소리는, 살림을 합친 이후 메추리알 전쟁을 통해 정점을 찍었다. 때는 4년 전, 케냐 나이로비의 어느 마트에서 반가운 메추리알 더미를 발견했을 순간이었다.


"오!! 여기서 메추리알을 팔다니!! 이거 사자! 사자!"


신난 나는 몸을 둠칫 두둠칫 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입에 쏙 들어와 여러 개 먹으면 더없는 행복감을 선사하는 메추리알은 나의 최애 품목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멀고 먼 아프리카 땅에서 메추리알이라니? 이건 금값을 하더라도 사서 먹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음식이 아닌가!! 하지만 집사는 어김없이 단칼에 나의 흥겨운 춤을 베어버렸다.


"계란이 더 싸잖아, 메추리알은 맛도 똑같은데 가성비 너무 떨어져서 별로인 것 같아."


나는 그가 휘두른 가성비 논리에,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그리곤 못내 아쉬운 마음을 남겨두고, 차에 탔다. 어쩌면 나의 무의식은 이미 그의 가정비 이론에 잠식당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고는 메추리알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오는 내내 두고 온 메추리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게 얼마나 비싸다고 가성비를 따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메추리알 찬양 춤까지 추는 나를, 꼭 좌절시켰어야 했던 걸까. 집 가는 길 내내 송 집사에 대한 미움과 원망만 깊어져갔다. 그리고 결국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즈음 메추리알 대첩이 일어났다.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야?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이 먹고 싶다는 음식에 가성비를 따질 수 있어?"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먹고 싶다고 하면 가성비가 떨어져도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간 송 집사가 가성비를 운운하며 나를 좌절시켰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엥겔족의 후손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다니. 송 집사는 당황한 나머지 어버버 대며 어줍지 않은 대답을 뱉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는 줄 몰랐지.

난 그냥 가성비 좋은 음식을 사는 게 우리한테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거지"


아니 와 진짜, 아직도 가성비 이야기를 하네? 집사의 대답은 이제 막 횃불을 밝히고 위험을 알리는 봉수대에 기름을 부었다. 기름의 힘을 얻은 봉수대 횃불은 이제 봉수대가 자리한 산까지 모두 활활 태워버릴 기세였다. 그날의 전투는 송 집사의 끊임없는 사과와 메추리알만큼은 가성비를 따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으로 휴전되었다.


그러나 난 그 이후로 메추리알을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집사는 눈치 보지 말고 사라고 하지만, 집사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 사는 건 흥이 안 나서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메추리알을 먹을 때마다 그때의 기분이 떠오를 것 같아 싫었던 걸까.


메추리알과 계란




어느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철퍼덕 바닥에 앉아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다재다능한 우리 집사는 나의 퇴근시간에 맞춰 밥을 차린다. 오늘의 반찬은 무엇인고~ 정갈하게 놓은 반찬그릇 위로 무언가 조그만 것들이 옹기종기 담겨 찰랑거린다. 반찬 그릇을 내려놓는 집사의 얼굴에 장난기가 스민다.


"어? 이거 메추리알 아니야?"

"이번에 장모님 댁 갔을 때, 얻어온 장조림이잖아~"


오 그렇구나! 엄마한테 얻어온 장조림 있었지. 가져오는데 급급해서 열어보지 못했던 반찬통을 이제야 열어본다. 시커먼 국물 위로 가득 떠다니는 메추리알. 고기보다 메추리알이 더 많은 장조림. 마음 저 깊은 곳이 괜히 아리다. 내게 줄 음식에 가성비 따위 생각하지 않은 누군가의 마음 때문 일 것이다. 집사는 머쓱하게 메추리알을 두 개만 먹고 손대지 않는다.


"왜 먹다 말아? 저기 통에 많으니까 오빠도 많이 먹어~"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먹어야지. 나는 마님이 즐겁게 먹는 것 만 봐도 배불러~ "


웃기는 밥상이다. 가성비를 지독히 따지는 사람의 사랑과, 따지지 않는 사람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음식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 집사는 장보기에 있어 내게 일부 '전권'을 주었다. 메추리알 대첩 이후에도 이어진, 몇 번의 후속 전투.

메추리알, 루꼴라, 망고, 초콜릿 등 많은 병사들의 희생 끝에 자유를 쟁취한 것이다. 이제 마님은, 당치 않은 가성비 이론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장바구니를 가득 채울 권력을 얻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8년이나 집사와 함께 한 나의 모습이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그람 당 가격을 따지고 있는 나. 말이 자유쟁취고 전권이지, 이제는 그냥 동기화된 또 다른 집사의 모습일 뿐. 하아, 그래서 그런가 나는 이제 메추리알을 스스로 사기가 너무 어렵다. 억울하게 그지없는 장보기.



그의 용서 못할 경제학이 내 인생에 스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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