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사를 소개합니다.
우리 집 만능집사를 소개합니다
우리 집에는 만능집사 한 명이 산다. 그의 별명은 백수. 백개의 손을 가진 남자라는 의미다. 그를 소개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지만, 한마디로 '만능집사'라 할 수 있다.
일단 그는 청결에 있어 매우 민감하다. 그 기준이 어찌나 높은지, 세스코에서 스카웃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기준만 높냐고? 아니다, 그에 따른 행동력 또한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다. 만약 식품안전 관련 직장을 다녔다면, 능력을 인정받아 꽤 높은 자리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으.. 갑자기 양복이나 유니폼을 입고 사무실에 있을 그를 생각하니, 닭살이 저절로 올라온다.
우리 집사는 만능 집사답게 많은 능력을 탑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그가 집사 역할에 최적임을 증명한다. 일부 특징을 말하자면, 그의 손톱은 언제나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집안일하는 사람의 손톱이란 원래도 깨끗한 게 맞지 않냐고? 놀라지 마라. 그는 발톱마저도 정갈하게 정리한다. 집안 곳곳을 누비며 정리하는 사람의 손발은 언제나 깨끗해야 한다는 놀라운 강박! 그 엄청난 생각에, 그는 정기적으로 스스로를 점검하고 가지런한 신체를 유지한다.
그것뿐이겠는가. 요새는 형광 머리끈을 무슨 분신 팔찌처럼 손목에 차고 다닌다. 웬 머리끈이냐고? 집사는 요즘 머리 기르기에 푹 빠져있다. 다만 머리카락이 집안에 뒹구는 꼴은 누구보다 싫어하니, 언제든 머리를 묶을 수 있는 팔찌가 필수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자랑을 하는 게 아닌가.
"봐봐! 나 이제 뒷머리까지 다 묶인다. 어때?"
지난달까지 뒷머리가 안 모인다고 칭얼대던 집사의 자랑. 그 자랑은 가끔 마님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나오게 한다.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집사의 지금과 닮지 않았을까. 아, 집사의 머리 덕분에 나는 가끔 예술가의 와이프로 오해받기도 한다.
"어머, 혹시 남편분이 예술하세요? 영화감독? 아니면 그림 그리세요?"
맙소사! 남자가 머리만 길러도 이런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니. 여자는 머리를 기르든 자르든, 직업으로까지 이어지기 힘든 것 같은데 말이다.
위의 특징 외에도, 집사에겐 집안을 돌보기 위한 특수 기능들이 몇 개 더 장착되어 있다. 많이 말하면 자랑이 되는 것 같아, 최애 기능 한 개를 설명해 보자. 그건 바로 '질서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집사의 손이 닿는 곳들은, 마법처럼 물건들이 제 자리를 지킨다.
'질서'를 지키려는 그의 본능은 가히 우러러볼 만하다. 나는 천성이 목표지향적이라, 일단 뭔가 하면 '뒷정리' 프로세스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썼던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잊어버리기 다반사! 그런데 집사는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 그가 나의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하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다.
집사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덕분에 나는 집에서 그 누구보다 편하게 목표 지향적 인간으로 살고 있다. 물론 둘의 이런 다른 점이, 초반엔 집사에게 꽤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은데, 어쩌겠는가? 집사도 먹고살아야 하는 걸. 어쩔 수 없이 그는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마님의 타고난 습성을 받아들이기로 한 듯하다. 아, 그렇다고 내가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집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뿐.
어쨌든 높은 청결과 질서에 기준을 갖고 있는 집사 덕에, 나는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집안의 물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세 들어 사는 사람처럼 말이다.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마루에서 과자를 먹고 일어날 때면 괜스레 눈치를 본다. 특히 집사의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날은 더더욱 그렇다.
"집사님,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요 별일 없는데, 좀 쳐지네요"
"혹시 감정 정리를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실까요?"
"반나절은 방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반차 쓰시는 걸로 처리할게요. 빨리 기분이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이럴 땐 조용히 방에 들어가, 할 일 하면서 집사의 기분이 나아지는 걸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하숙을 하거나 셋방 들어 산 적은 없지만, 주인집에 얹혀 산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주인의 기분을 살피며, 어쩔 줄 몰라하는 하숙생. 이러니, 가끔 억울한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집사와 함께한 지 벌써 8년. 집사가 없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8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마님의 직업 때문에, 격오지도 씩씩하게 나선 우리 집사. 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지금은 중남에 있으니, 가끔 주인행세를 해도 할 말이 없다. 개도국에서 사는 집사의 삶이, 잠시 달래질 수 있다면.
요즘, 집사와 나는 각자의 업무에 꽤나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특별해 보이는 우리 가족. 집사 남편과 여자 가장. 그래도 나는 그 모습이 꽤나 만족스럽다.
물론 집사가 파업을 하기도, 마님이 화딱지가 앉아서 삐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란 결국 그런 것 아닌가?
언제나처럼 오늘도 잔소리를 빼지 않고 늘어놓는 집사,
"이건 쓰시고 이렇게 두면 안되는데~ 그럼 나중에 또 못 찾는데~"
그럼 마님은 언제나 그렇듯 별생각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대답한다.
"네네~! 다음부터는 꼭 그리하겠나이다~!"
우리 집의 가장 흔한 대화,
서로의 '다름'을 넘어가는 지혜이자,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