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잔다르크

행복한 잔다르크가 될게요

by Anne H
언니는 잔다르크 같아요

3년 전,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마련한 신혼집에 집사의 친척동생 임 양이 놀러 왔다. 임양은 집사가 특히나 마음 쓰는 동생 중 한 명이었는데, 마님도 좋아하던 동생인터라 그녀의 방문은 꽤나 즐거운 이벤트였다.


아직 여름 기운이 가시지 않았던 9월의 어느 밤. 우리는 반질한 원목 장판 위에 4인용 간이식탁을 훤칠하게 폈다. 그리곤 베란다 한쪽 문을 활짝 열여 둔 채, 이유 없이 낄낄 거리며 불판에 삼겹살을 올렸다. 지글지글 올라오는 소리가, 깊은 밤을 뚫고 질주하는 귀뚜라미와 화음을 섞으며 방안 가득 울렸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고기를 뒤집으려고 촐싹거리는 집사의 손. 한없이 가벼운 그 손놀림 사이로 수다가 무르익을 무렵, 임 양이 술잔을 무겁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언니는 잔다르크 같아요"


잔다르크..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세계사, 국사, 사회가 싫어서 수학과 물리를 선택한 이과 출신 마님에게는 외계어나 다름이 없었다. 잔다르크? 프랑스 여자로 신의 계시를 받고 전쟁에 나섰다가 화형 당한 그 사람?.. 근황 토크하다가 잔다르크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잔다르크? 왜요? 내가 왜 잔다르크 같아요?"

"진취적이잖아요. 저는 남편이 살림만 하고, 제가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못할 것 같아요."


집사는 처음으로 고기를 뒤집던 집게를 내려놓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 윤정이는 잔다르크 맞지. 멋있는 잔다르크.






임 양이 떠나고 잔다르크에 대해 찾아보면서, 나는 이 단어가 지금의 삶, 여가장을 선택하기 위해 거쳐온 나와 엄마의 서사를 설명하기에 그 무엇보다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나는, 과거에도 현재도 잔다르크가 분명하다.


25에 나를 낳고, 36년이 넘게 가족의 삶을 보살피며 행복하게 사는 듯했던 엄마는, 스쳐가는 말로 이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너는 결혼하지 말고 네가 번 돈 너를 위해 쓰며 네 인생을 살아. 괜히 인생을 너무 힘들게 살지 마."


그런 엄마에게 나는 8년 전 어느 날 밤, 여가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허락을 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스스로 오랜 고민 끝에 마음을 먹었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의 승인을 얻기보단 앞으로의 계획을 공표하는 시간에 더 가까웠다.


엄마의 일대기에 이건 분명한 전쟁이었다. 주위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여자가 돈을 벌어 생계를 책임지는 삶을 본 턱이 없던 엄마는, 내가 세상물정 모르고 사랑에 빠져 겁 없이 뛰어든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 삶이 쉽지 않다고, 언젠가 네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닥치면 그제야 엄마 말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주변에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건 그런 이유가 있는 거라고.


나는 그녀의 오래된 편견과,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정복해야 하는 적군이었다. 엄마의 기세가 강해질수록, 나는 더 단단한 마음으로 무장해 맞섰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말하지 않았고, 눈물을 흘리기도, 또 서로에게 사정하기도 하며 6개월에 가까운 긴 전쟁을 이어갔다.


그리고,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하듯, 엄마는 끝끝내 내 뜻을 꺾지 못했다. 나는 기나긴 싸움을 종결시키기 위해 아빠를 만나 평화조약을 청했고


"후회하지 않겠어?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 네가 원하는 게 그거야?"


이렇게 딱 3개의 질문만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지난했던 전쟁을 끝내고, 2018년 10월 12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결혼이라는 평화조약을 맺었다.






엄마와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는 지난 7년을 집사와 함께 이리저리 구르며 잘 살아가고 있다. 여가장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나와의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끔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에서, 집사를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 아직도 입지 말아야 할 군복을 입고, 안 해도 될 전쟁을 이끄는 잔다르크라는 것을.


"송서방이 밥은 잘해주고? 반찬은 뭐 먹었어?"

"송서방이 얼마나 잘 챙겨주는데! 퇴근하면 과일도 깎아주고, 안마도 해주고, 만능집사야~ 내가 오빠 덕분에 일도 걱정 없이 하고 얼마나 편하게 사는데. 결혼 전이랑 똑같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여사의 목소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반된 마음이 섞여 있다. 안도와 기쁨, 불안과 못마땅함. 그 감정들은 마치 공중곡예를 하듯, 보이지 않는 전화선을 타고 하늘과 땅을 넘나들며 출렁거린다.





여전히 당신의 시대의 잔다르크와 싸우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자주 솔직하지 못하다. 가끔은 힘들다고, 회사고 뭐고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고 끝내 말하지 못한다. 엄마의 불안은 언제나 나의 힘들고 외로운 감정을 먹고 자라났기에.


문득 궁금해진다. 15세기의 잔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고 전쟁을 결심을 했을 때 엄마에게 어떤 말을 했을지. 그리고 얼마나 단단한 마음으로 그 전쟁을 이끌었을지.


나는 행복한 잔다르크가 되기 위해 오늘도 집사의 아침 배웅을 받고, 일상을 공유하며 네모난 식탁 위에 차려진 정겨운 반찬을 먹는다.


그리고, 기다리기로 한다. 행복한 일상이 담긴 사진을 보내고, 웃음 터지는 이야기를 전송하며, 기다림의 버튼을 누른다. 엄마가 결국 이 행복한 잔다르크를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길.


언젠가, '마녀'가 아닌, '용기 있는 딸'로 당신의 잔다르크를 바라봐 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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