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답은 '여가장'입니다

당신의 정답은 무엇입니까?

by Anne H


우리 집사는 가끔 내게 여가장의 삶에 만족하는지 묻곤 한다. 긴 하루의 끝, 목 끝까지 차오른 스트레스에 얼굴빛이 흑색으로 변하면, 허리에 손을 착! 올리고 호기롭게 외친다.


관둬, 관둬! 여가장 이제 그만해! 누가 우리 마님을 괴롭히는 거야? 이제 집사한테 그냥 맡겨!


그런 집사의 외침은 언제나 든든하다. 어찌나 당차게 외치는지, 꽉 막힌 코를 비집고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집, 하얀 대리석 바닥에 양말을 훌훌 벗어던지고 대자로 눕는다.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찬 기운은 언제나 여가장을 선택했던 나를 돌아보기에 참 좋다.





인생의 모든 답은, 내가 던지는 질문에 달려있다.


나는 시험을 볼 때마다 문제에 밑줄을 그으며 읽는 습관이 있다. 급한 성격 덕에 문제를 제대로 안 읽고 풀어서 틀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보기를 신중하게 고르면 무엇하나? 이 문제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던 것을. 제일 먼저 봐야 할 것은 언제나 보기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인생에 던지는 질문과, 그 답을 모아둔 문제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문제집이 있다면, 정말 불티나게 팔렸을 텐데.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책이 되어,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않았을까.


8년 전, 인생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에,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만으로 정답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참고할 그 어떤 문제지도, 정답지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어쩌면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나만의 정답노트를 꺼내보려 한다.


'그대여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수선화에게』)'




2018년, 집사와의 결혼을 고민할 때 내가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은 꽤나 복잡하긴 했다.


'당신은 이 시람과 8년을 연애했습니다. 그리고 곧 조만간 아프리카로 파견을 나가게 되어 3년을 각자 떨어져 지내던지 아니면 결혼하고 함께 나가든지 선택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자 당신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다만, 아래의 조건을 고려하여 답을 1개만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사항 : 보기는 따로 기재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잘 찾아보세요 )

(조건 1) 남친은 해외 나가면 현 직장을 관두고 나가야 합니다. 더불어 아프리카는 직장을 구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당신이 생계를 책임져야 합니다.
※ 향후 지속적으로 당신이 생계를 책임질 '여가장'이 될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조건 2) 케냐는 한국과 많이 떨어진 곳으로, 1년에 1-2번 밖에 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장기연애는 항상 장애물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한시간은 약 6개월 정도 주어졌는데, 체감은 더 길었다. 그간의 갈등과 고난을 글로 푼다면, 장편소설 3권을 거뜬히 쓸 수 있을지도. 여하튼 이 문제가 어려웠던 이유는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오답을 고를 확률이 매우 높다.)


언뜻 보면 명료해 보이는 이 문제는, 사실 엄청난 함정과 숙제를 내게 던지고 있다. 바로 「당신의 행복」이라는 부분이다. 아니 생전 '행복해!!'라는 말을 해봤던 게 언제였더라. 가장 최근에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술 마신 다음날 뜨끈한 콩나물 국밥 국물을 드링킹 했을 때. 쉬는 날 뒹굴며 좋아하는 옛날 크림빵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 그럴 땐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긴 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이런 고차원적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니.


그래서 그때, 정말 진지하게 배우자와 함께하는 행복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이 사람과 있을 때 느끼는 행복은 어떤 것일까? 이 행복은 다른 것들로는 대체될 수 없는 행복인가? 제한시간이 끝나갈 무렵, 다행히도 나는 그 당시 열심히 일상을 담아내던 블로그에서 그 행복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결핍이 온전히 채워지는 느낌이 들 때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K-장녀임과 동시에 어렸을 때부터 학구열이 높았던 부모님. 그 덕에 나는 항상 기대에 부응해야 했던, 인정욕구에 말라가는 나무였다. 그런 나무에 물을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애써 보여주지 않아도,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생떼를 부려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존재.


나는 확신했다. 그런 사람과의 동행만이, 울퉁불퉁 상처나 있는 내가, 이 세상을 데굴데굴 둥글게 굴러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란 걸. 그 사람과 함께할 때 채워지는 충만함은, 그의 어떤 직업적, 경제적 조건보다 내게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수많은 보기 중 '결혼' 그러니까 남편과 함께 떠나는 삶을 선택했고, 동시에 여가장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래서 만족하느냐고? 섣불리 답할 수 없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여가장'의 삶은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길에 가까워서, 때로는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내게 던지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만족'에 대한 나의 답은, 어쩌면 '여가장'으로서의 내 시간이 끝날 쯔음에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며 정해진 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세상에 보이는 모든 삶의 형태는 그저 보기일 뿐, 정답은 결국 나에게 달려있다.





요즘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여가장'을 선택한 나의 방향이 왜 오답인지 말해주는데 바쁘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누군가, 내가 어떤 '질문'에 이 답을 골랐는지 물어봐주길 기다린다. 우리 모두가 같은 질문을 갖고 있지 않기에, 똑같은 정답을 공유하며 살아가긴 어렵다. 어쩌면 당신에겐 내가 선택한 답이 오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당신의 질문은 무엇일지.



나는 내가 고른 정답이 참 마음에 든다.

내가 선택한 답을 끝까지, 나다운 문장으로 써 내려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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