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장의 며느라기
추억이 깃든 것들은, 언제나 다루기 어렵다. 시간이 담긴 모든 것들은 애틋한 이야기로 그득해, 신비로운 기운을 자아낸다.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그들의 깊이. 볕 좋은 날의 하얀 천막, 골동품 시장의 빛바랜 접시와 찻잔들은 속삭인다.
'나는 그냥 찻잔이 아니에요. 내겐 당신이 모르는 시간과 이야기가 있어요.'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줄 누군가를 위해 탱글탱글 빛을 내며 기다린다.
내게도 그런 것이 있다. 곱게 접힌 옅은 하늘 빛깔의 천 포대기. 케냐에서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울 때, 성큼 다가와 내게 손을 내밀었던 효언니. 언니는, 이 포대기로 딸 둘을 키우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고 눈을 반짝였다. 그리곤 언젠가 딸을 낳고 싶다는 내게 선뜻 선물로 주었다.
나는 그 보물을 차마 트렁크에 싣지 못하고 품에 안고 돌아왔다. 아이를 업은 채 노래를 흥얼거리며, 밤 산책을 나섰을 언니. 그런 언니의 황홀한 시간들이 돌돌 말려 온 것 같아서.
누구에게나 그런 물건, 그런 사람이 있다.
손때 묻은 지갑,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입고 나갔던 원피스, 남자친구에게 처음 받은 선물, 15년을 한 가족처럼 지낸 강아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20년 지기 친구, 30년을 부대끼며 살아온 가족.
결혼식 날, 나는 시어머니에게 양복을 곱게 입힌 35년, 당신의 세월을 선물 받았다. 그래서일까. 집사의 고집스러운 말투, 옷을 고르는 취향, 설거지를 하는 방식, 사소한 습관에서 묻어나는 당신의 시간을 받은 나는, 여전히 집사를 다루기 어렵다.
집사는 어릴 때, 속한 번 썩이지 않은 자식이었다. 무엇보다 집에 들어오면 엄마를 꼭 껴앉아 주는 딸 같은 아들. 그런 아들이 8년 전, 갑자기 결심을 굳히곤 말했다. 전업 주부의 길을 걷고, 또 한국과는 먼 곳으로 떠나겠다고. 그 말을 듣는 어머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머님은 며느리인 내게 무언가 물어볼 법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결혼식 전부터 몸이 아프셨고, 케냐로 떠나는 날 까지도 악화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셨다. 가을과 겨울 그 사이, 어머님은 아들을 떠나보내는 출국장 앞에 서계셨다.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그저 얇은 코트 사이, 얄궂게 삐져나온 검은 니트 소매만이, 어머님의 눈물을 위로할 수 있었다.
가정주부 아들을 둔, 60대 엄마의 마음. 나는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었다. 옛 고정관념을 홀라당 바꿔치기한 우리의 시작은, 인생 최대 고난도라 불리는 며느라기와, 그 시기를 임하는 며느리의 마음마저 바꾸어 놓았다는 것.
마님에게는 요상한 취미가 있다. 바로 ‘집사 사진 찍어주기’. 누가 보면 아들 성장기록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뭘 저리 남편을 찍나 할 수도 있다. 너무 사랑해서냐고? 글쎄 사랑해서라기보다,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어서라고 하는 게 맞을까.
"오빠, 좀 더 옆으로 가봐. 브이 해봐.
오빠! 어머님한테 영상 메시지 남겨봐.
아니 오빠~ 좀 더 다정하게 말해야지~"
집사는 귀찮음에 주리를 틀다 못해, 컴퓨터 방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재빠르게 사라진다. 행동 느린 집사가 꽉 조여맨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방으로 가는 모습은, 유튜브를 했다면 분명 썸네일 각이다. 그 도망이 어찌나 웃기는지, 누구라도 클릭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오빠가 행복해하는 모습, 우리가 함께하는 풍경, 함께 먹는 음식을 찍는다. 인스타도, 유튜브도 블로그 용도 아닌 이 사진은, 나의 시집살이 용이다. 멀리 있는 자식을 그리워하면서도, 행여나 우리가 불편할까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는 어머님. 그런 당신을 위해 나는 남편의 시간을 기록한다. 당신에게 떨어져 나온 시간이, 어떻게 자신만의 시간을 이어가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또 다른 시집살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시댁에 전화하기다. 나는 시댁에 전화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다. 이놈의 아들들은(연락 잘하는 아드님들 미안합니다.) 도무지 핸드폰을 들 줄 모른다. 부모님께 전화해야 할 시간이 되면 핸드폰이 10kg 아령으로 변신하는 건지, 연속 설정을 해놓은 알람처럼, 몇 번을 재촉해야만 운동에 나선다. 그러면서 내뱉는 망언
"우리 엄마는 연락 이렇게 자주 안 해도 괜찮아~ 엄마 신경 안 써~"
"자주는 무슨 자주야! 2주에 한번! 지구 반대편에 살면서 이것도 못하냐!!"
저절로 걸걸한 호통이 나오는 마님. 만능집사의 공감능력과 감정예측 기능에 버그가 걸리는 순간이다. 왜 똑똑한 사람들도 부모 앞에서는 버그가 더 쉽게 걸리는 걸까. 무슨 불변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백신 없는 이 버그덕에, 나는 매일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더하고 있다.
"아들~ 요새 뭐 하고 지냈어? 운동하니? 공부는 안 하니? 거기 날씨는 어떻니?"
"아들 머리 묶었네, 못 보던 티셔츠네, 얼굴이 좋아 보이네. 아픈덴 없고?"
핸드폰 화면을 통해 집사를 보는 어머님의 눈망울이 빛난다. 새벽이슬을 머금고 맑게 반짝이는 초롱꽃이 어머님의 눈을 닮았다. 그 방울방울에 맺혀 반사되는 그림자 속에 집사의 얼굴이 액자처럼 남아있다.
때로는 무거운 한숨을 쉬시기도 한다. 집사가 별로 재미없어 보일 때, 그냥 평소처럼 잘 살고 있다고 무심히 이야기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누구도 내게 주지 않은 나만의 시집살이를 시작한다. 혹시나 집사가 나와 함께 해외에 와서 고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커리어가 끊겨서 삶이 지루한 건 아닐지, 그리고 혹시 그런 모습에 어머님이 날 미워하진 않을지.
당신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은 이유 없이 내게 고맙다고 때론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손사래를 치며 환하게 웃고, 집사에게 어색한 어깨동무를 건다.
"어머님,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오빠, 진짜 잘하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씩씩하게 외치기도
"어머님~ 제가 더 고맙죠! 이렇게 귀엽고 따뜻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쵸? 어머님 동의하시면서~"
오지랖을 부려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마지못해 '맞다! 맞아~' 하며 아이들처럼 손뼉을 치고 웃는다. 그 웃음으로 우리는, 때로는 아쉽고, 때로는 기특한 그리고 때로는 외로운 서로의 시간을 굽이굽이 넘어간다.
나의 시집살이는 어쩌면 아주 쉽다. 집사를 꼼꼼히 사랑하며 당신의 소중한 아들을 지키는 것.
남편에게 차곡차곡 담긴 당신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어, 나는 오늘도 집사를 더 많이 사랑하기로 한다. 그 사랑으로 당신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며 나만의 며느라기를 보낸다.
어쩌면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집사를 걱정할 사람. 그래도 쉽게 티 내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때때로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할 줄 아는 당신.
그런 당신의 시집살이는 참 어렵다. 참 못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