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건 늘 흥미진진해

에필로그

by Anne H




"솔직히 말하면, 내겐 얘기할 만큼 흥미로운 게 없어" 여우가 말했어요
"솔직한 건 늘 흥미진진해" 말이 말했습니다.

-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이 대목을 펼쳐서 읽었다.


수필을 쓰는 건 두껍게 입었던 옷을 하나씩 벗는 것과 같았다. 양말이나 장갑을 벗는 건 쉬웠다. 다음엔 코트를 벗었다. 가벼웠다. 카디건을 벗으려니 안에 대충 챙겨 입은 반팔이 거슬렸다. 반팔을 벗으려니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속옷이, 다음은 빼지 않은 살들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글을 쓰면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내게는 마치 나를 벗겨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이러다 발가벗게 되면 어떡하지. 물이 머리를 적시고, 허리를 타고 흘렀다. 쏟아지는 뜨거운 생각에, 거울에 김이 서렸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손을 쫙 편채 거울을 문질렀다. 나를 보기 위해서.


수필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지난 15년간, 나는 같은 질문을 했다.



내 이야기는 특별할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내 마음을 긁고 갔던 문장들을 떠올려본다. 그 작가를. 작가의 책들을. 그리고 그 안에 이야기를. 내가 울고 웃었던 대목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솔직했다. 솔직해서 마음에 닿았고, 그래서 재밌었다. 담담하게 자신의 약한 점을 적어 내려간 문장. 남들에게 욕먹을 수도 있는 모습을 그저 보란 듯 내보인 누군가.


그래서 나는,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기 위해, 솔직해지기로 했다. 하지만 솔직해지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떨 땐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여드름이 난 얼굴을 컨실러로 지울 순 없었다. 그 순간 소설이 돼버릴 테니.


지난 12편의 글을 쓰며, 부지런히 솔직했다. 솔직하지 못할까 봐 썼던 글을 또 읽고 고쳤다. 남편의 이야기를 함께 쓰며, 더욱더 조심했다. 누군가의 인생을 글에 담는다는 건, 엄청난 일이니까. 엄청나다는 표현 말고는 적당한 표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글을 쓰며, 그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엄마의 잔다르크'를 쓰고 나서는, 하루 종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남편과 함께 집 옆 슈퍼를 향해 걸어가는 길이 혼미했다. 이 정도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마치 오래 준비한 시험을 치고, 합격통보를 받은 것 같았다.


어떨 땐 글을 쓰며 울컥해 눈물을 참았다. 또 어느 날엔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내 글을 바라봤다. 한번,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나는 과거를 오갔다. 잊었던 감정이 올라왔고, 힘들었던 생각은 떠났다.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했던 시간.

거짓을 거둬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지난밤들.


후회와 슬픔, 환희와 기쁨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 나는 남았고. 아마도 우리는 계속 남을 것이다.






소리 없이,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난 한 달 반의 시간, 남편과의 이야기를 쓰면서 부단히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남편과, 응원을 아끼지 않은 동료, 그리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해준 친구, 지인분들께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이 의미 있어지도록, 좀 더 용기 내어 벗어보겠습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기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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