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괴로운 이유

위태로운 당신의 5첩 반상

by Anne H



이 여사(마님의 엄마)는 여행 전날이면 부엌에서 떠나질 않았다. 요리왕 비룡이 될 것도 아닌데, 아침 댓바람부터 대회 준비라도 하는 걸까?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뚝딱뚝딱.


"엄마, 내일 아침 비행기 타야 되잖아. 이제 그만하고 짐 싸."

"야, 생각해 봐. 나 없는 동안 5일 동안 뭘 먹고살겠니."

"아이고, 별 걱정을 다하셔. 요새 다 배달되고, 외식하면 되지."

"사 먹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차라리 이게 속편해."


이해할 수 없는 여사님의 행보. 아니 우리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속 편하게 궁시렁 대는 사이, 이여사는 맞춤형 밑반찬 6개를 거뜬히 만들어낸다. 아빠가 좋아하는 두부조림, 내가 좋아하는 멸치 볶음, 동생이 국물까지 말아먹는 장조림.


친구와 약속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신발장 중문을 넘어, 별밤지기의 목소리가 느릿느릿 걸어 나온다. 그리곤, 뒤이어 들리는, 무리수가 잔뜩 뿌려진 화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식탁 의자에 코트를 대강 걸치고, 부엌을 바라본다. 낯익은 타파통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여사의 노래를 감상한다.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 뾰루지가 난 인덕션 4형제, 될 대로 돼라 널부러진 조미료 식구들. 그리고 그 중심에, 목적을 달성하고 혼자만 신나 열창하는 우리 집 이여사가 있다.


그래서일까. 어디론가 나갈 때면 비룡으로 변신하는 그녀 덕에, 나는 계속계속 배가 불렀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그녀의 넓디넓은 오지랖을 놀렸다.



그땐 몰랐다. 그게 사랑이었다는 것을.







예전엔 회식이 꽤나 즐거웠다. 특히, 가끔 찾아오는, 상사 없이 오롯이 동료들과 하는 회식이란!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을 공짜로 얻은 느낌이랄까. 메뉴 선택에 있어 이성보단 직감, 머리보단 마음의 소리를 따를 수 있는 날. 그런 회식이 싫어진 건 집사의 '위험한 5첩 반상'을 목격하고 나서부터다.


애초에 집사와 나는 '끼니'에 대한 기준이 달랐다. 내게 밥 한 끼는 살아가는 즐거움이요, 다가오지 않은 선물이었는데, 집사는 그런 나를 신기해했다. 밥을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나를 보면, 가끔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


"그렇게 행복해?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해?"


그렇다. 집사의 삶에 음식이란 '먹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런 그가 그나마 신경 쓰는 끼니가 있다면 그건 '마님과 하는 밥상' 뿐. 그러니 혼자 먹는 밥상에 대해서는 논하는 것 자체가 입이 아플 지경이다.


우린 연애 때부터 밥때면 뭘 먹었냐고 물었다. 왜냐고? 마님은 늘 궁금했다. 떨어져 있는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서 무얼 먹고 사는지. 나는 정성스레 찍어놨던 그날의 소중한 끼니를 전송한다. 반숙 노른자와 함께 영롱한 빛을 내는 비빔국수, 한입 먹고 아차 싶어 소스를 애매하게 덮은 돈가스 같은 것들을. 그럼 집사는 못 이긴 척, 먹다만 밥을 대충 찍어 보냈다. 그리곤 같이 의미 없는 쌍따봉을 날리며 낄낄 거렸던 우리.


그런 집사가, 결혼 이후 사진 보내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깜박 속아 넘어갈 뻔했다. 너무 배고파서 사진 찍는걸 깜박했다. 어제저녁에 남은 걸 먹어서 굳이 안 찍었다. 집에 있는 거 먹었는데 뭘 굳이 찍어서 보내냐. 어떨 때는 5첩 반상을 차려 먹었으니, 걱정할 것 없다며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면 마님은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5첩 반상?


"그래서, 오늘은 뭘 먹었다는 건데?~"

"아니, 그냥 잘 차려 먹었어. 집에 재료도 많은데 뭘 걱정해."

"그러니까~ 그냥 궁금해서 그래. 아니 집에 밑반찬도 없잖아."

"밑반찬이 꼭 있어야만 밥을 먹나?"

"그러니까 뭘 먹었냐고, 5첩 반상이면 반찬이 5개나 되는 건데!"

집사가 입을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분명했다.


"뭘 먹었냐면. 진짜 영양가 다 챙겨서 먹었어!

삶은 계란, 방울토마토, 오이, 김, 김치, 밥."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5첩 반상인데 왜 익힌 요리가 없단 말인가. 아 삶은 계란이 하나 있긴 하구나. 근데 그거 빼고는? 그렇다. 집사는 매일 점심을 이렇게 먹고 있었던 것이다. 계란이 없는 날은 참치캔, 토마토가 없는 날은 양배추. 5첩 반상의 진실이 베일을 벗었다.


"아니 오빠, 너무하네. 이렇게 먹으면 영양실조야."

"영양실조가 왜 걸려? 원물을 제대로 먹는 게 건강한 거야. 계란으로 단백질! 야채랑 해조류까지."

"아니 진짜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혼자 먹을 때 굳이 뭘 차려먹어~ 같이 먹을 땐, 제대로 차려 먹잖아."

엄마도 그랬다.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도 친할머니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번거롭게 뭘 차려 먹냐고. 그냥 있는 거에 대충 먹어도 상관없다고. 오히려 한 끼 간단히 먹는 게 속편하다고.


그런가 보다 했다. 별로 속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집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마음 한구석이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구석에 뾰족한 절벽이 생겼다. 그 절벽은 내가 회식을 할 때면 이유 없이 다가와 나를 찔렀다.


손님들과의 회식. 소복이 쌓인 시금치 위에, 두툼한 연어조각이 말갛게 웃는다. 그러나 나오는 건 한숨뿐. 평소에 집사와 먹지 못한 메뉴가 나오면, 위가 바람 빠진 풍선이 된다.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입맛 두절. 그리곤 생각한다. 집사도 연어 좋아하는데, 이런 고기 안 먹은 지 오래됐을 텐데.


개인의 먹는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해의 경계 밖이다. 먹는 것이 하루의 행복을 좌우한다 믿는, 마님의 동반자에겐 있을 수 없는 일.







나는 주말이 되면 집사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의 영역을 침범한다. 유튜브에서 '즐거운 기분 믹스 1'을 크게 틀고, 보라색 앞치마를 두른다. 양파를 볶고, 감자를 썬다. 간장을 조리고, 익힌 나물에 참기름을 버무린다. 뜨거운 열기가 부엌을 가득 채울 때쯤, 찬장에 높게 쌓였던 타파통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보며, 슈퍼히어로가 된다. 이해 불가능 5첩 밥상에서 그를 구출해 내는 히어로.


그리곤, 자랑스럽게 나와 다그치듯 당부한다. 오늘 이런저런 반찬을 해서 넣어두었으니, 어떤 건 빨리 먹고, 어떤 건 덥혀서 먹어야 한다고. 그럼 집사는 못 말린다는 듯 왜 사서 고생을 하냐며 도리어 큰 소리를 친다. 큰 소리를 치는 집사는 우습다. 3일 뒤, 비어있는 반찬통들이 그 호통이 얼마나 가벼운지 증명할 것이기에.




어느 날 집사가, 부엌에 서서 반찬을 하며 힘들다고 징징대는 나를 보고 말했다.


"안 해도 된다는데 자꾸 왜 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나는 어느새 엄마를 닮아 오지라퍼가 된다. 안 해도 된다는데, 시켜 먹어도 되는데, 그냥 알아서 잘 먹을 텐데, 자꾸만 요리왕 비룡이 되었던 엄마. 그놈의 오지랖은 어떻게 승계가 되는 걸까. 엄마는 여전히 그 오지랖을 버리지 못했고, 아마도 나도 그럴 듯싶다.


다음 주 예정된 회식이 2번. 나는 집사의 5첩 반상과 싸우기 위해, 오늘도 변신한다. 그 만의 슈퍼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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