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집사의 고백

나를 마음껏 써도 돼

by Anne H
나를 마음껏 써도 돼



우리 이야기는 곧 남편의 이야기 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집사는 내게 가장 두려운 독자였다. 글 한편, 한편이 집사에게 보내는 고백이 되었다. 그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나의 마음은, 회를 거듭하며 한 겹 씩 여지없이 벗겨졌다. 그래서 나는, 꾹꾹 눌러둔 고백을 터트리고 도망친 소녀처럼, 언제나 집사 몰래 연재글을 올렸다.


집사는 나의 고백에 섣불리 답하지 않았다. 종종, 글 위로 차곡히 쌓이는 하트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보였을 뿐. 그러던 지난, 11화 연재가 끝난 어느 늦은 밤, 그는 축 늘어진 손을 앞 뒤로 휘휘 흔들며 말했다.


"나 어제도 방울토마토 익혀서 먹었는데! 원물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던가?"


처음으로 글에 대한 의견을 던지는 그의 질문에, 나는 어느새 슈퍼스타K 지원자가 된다. 당황한 지원자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을 어버버 거린다.


"오빠가..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분명 얘기했던 것 같은데..?"


언제나 나의 손끝에 쓰인 그의 모습은, 내 기억 속 사실일 뿐.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진실과는 멀 수도 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우리 이야기를 쓰긴 했지만, 확인받지는 않았던 기록들. 그래서 나는 제멋대로 나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물었다. 내가 쓴 글들 중, 혹시 집사가 납득하기 어려운 진실이 있었는지.


집사는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답했다. 마님과 집사의 이야기를 보며, 다시 돌아보게 된 시간들이 좋았다고. 어떨 땐 과장도 있는 것 같고, 정확히 이렇게 말했었나? 싶은 부분도 있지만, 진실이 아니었던 적은 없다고. 그제야 나는 꼬옥 쥐었던 마음을 놓았다. 이야기 속의 우리가, 서로의 진실이었다는 안도와 함께.


그리고 그는, 예고도 없이 나의 고백에 답을 했다.


"나를 마음껏 써도 돼. 나는 윤정이가 쓴 글 속의 나를 보는 게 즐거워. 살아있는 내 과거를 보는 듯해서"


남몰래 기다려온 대답. 그의 이야기가 저벅저벅 내게 걸어왔다. 내 이야기가, 곧 그의 진실이라 말하는 집사. 그제야 나는 결심한다. 그를 마음껏 쓰기로.


내게 허락된 사치. 그 중심에 그의 고백이 있다.







집사는 글을 읽으며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자신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집사에게 당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지 물었다. 집사는 늘 그렇듯 장난스럽게 뜸을 들였다. 그리곤 '우리의 삶'을 우선시했던, 나와 다를 것이 없다 했다.


"그땐, 같이 있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후회는 없어"


그래서 6화 연재글('나의 정답은 여가장입니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이유로 다른 방향을, 그러나 결국 같은 정답을 택했다고. 다만, 뒤에 이어지는 요리 아바타 이야기나, 내가 반찬을 하는 모습들을 돌아보며 후회도 했다고 한다. 좀 더 신경 써서 먹었다면, 마님이 그렇게 쉬는 주말에도 반찬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그리고 평소에 멋진 아이디어로 더 맛있는 서프라이즈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입이 트인 집사는, 얼굴이 점차 붉어지더니, 신난 듯 말을 이어갔다. 진로상담이나, 월급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걱정이 됐다고. 본인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찾지 않는 사람이나, 배우자의 노력을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비추어질까 봐. 나는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 때 내게 말하지 않았냐고. 그럼 내가 좀 더 글을 들여다보거나, 오빠와 상의할 수도 있었을 텐데.


"글을 쓰는 윤정이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 시간을 그대로 두고 싶었어.

피곤해하면서도, 식탁에 앉아 밤늦게까지 글 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더라.

자기 글을 쓰고, 읽으며, 찡그렸다가, 흐뭇해하다가, 미소 짓고 낄낄 거리는 그 모습이 재밌어."


내가 그렇게 즐거워했었나. 언제나 내가 보는 모습들을 써내기에 바빴던 나. 내 모습을 관찰한 집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나를 묘사한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남편은 '집사'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어 했다. 그간 집에서 몇 번 부르긴 했지만, 매일같이 부르는 호칭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주는, 앞으로 그냥 본인을 집사라고 불러달라고. 그 호칭이 친근감 있고 뭔가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남편이 글 속의 집사를 만나 악수를 청한다. 서로를 알아본 둘은, 이제 하나가 된다.






집사에게 물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집사를 어떤 사람으로 보면 좋겠는지. 어떤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집사는 평소답지 않게 바로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이럴지 모르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고, 넘나들며 살고 있는지, 그게 더 잘 보였으면 한다고.


그리곤 이런 말도 해도 되나? 하면서 글 쓰는 당사자인 나보다, 더 수줍게 말했다.


"우리 글을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좋겠어. 하트도 많이 눌러주고, 감상도 같이 나누고"


나는 집사가 바보 같다고 느낀다. 바보 같은 집사는 언제나 솔직해, 거짓말을 못한다. 나는 그 말까지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하다고 했다. 뭔가 창피하다고 해야 하나. 쓸까 말까. 집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달렸다는 듯이. 그리곤 할 말은 다 했다며, 의자를 쑥 집어넣고 홀연히 떠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면 보호기가 켜지기 직전, 나는 결국 그의 소망을 쓰기로 한다. 집사의 진실을 쓰는 것이, 나의 창피함보다 중요하기에. 내 글 속 집사의 모습이, 언제나 그의 진실과 가깝길. 자신을 마음껏 써도 된다는 그의 고백이 헛되지 않길 소망하며.


그리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는다. 창 너머,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 사이로 노을이 진다. 구름에 번진 태양은 수만가지 색으로 퍼져나간다. 우리의 이야기도 누군가의 마음에 이렇게 번질 수 있을까.


나는 잠시 멈춰 뒤돌아 걷는다. 수평선처럼 끝없이 펼쳐진 그 길 위에, 아직 못다 한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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