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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Mar 21. 2024

고참잘 멤버 모집합니다

 나와 강은혜는 ‘고참잘’이다. 고참잘은 고통을 참 잘 참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입단 커트라인이 꽤 높은 바람에 아쉽게도 멤버는 아직 2명뿐인 소규모 그룹이다. 후참잘처럼 이름부터가 입에 착 붙는 이 모임은, 말 그대로 고통을 잘 참는 스스로를 자화자찬하며 탄생했다.


 은혜는 나를 ‘병장님’이라고 부르는, 94년생 작가 후배다. 우리는 2년 동안 레귤러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친해졌는데, 무뚝뚝한 군인 같았던 은혜가 낯을 푸는 데에는 정말이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은혜가 정말 웃기고 솔직하고 예쁜 친구라는 건 아직도 해를 거듭하며 점층적으로 깨닫고 있는데, 특히 남을 배려하고 자기계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게다가 술을 겁나게 잘 먹고 힘이 겁나게 세다. (정말로 겁이 난다는 말이다.) 은혜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빵빵이를 쥐락펴락하는 옥지처럼 굴지만 일할 때는 누구보다 듬직한 정의의 용사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에 최선을 다해 공감해주고, 정작 자신에게 고난이 닥쳤을 때는 기본 3개월은 묵혀두고 참다 참다 터지고 마는, 은혜는 그런 친구다. 은혜는 정말 잘 참고, 본인의 에너지를 최대로 쥐어짜내며 일한다. 아무리 쥐어짜도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덜 마른 행주도 은혜가 짜면 물이 뚝뚝뚝 떨어질 것이다.


 <진격의 거인>을 좋아하는 은혜는 나에게 2년 전 ‘리바이 병장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때 나는 무안의 한 삼겹살집에서 잠에서 덜 깬 채로 답사를 하고 있었는데, 피곤해서 짙어진 나의 다크서클이 리바이 병장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기운 없이 양파 김치를 씹는 내 허름한 낯빛을 은혜는 놓치지 않았다. “잠시만요, 언니.” 은혜가 검색해서 보여준 리바이의 퀭한 눈은 거울 속에서 자주 보던 익숙한 그것이었다. 너무 웃겨서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은혜는 관찰력이 뛰어나다. 얼마 전에는 리바이 병장이 자신의 몸을 버려가면서 제자들을 구해주고, 나중에 거인들이 사라지고 나면 휠체어를 탄 채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준다면서 그 모습에서 나를 떠올린다고도 했다. 도대체 나는 얼마나 잘 참아온 걸까. 어딘가 으쓱하면서도 멋쩍다.


 우리 고참잘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참는 데에 익숙하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독사들이다.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가 아니면 병원을 거부하고 (혼자 두 발로 응급실을 찾아갈 정도면 비교적 멀쩡한 것으로 간주), 행여 응급실에 가서 수액을 맞아도 다시 회의실에 돌아와 일을 하겠다는 (수액을 맞는 순간 몸이 회복된 것으로 간주) 의지와 책임감이 있다. 한 번은 둘 다 촬영장에서 발목을 다친 적이 있는데, 나는 족구를 하다 발목을 접질려서 인대가 늘어났고 은혜는 넘어져서 깁스를 했었다. 그러나 나는 태연하게 “나 체인지!” 라고 최대한 덜 절뚝거리며 소품박스 뒤에 숨어 하루 종일 몰래 발에 파스를 뿌려댔고 은혜는 마치 깁스가 무쇠다리라도 된 듯 아무렇지 않게 촬영장을 휘젓고 다녔다. 당연히 발목 때문에 열외를 받거나 일을 게을리 하는 일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게 자신의 발목보다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 아픈 발로 답사도 가고 촬영도 하고 대본도 썼다. 답사는 눈으로 보고 촬영은 머리로 하고 대본은 손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마인드로. 어금니가 깨지는 한이 있어도 이를 악 물고 꽉 참는 미련함, 그게 고참잘의 덕목이라면 덕목이었다.


 고참잘은 곤란한 것들을 감내하고 안 되는 것들을 되게 하며 발전하고 자극을 받는 다소 이상한 성장캐들이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이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이라도 일단 임무를 맡으면 최선을 다한다. 은혜가 천둥과 비바람이 치는 무인도에서 삽으로 땅을 파면, 나는 잠이 부족해서 대기실에 혼자 쓰러져 있다가 응급실에 다녀온다. 숙취에 범벅이 되어 있어도 스튜디오 대본 92장은 거뜬히 써낼 수 있고, 비가 내려도 회사 앞에서 다 같이 발야구 시뮬레이션을 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훌륭한가. 사실 방송국 제작진이라면 이 정도의 가벼운 무용담은 수십 개쯤 갖고 있다. 우리는 피 끓는 전우들이다. 대한민국 예능이 누군가의 소중한 수명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참다가는 하얗게 타들어가 사라질 것만 같다고 느끼던 시기에, 우린 체력을 부지런히 헌납하며 깨달았다. 무작정 참는 것은 오히려 멍청하고 무능력하다는 사실을. 더 오래, 더 제대로 일 할 수 있으려면 나의 건강과 권리부터 챙겨야 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명제를. 그래서 나는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은혜도 아프면 병원에 간다. 나는 은혜가 괴로우면 함께 괴롭다. 그래서 싫으면 좀 싫다고 하고,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응급처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참고 해내버리면 다른 어느 누구도 참을 수 있다고, 참게 해도 된다고 인식하는 시스템적 대물림이 나는 싫기 때문이다. 잘 참는 사람은 그 고통을 알기 때문에 누군가 참고 있는 꼴은 못 본다. 그래서 유독 은혜에게 참지 말라고 말한다. 나 역시 참을 수 있는 것과 참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있다. 옛날에는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참았다면 요즘은 하고 싶은 걸 잘 해내기 위해 ‘적당히’ 참는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고통을 트로피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존나 멋져’ 라는 말로 나르시시즘을 만끽하면서. 이제 그걸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고참잘의 최고참이 되어 있었다.


 은혜는 가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병장님에게 지혜를 구한다며 전화를 걸어오곤 하는데, 서로 별 말 안 한 것 같은데도 늘 끊을 때쯤 보면 한 시간 이상 훌쩍 지나있다. 그저께는 2시간 42분이나 떠들었다. 나는 통화 하는 내내 두유도 만들고 오버워치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사과도 깎아 먹었다. 은혜의 이야기는 그게 고민거리일지라도 라디오처럼 가만히 듣기 좋아서다. 은혜는 참을성만큼이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한데, 그 때문에 상대방이 고마움을 모르거나 은혜의 감정을 아예 몰라줄 때가 있나 보다.


 “우리는 참으면 그만이지만,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게 돼. 지금 눈감아주지? 이래도 되는 구나, 하면서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똑같이 할 거라니까? 그 책임은 방관한 우리에게 있어. 무수히 많은 제 2의 피해자들을 위해 대신 싸워준다고 생각하고 사명감을 띄고 해결해.”


 나는 은혜에게 모두가 함께 거치카메라로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었다. 보이지 않는 관객이 있다고 생각하면, 등 뒤에 은혜 편인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은혜는 한참을 더 떠들다가 둘 다 운동 갈 시간이 다 되어 헬스장에 가기 위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만년 이등병일 것만 같던 은혜는 생각보다 의젓하고 결단력 있게 문제를 해결했다. 꾸역꾸역 참을 줄만 알던 은혜가 조금 더 앞발을 내딛은 것이다. (왠지 앞발이라고 쓰고 싶다. 우리의 기세는 사자와 다름없으므로.) 그래서 나는 은혜를 일병으로 진급시키는 것을 승인하기로 했다. 나 역시 고참잘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어깨에 별도 달 것이다.


 고참잘은 겨우 두 명 뿐이지만, 둘이서 상당히 많은 사람의 몫을 해내기 때문에 딱히 부족하다거나 초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어디선가 춥고 어두운 곳에서 홀로 고통을 참고 있는 가여운 영혼을 발견하게 되면, 그런데 그의 눈동자에서 강렬하고 비범한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우린 그를 영입해 최고의 전사로 키워낼 것이다. 관심이 있는 용사들은 언제든 머뭇거리지 않고 문을 두드려 주길 바란다. 참고로 우리는 둘 다 술자리에서 후배에게 뻐큐를 받아 본 경험이 있다. 은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나는 “씨발 뭐야” 라고 짧게 정색했다. 각종 하극상이나 집단 린치를 경험했거나, 고강도의 업무도 비인간적으로 소화해내는 고급인력이라면 고참잘 입단 서류전형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강은혜 일병의 생일이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은혜에게 트레이닝복 세트를 선물하며 오래 오래 늙을 때까지 서로 떠들고 배우고 응원하자고 말해주었다. 은혜 역시 나의 그릇을 닮고 싶다며 내가 있어 든든하다고 답해주었다. 고참잘은 이렇게 앞으로도 서로를 엄호하고, 새로운 고통이 발생하면 용맹스럽게 돌파해나갈 것이다. 오늘도 충성이다.



[작가의 말]

대수쓰는 오늘로 완결입니다. 더 많은 글들과 함께 책으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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