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가수 매니저님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언제 한 번 얼굴 보자는 말로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음을 알기에 대뜸 ‘날짜 몇 개 주세요’라고 먼저 들이댔다. 막방이 끝나면, 여행을 다녀오면, 설 연휴가 끝나면… 과 같은 가정법들은 고갈되기 마련이고 무엇보다 말과 얼굴만 동동 떠다닌 채로 마주칠 때마다 ‘바쁘시죠, 언제 한 번 봐야 하는데’ 라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긴 싫었기 때문이다.
장소부터 메뉴, 날짜, 시간까지 정할 것들이 많았다. 유독 농담과 너스레로 칠갑을 하면서 돈독해진 케이스지만 아무래도 일을 하면서 만난 사이라 녹화나 리허설, 회식 때만 봤을 뿐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사전 데이터가 부족했다. 날짜와 장소는 내가 제안했지만, 메뉴는 곤란할 정도로 어려웠다. 어차피 나는 소식좌인 편이고 음식에 대해 큰 집착이 없다. 결국 나는 아무거나 정말 다 잘 먹는다는 말을 세 번쯤 반복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정말로 아무거나 다 잘 먹을 자신이 있고, 그와 내가 딱히 메뉴가 중요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나는 비겁했다. 암묵적으로 나는 그에게 메뉴 선택을 전가했을 뿐이었다. 그래놓고 발 뻗고 며칠째 수월하게 잠을 잤다. 역시나 매니저님은 약속 하루 전 날 나에게 한정식 집 링크를 보내왔다. ‘작가님 여기 어떠세요?’ 얼마나 깊고 오랜 과정이 있었는지는 상관없이 그 링크를 찾아 보내기까지의 수고로움에 깊이 감사했다. 무조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얘기했다. 우리는 메뉴가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다음에도 맛있는 걸 먹겠지만 서로 부담은 가지지 맙시다. 그럽시다.
가끔 손질하는 나의 머리와 손톱을 전적으로 맡기는 부원장님, 원장님들도 그렇게 ‘아무렇게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들은 이제 나에게 더 이상 “어떻게 해 드릴까요?” 라고 묻지 않는다. 미용실에 사진을 가져가 비슷하게 해 달라고 말하는 것을 워낙 쑥스러워하는 성격이라 정확히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운데 (마치 내가 그 ‘머리’가 아니라 ‘얼굴’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예를 들면 ‘손님 이건 웬디라서 가능한 스타일링이에요’라는 괄호 속의 말을 듣게 되는 것을 혼자 상상하기 때문.) 그 분들은 알아서 자르고 케어해 주시고, 알아서 색을 골라주시고, 나는 그 모든 선택이 내 마음에 쏙 든다. 집에서 혼자 미용가위로 앞머리를 짧게 그어 잘라버린 자국이 있으면 요즘은 짧게 다듬고 싶다는 마음을 반영해 잘라 주시고, 동그란 모양의 손톱이 좀 지겨운가 싶은 생각이 들면 여지없이 스퀘어를 추천 받는다. 역시 전문가의 센스와 노하우란 대단한 것이다. 이렇게 오랜 경험이 누적되어서 나는 방문할 때마다 얘기한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왔어요. 원장님이 추천해주시는 걸로 할게요.’ 단발을 고집하던 내가 머리를 조금이나마 기를 수 있게 된 것도 나의 변덕과 참을성을 알아채 준 부원장님의 스타일링 덕분이고, 손톱 색이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것도 네일 원장님의 컬러 조합 실력과 남다른 어른스러움, 사업정신, 책임감 덕분이다. 나는 그래서 그냥 그들과 그들의 선택을 맹신한다. 정말로 그 분들이 나의 모든 외형을 마음대로 바꿔 놓아도 괜찮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취향이 없고 아무거나 괜찮은 걸까. 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단지 아무 생각이 없거나 그저 남에게 선택을 떠넘기는 사람들도 물론 존재하지만, 나에게 ‘아무거나’는 무수히 많은 경험과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물도 나에게 나쁜 영향이 없음을 인식해서 랜덤을 선택해도 안전할 때 (어딜 가도 평타 이상은 하는 상암동에서 메뉴를 고른다거나), 혹은 경험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에 전문적 배경지식을 가진 타인에게 결정권을 위임할 때 (미용실이나 네일숍에서, 혹은 맛집을 너무 좋아하는 쩝쩝박사 친구들과의 만남 등),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지금 당장 내가 닭 칼국수 못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 소 곱창에 소주가 너무 너무 먹고 싶다고 할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나 아무거나 다 좋아 괜찮아. 곱창 먹을까 그럼?’
역시 대충 나온 답변 같아도 그 뿌리를 해체해 보면 굉장히 까다롭고 빈틈이 없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거나’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취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쟨 아무거나 다 잘 먹어’는 틀린 명제다. 우린 취향이 확고하다. 아무 노래나 일단 틀라고 해도 결국 뒤에 ‘신나는 걸로’ 라는 가사가 붙는 이유도 다 이런 숨은 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은 다소 무책임하다. 너무 무책임해서 유혹적일 지경이다. 다 좋다는 말로 에둘러서 남에게 검색과 결정을 떠넘긴다. ‘점심 뭐 시킬까요?’ ‘아무거나 좋아.’ ‘생일선물 뭐 갖고 싶어?’ ‘나는 다 좋아!’ ‘몇 시에 볼까?’ ‘아무 때나!’ 결국 이 대답이 반복되면 상대방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야 그럼 새벽 3시에 호의동에서 볼래? 아, 호의동? 그게 어딘데? 어 평안북도 창성군 의산리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야. 결국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는 아무거나 괜찮다는 이유로 당장 새벽 3시까지 월북해야 할 수도 있다. 약속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는 성격이라면 2시 45분까지.
방송을 만들 때라면 ‘아무거나’는 더더욱 위험해진다. 우리는 아무나 섭외할 수 없고, 아무 곳에서 찍을 수도 없고, 아무 말을 할 수도 없고, 아무렇게나 편집할 수도 없으며, 아무 텍스트나 자막에 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음악, 아무 스태프, 아무 보도자료, 아무 조명, 아무 음향, 아무 카메라, 아무 소품…. 모든 것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배경은 여기로 할까요? 동선은 이게 좋겠죠? 테이블에 테이블보를 깔까요? 헬멧에 골프채를 붙여서 대결할까? 발가락만 써서 과자를 먹는 게 더 힘들겠지? 수십, 수백 가지의 선택을 거쳐야 무사히 송출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좋은 결정권자가 필요하고, 그 결정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의 좋은 의견이 필요하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최선’에 ‘수렴’할 수 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땐 두 발자국 뒤에 숨는 나도, 방송을 할 땐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그 선택은 나만의 이익이 아닌 다수가, 그것도 몇 만 명이 보는 영상을 좋은 콘텐츠로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더 좋은 것’을 ‘선택’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호불호를 알 수 없는 메인 피디님의 우유부단함에 지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무 의견이나 말해 보라고 해놓고 정작 아무 말을 하면 어색한 공기가 누전차단기처럼 목구멍을 틀어막기도 한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선택을 멈추지 않는다. 그 선택 하나를 위해 모두가 고민하고, 설득하고, 주장하고 인정한다. 나 역시 더 좋고 알맞은 것들을 골라내기 위해 애쓴다. 대본을 쓸 때는 MC 말투로 소리 내어 읽어가며 멘트를 고치고, 9박 10일 촬영 동안 막내들의 출퇴근 시간 교대는 언제가 적당할지 결정하고, 어떻게 찍어야 시청자가 더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을지 시뮬레이션을 계속한다. 그렇게 겨우 선택을 마치고 나면 또 다른 질문과 고민거리들이 매일 같이 책상에 놓여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 질문들은 더 많고 무거워진다. 만약 내가 그 때마다 ‘아무거나 좋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 모두의 퇴근이 늦어졌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일 할 때 보면 이렇게까지 명확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진 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나는 원래 아무거나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쩌면 ‘선택’에 필요한 기(氣)를 모두 일에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이 에너지가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적인 나’는 다 괜찮다며 고민을 멈춰버린 것 같다. 상대방의 제안과 배려를 손가락으로 튕겨내며.
나는 그래서 앞으로 조금은 나의 욕망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싫어하는 것을 배제할 것이다. 물론 이따금 아무거나 좋을 때도 있고, 결정을 양보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을 타인에게 전가하거나 모른 척 하지는 않기로 결심한다. 아무거나 좋다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선택이겠지만, 그걸 빌미로 상습적으로, 유해하게 써먹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주 금요일 저녁 약속에는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