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함의 극치인 프랑스 파리의 치명적인 단점이라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관광객만큼 많은 소매치기 일 것이다.
나는 다행히 단 한 번도 유럽의 그 어느 도시에서도 소매치기를 당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속상하다.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프랑스 파리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로 기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리의 소매치기들에게서 살아남은 나의 노하우들을 소개한다.
1. 소매치기 유형 및 수법
먼저 파리에서 활동하는 소매치기 및 사기꾼들의 유형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사람들만 피해도 소매치기를 당하는 확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1) 집시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 슬픔의 선율이 담겨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낭만적이고 매혹적인 집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파리의 현실(?) 집시들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낭만과 애환을 상징하는 민족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파리의 집시들은 주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등 동유럽에서 건너왔으며
상당수는 소매치기나 구걸 등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집시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아무래도 관광지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 관광객들이 무조건 집결하는 에펠탑이나 몽마르트르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주로 10대 소녀들로 구성되어 있고 (나이가 든 여성들도 있다)
적게는 2~3명 혹은 5명~10명씩 몰려다니며 서명을 받는데
그녀들이 내미는 서명지를 보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거라며 얼마를 기부할 건지 써달라고 한다.
그렇게 정신을 쏙 빼놓는 사이 한 사람은 망을 보고 다른 사람은 소매치기를 한다.
그리고 기부하겠다고 써 놓은 금액을 당당히 요구한다. 0유로를 써도 물론 돈을 달라고 한다.
어떤 행색이라고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앞서 말했듯 이들은 몇 명씩 몰려다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소녀들을 마주쳤을 때는 'Non'(영어의 No)이라고 얘기하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나는 실제로 소녀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길래 뒤돌아서서 다시 돌아갔던 적도 있다.
그녀들에게 어떤 위협을 가하는 것은 좋지 않다. 불리한 건 외국인인 우리들이니까.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다. 소녀들은 말 그대로 청소년이기 때문에 경찰에 잡혀가도 훈방조치된다고 한다.
집시 소녀들은 조직과 연결되어 있기도 해서 일정 금액을 벌어오지 못하면
폭행을 하거나 밥을 굶기는 등 학대를 당한다는 말을 프랑스 지인분께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돈은 노동을 통해 정직하게 벌어야 하는 것이다.
어른들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나이임에도 그러지 못한 삶을 사는 건 안타까우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연민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2) 몽마르트르 팔찌단
몽마르트르의 하이라이트 샤크레쾨르 대성당을 올라가려면 크게 계단을 이용하거나 리프트를 이용하면 된다.
몽마르트르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어 수백 개의 계단을 두 발로 꾹꾹 눌러 밟아 올라갔다거나
혹은 다른 루트를 통해 대성당까지 올라갔다가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다 보면
'아프리카 스타일'이라며 실팔찌를 채워주려는 흑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팔찌단이다.
출구는 없다. 내려오는 길이 양 쪽으로 있는데 그 양쪽 다 집시 소녀들과 이 팔찌단이 공존하며 길을 막고 있다.
예전엔 팔짱을 끼고 내려간다던가 싫다는 표현을 하면 더 이상 붙잡지 않았는데
최근 갔던 몽마르트르에서는 그들을 피해가려는 나를 붙잡으려 따라온 적도 있어서
도망치듯 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몽마르트르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꽤 자주 가는 곳이므로 항상 다른 루트를 이용해 올라가려 한다.
가장 높은 언덕에 있으니 거기를 향해 올라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하는 나만의 작은 모험이다.
최근에 갔던 파리에서는 구글맵이 알려주는 길로 갔는데
대성당 아래에 있는 어느 후미진 공원의 오솔길로 나를 안내했다.
오솔길로 들어서는 순간 삼삼오오 모여있던 팔찌단이 나를 향해 일제히 일어났다.
그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그대로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결국 리프트가 있는 곳까지 가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안전하게 대성당까지 올라가고 내려오는 방법은 리프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교통카드나 티켓이 있어야 리프트를 탈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소매치기나 팔찌단이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도 방심을 금물이다.
관리자의 눈을 피해 리프트에 함께 타는 소매치기가 있을 수도 있다.
결국 나와 내 돈과 귀중품은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
하지만 소매치기와 팔찌단 때문에 아름다운 몽마르트르의 풍경을 놓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몽마르트르를 안전하게 올라가는 또 하나의 방법은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몽마르트르를 올라가는 초입쯤 되는 동네에 샤크레쾨르 대성당의 그림이 그려진 정류장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샤크레쾨르 대성당까지 올라오는 버스를 타면 되는데 단점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걸어 올라가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지하철역에서 6유로 정도를 내고 꼬마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다.
꼬마 열차를 타면 샤크레쾨르 대성당을 올라갈 때까지 영어로 그 주변의 가이드를 들을 수도 있다.
3) 눈감고 코 베어가는 사기꾼 유형
알면서도 당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야바위꾼이 아닐까 생각한다.
왠지 돈을 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야바위꾼 사기의 시작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게임에 참여해보려 하면 그들은 절대 10유로 20유로의 적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두 배로 준다니까~ 50유로쯤 걸어봐~'
그러면 돈을 딴 것처럼 연기하는 바람잡이가 등장해 50유로 정도를 걸 것을 부추긴다.
처음 한두 번은 돈을 따게 해 줄 수 있다. 그래야 더 큰 돈을 걸 테니까.
그러나 결말은 모두 똑같다. 돈을 모두 잃고 만다.
동화처럼 공주와 왕자가 결혼해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같은 결말은 야바위꾼에게서 절대 얻을 수 없다.
그러니 야바위 꾼이 보인다면 구경도 하지 말자. 함정에 빠질 수 있으니까.
또 관광지 주변을 걷다 보면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에게 바닥을 보라고 한다.
저기 떨어진 반지가 네 것이 아니냐고.
떨어진 반지가 자신의 것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순간 사기꾼은 돈을 요구할 것이다.
내가 너의 소중한 반지를 찾아줬으니 대가를 달라고.
실제로 이 수법에 걸려 들 뻔한 외국 중년 부부를 본 적이 있다.
아내분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사기꾼은 그럼 이 반지를 당신에게 팔겠다고 했다.
내가 기가 차서 쳐다보고 있으니까 내게도 네 반지가 아니냐며 능청스레 물었었다.
그래서 그 외국인 부부에게 저 사람은 사기꾼이니 그냥 가면 된다고 알려줬던 적도 있다.
당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절대 바닥에 떨어질리 없다.
설사 당신이 끼었던 반지를 잊어버렸고 그 사기꾼이 건네는 반지가 같은 디자인이라고 해도
당신의 반지는 절대 그 사기꾼 손에 들려 있을리 없다.
그러니 그냥 가던 길을 가면 된다.
또 이런 사기꾼도 있다.
관광지 주변에서 느닷없이 선물이라며 꽃을 내미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 꽃을 받아 들면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라고 할 것이다.
'네가 준거잖아'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그 사람은 꽃 한 송이를 가지고 흥정을 할 것이고 흥정이 안된다면
내 꽃을 훔쳤다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파리에는 예쁜 꽃집들이 많으니 꽃을 갖고 싶다면 꽃집으로 가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파리에서 눈 뜨고 코를 베일 일은 없을 것이다.
파리에 테러가 난 이후 관광지에는 수시로 경찰들이 순찰을 돌고 군인들이 무장을 하고 그 주변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만약 야바위꾼이, 반지 사기꾼이 프랑스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경찰은 관광객보다 자국민을 더 보호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프랑스어를 잘해도 외국인인 우리가 더 불리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파리 소매치기 가이드-Part 2]에서는 이런 소매치기들에게서 살아남는 생존 방법을 소개한다.
** [파리 소매치기 가이드]는 Part 2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