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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Feb 26. 2019

역마살이 잔뜩 낀 나에 대한 단상

#에세이 #역사실

<역마살이 낀 나에 대한 단상>

    '역마살'
    나는 바깥 취재가 있을 때마다 손을 드는 편이다.
    소위 역마살이 끼었다고들 하는 그런 유형의 기자다.
    그래서 천상 사건기자가 천성에 딱 맞는지도 모른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기사를 쓰는 것보다 차가운 돌바닥이라도 공항 바닥 자리를 깔고 앉아서 기사를 쓰는 게 글이 더 잘 나온다.
    유난히 현장 취재를 좋아하는 것은 일단 나오면 공간이 탁 트이고, 기분도 전환되고, 공기도 새롭고,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근원적인 이유를 찾아가 보면 그냥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역마살' 같은 게 진짜 내 안에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모 선배는 나한테 '못 나가서 환장한 애' 같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나오면 뭐라도 주워서 기사를 잘 쓰는 편이다.
    글은 잘 못 쓰는 편이지만 현장에 대한 감각만큼은 일반적인 수준보다는 좀 낫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추적하는 이런 종류의 취재는 내가 제일 잘하는 분야다.
    눈치 빠르게 현장 분위기를 읽고, 후배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긴급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도 잘 한다. 또 길목을 딱 잡고 있다가 한방에 낚아채 버리는 것이 추적 취재의 묘미다.
    역마살이 실존한다면 나는 분명 역마살이 잔뜩 꼈을 것이다.
    낯선 곳에 가서도 금방 적응하고, 워낙 밖에 나오면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발발거리고 돌아다녀 남들보다 반드시 하나라도 더 기사거리를 물어온다.
    내가 낯선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낯선 환경 자체가 주는 신선함이 너무 재밌지 않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길을 혼자 걸으며 산책하거나 시장 골목 구석구석을 뒤져서 맛있는 현지 맛집을 찾아간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나는 가끔 낯선 곳에 가면 머리를 자르거나 촌스런 옷을 사곤 하는데 이런 것도 낯선 곳에 갔을 때 느끼는 재미 중 하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에게 내 머리를 맡기고 있노라면 나도 왠지 그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에 들어간 것 같달까.
    또 의외로 이방인인 내가 겁도 없이 머리를 들이밀면 현지 분들이 신기해하기도 하고, 재밌어하기도 하고, 살갑게 대해 주신다.
    항상 밝지만 의외로 쓸쓸한 때가 많은데 정이 고파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남들은 오바한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재밌어서 이런 것들을 꼭 해보는 편이다.
    특히 기념품을 파는 관광지 같은 곳을 가면 나는 항상 기념 티셔츠를 사서 입어보고 사온다. 와이프는 이렇게 산 티셔츠들을 못 버려 아주 안달이지만 말이다.
    내가 절대 못 버리게 하기 때문에 집에 구멍이 난 채로 쌓여 있는 티셔츠들이 꽤 된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그냥 그 티를 입고 있으면 낯선 곳에 갔었던 당시 생각도 나고, 재밌었던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으니까 구멍이 나든 목이 늘어나든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가 있는 광시(廣西)장족자치구 핑샹(憑祥)은 음식 맛이 엄청 훌륭하진 않다. 이곳은 광둥이나 쓰촨, 산둥같이 높은 수준의 맛을 추구하진 않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맛있게 이곳 음식을 즐기는 것은 바로 '낯선' 음식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다.
    베트남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좋은 기후 탓인지 과일과 채소 등 물자가 풍부하고, 쌀이 흔해서 인지 쌀로 만든 음식이 많다.
    뭐 이런 것까지 쌀로 만드나 싶을 정도로 쌀이 흔해서 다양한 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맛으로 따지면 챠오산(潮汕)이나 쓰촨 같은 곳에 비할 바 못 되지만, 잘 벼른 미식 대신 이런 신선한 맛을 즐기는 것도 그냥 그 자체로도 좋지 않은가.
    지금껏 나는 내 인생 곳곳에서 역마살을 느끼며 살았다.
    직업은 물론이고 취미, 흥미, 놀이 등등 대부분 내가 하는 일에 조금 싫증 났다 싶으면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곤 했다.
    그나마 저런 역마살의 특성이 발현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인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은 질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또 새로운 모습을 다른사람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그게 좋은 모습일 때도 있고,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일 때도 있는데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한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보듬어 주고, 멋지면 멋진대로 박수 쳐주면 그만이다.
    이렇듯 변화무쌍한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안에 역마살이 얼마가 끼었든 그 변덕이 충족된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틈에서 홀로 호텔에 누워 있자니 뭐라도 적어 봐야겠다 싶어 한 줄 적어 본다.
#단상 #역마살
++그림은 중국 말그림 대가인 쉬페이홍(서비홍)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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