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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r 30. 2019

<질문의 기술> 속편 - 기정사실화법 심화과정

#에세이 #질문법

<질문의 기술> 속편-기정사실화 질문법 심화과정

    사람들이 질문법에 이렇게 관심이 많을 줄 몰랐다.
    이렇게 된 김에 업계 비밀(?)까지는 아니고, 내가 주로 취재할 때 쓰는 스킬을 하나 더 소개해 볼까 한다.
    앞서 '기정사실화 질문법'이라고 해서 내가 확인하고 싶은 팩트를 마치 이미 나와 네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가정해 질문하는 스킬을 설명했다.
    간단히 요약하고 넘어가면 내가 알고 싶은 팩트가 'A가 중국에 왔다'라면, 질문은 A가 이미 중국에 온 것을 가정하고 "A가 중국음식이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요. 하하하"라고 질문을 하는 식의 스킬이다.
    사실 이 질문법을 방어하기란 매우 쉽다.
    머릿속으로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를 되뇌면서 "그것은 저희 내부 원칙상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 답이 없다.
    또 다른 파훼법인 웃으면서 "그러게요"라고 말하는 방법은 사실 좋은 방법은 아니다. 대화란 것이 뉘앙스와 제스처가 굉장히 중요한 사인이 되는데 일단 '웃는다'라는 행동에서 대답의 긍부정이 드러날 수 있으니 웬만한 포커페이스가 아니면 뭘 안 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어쨌든 '그것은 저희 내부 원칙상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방어진을 펼치면 상당히 파훼하기가 어려운데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기 때문에 이를 깨뜨리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일명 '기정사실화 심화 과정'이라 부르는 질문법이 이런 상황에서 유용하다.
    기정사실화 질문법은 보통 한 단계 앞선 상황을 묻는 방법이라면 심화 과정은 약 두세 단계를 앞서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 질문법은 세 가지 세부 스킬로 나뉘는데 '도발·불안 유발·바보행세' 등이다.
    아. 그리고 하나 알아둬야 할 것은 '그것은 저희 내부 원칙상 확인해 드릴 수 없다'라는 답이 나왔을 때 심화 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확인을 못 한다고 말하는 것은 뭔가 알고 있긴 있다는 뜻이니 이미 걸려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먼저 도발은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듯이 질문을 하는 것이다.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 상황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내가 알아내고 싶은 팩트가 비건 대표의 북한 접촉 여부라면 이렇게 질문을 하면 된다.

    "북한 측과 대북제재 이야기가 잘 됐다면서요?"

    도발이 들어가면 열에 예닐곱은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1. "아. 무슨 소리에요. 만난 적도 없는데"
    2. "누가 그럽니까? 아무것도 된 게 없습니다"
    3. 약간 어리숙한 상대라면 "우린 대북제재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없고, 제3 국에서 접촉을 이어가면서 술술술술…"
    
    1번 답을 했다면 안 만난 것이 확인되고, 2번 답이라면 만나긴 만났는데 이야기가 잘 안 된 것이고, 3번은 그냥 그 일이 잘 안 맞는 사람이니 옷을 벗어야 할 것 같다.

    그럼 나머지 열에 서넛은 어떤 반응을 하냐면 "뭐라는 거야 ㅅㅂ"이라며 짜증과 댕댕이 무시를 한다.
    
    도발이 안 먹혀든다면 불안 유발로 넘어가면 된다. 이건 외교 무대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는데 보통 사건기자 때 많이 써먹던 방법이다.
    상대가 묵비권을 계속 행사하거나 '확인해 드릴 수 없음 무새'가 됐을 때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질문과 답을 동시에 내가 말하면서 접근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대답이 굉장히 자극적이면서 마치 저 새끼를 가만 놔두면 오보가 나갈 거 같은데 하는 불안감을 주는 것이다. 비건 대표의 상황을 다시 예로 들어 보겠다.
    
    "중국 측과 접촉하신 것으로 아는데 논의 상황이 어땠나요? 북한 측과 다리를 놔달라고 했다던데"
    "북한 측과 다리를 놔준 데 대해서 중국 측에 감사인사를 하셨다고 하던데요"

    이 질문법의 핵심은 내가 마치 잘못된 팩트를 어디서 누군가에게 확인받아 곧 기사를 쓸 것 같이 상대를 불안하게 하는 데 있다. 이게 비건 사례를 들어서 그렇지 사건·사고 관련 질문으로 바꿔보면 질문을 받는 사람은 굉장히 불안해진다.
    좀 더 알기 쉽게 버닝썬 사건을 예로 양현석 대표를 만났을 때를 가정해 보자.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서 양 대표님이 대부분 사업 상황을 보고받으셨다고 하던데요"
    "승리씨가 보고 했을 때 말릴 생각을 못 하셨다던데 이유가 있나요?"
    
    이렇게 하면 질문받는 사람은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으려고 입을 열게 돼 있다. 너무 악독한가? 미안하다 기레기다.


    다음으로 바보행세법이 있다.
    이건 약간 동정을 유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뭘 모르는 척 바보짓을 하면 되는 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면서 상대를 답답하게 해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 대상은 굉장히 공명심이 있고, 약간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싶어 하는 사람일수록 좋다.
    비건 대표 예시는 재미없으니 버닝썬 사건을 다시 예로 들어 보겠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매우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상대가 있다고 가정해 질문을 해보면 이렇다.

    "버닝썬이 사실은 승리씨 소유가 아니라면서요?"
    "그냥 바지사장이고, 이용만 당했다던데 어째요"

    이 방법의 핵심은 밑도 끝도 없이 바카 같은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이 바보 같으면 바보 같을수록 좋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아니 저런 것도 기자를 한다고 쯧쯧'이란 생각이 들게 하면 성공이다.
    공명심이 강한 상대는 그러면 잘난 척을 하기 위해 최소 본인이 알고 있는 팩트의 20% 정도는 술술 불게 돼 있다.
    아니 이렇게 영업 비밀을 공개해도 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정도는 매우 간단한 질문법이다.
    먼 옛날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 형님이 이미 다 했던 방법이니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그래서 결론은 뭔가 알고 있다면 기자를 만나면 걍 도망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아. 물론 나는 빼고
#질문법 #기정사실화심화법 #이제그만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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