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r 28. 2019

<질문의 기술> 원하는 바를 알아내는 질문 노하우

#에세이 #질문법

<질문의 기술> 원하는 바를 알아내는 질문 노하우


    "How was your stay in china?"


    이 문장은 오늘 비건 대북 특별대표에게 일본 매체가 던진 질문이다.

    하... 하우 워즈? 하아우 워즈? 왓 더!! 이거 물어본 사람 와서 머리 박아! 비건 대표 자금성 관광 왔니?

    사실 오늘 비건 대표가 일반 통로로 갈 것이란 것을 예측한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NHK와 교도통신 같은 인력이 많은 매체 두 곳만 비건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문제는 기자들이 모두 VIP 통로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당황한 현지 직원들이 똥망 질문을 해버렸다.

    기자가 대부분 무쓸모한 존재이지만, 딱 두 가지를 잘하는 것이 있다.

    첫째 글쓰기. 글의 퀄러티를 떠나서 그냥 매일 쓰다 보니 글 체력이 좋다고 보면 된다. 

    두 번째는 바로 질문하기다. 기자가 뭘 쓰려면 항상 취재원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질문이란 것이 묘한데 하다 보면 엄청나게 스킬이 는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아주 얍얍얍 하고 간단하게 질문해서 쉽게 얻어 내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다.

    와이드 인터뷰나 기자회견장에서 질문하는 것은 크게 스킬이 필요하지 않고, 준비할 시간이 많다. 

    또 선배들이나 데스크와 상의해서 질문을 갈고 닦을 수 있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문제는 현장에서 돌발적인 상황 속에 취재원을 만났을 때다.

    오늘같이 동선이 짧고 취재원과의 접촉이 어려운 현장에서는 현장 경험과 노하우가 정말 많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하우 워즈 스테이 인 차이나?" 같은 관광 영어가 튀어나오게 된다.

    그럼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까?

    일단 내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리를 해야 한다.

    언제 이걸 정리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많고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현장으로 이동하는 차안도 질문을 정리하기 좋은 공간이다.

    특히 오늘처럼 비건 대표의 비행기 편을 빨대에게 미리 입수한 경우는 생각할 시간이 좀 더 많아 필요한 것을 정리하기 좋다.


    먼저 오늘 비건 대표를 통해 공항 기자들이 알아내야 할 것을 정리해 보자.


    1. 비건 대표는 조어대에 어제 정말 갔는가.

    2. 비건 대표는 중국 측 인사를 만났는가.

    3. 비건 대표는 북한 측 인사를 만났는가.

    4.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준비하는 동향이 파악된 것을 미정부가 알고 있는가.


    이 네가지 정도가 되겠다.

    에이. 그럼 다 됐네. 저 질문 네 개를 하면 되잖아요.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유치원생을 공항에 세워두면 되지 뭐하러 이런 글을 쓰고 있겠는가.

    질문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싶은 팩트보다 한 단계 또는 두 단계 앞 상황을 묻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알고 싶어하는 사실을 기정사실처럼 가정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이를 가리켜 '기정사실화 질문법'이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소린지 잘 모르니 예를 하나씩 들어 보겠다.


    먼저 1번 팩트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우 워즈'가 아니라 바로 이거다.

    "Did diaoyutai(조어대) meal suit your taste?"

    (디드 댜오위타이 밀 숫 요어 테이스트?)

    다들 영어 소양이 높지만, 굳이 한 번 더 설명하자면 "조어대 밥이 입에 맞았니?"라는 질문이다.

    인터뷰이가 아예 묵묵부답인 경우를 빼고 말할 마음이 있다면 '어메뤼칸 스타일' 천조국 형님들은 찡긋 염화미소를 지으며 "잇츠 야미~"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1번 팩트를 아주 간단히 확인한 셈이다.


    그러고 난 뒤에 2번 팩트 확인에 들어가면 된다. 이때도 기정사실법을 사용하면 된다.

    "What kind of discussion did you have with the Chinese side?"

    (웟 카인드 어브 디스커션 디드 유 해브 윋 요어 차이니즈 사이드?)

    그러니까 걍 이미 중국 측과 만난 것을 전제로 깔면서 다음 단계인 "뭘 논의했느냐?"를 묻는 것이다.

    진짜 안 만났다면 당연히 논의한 것이 없다할 터이고, 혹여 "별거 논의한 거 없는데"라고 하면 만나긴 만났다는 소리다. 이렇게 2번 팩트를 확인한 셈이다.


    다음은 3번 팩트를 확인해야 한다. 이게 정말 난도가 높은 질문인데 이건 사실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조금도 파악이 안 됐기 때문에 매우 까다롭다.

    이럴 때는 북한을 만난 것을 기정사실로 하지 말고, 반대로 '북한도 못 만났어? 이런 무능한 놈' 같은 뉘앙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Vice-Chairman Li Su-yong left without meeting you"

    (바이스 체어먼 리수용 레프트 위다우트 미팅 유)    

    "리수용이 왔는데 너 안 만나고 그냥 갔더라. (얼레리 꼴레리)"라고 도발하는 것이다. 

    이랬는데 발끈하면 만난 거고, 아무런 표정에 변화가 없으면 안 만난 것이다. 뭐 워낙 노회한 고수들은 포커페이스라 알 수가 없으니 패스하자.


    마지막으로 4번. 이게 이번 취재의 하이라이트인데 미 국무부 당국자 그것도 대북 특별대표의 입으로 4번 팩트가 확인되면 완전 특종이라고 할 수 있다.

    질문 방법은 앞선 것과 똑같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 준비 동향이 사실인 것처럼 밑밥을 깔아 놓고 물어보는 것이다.    

    "What is the U.S. position on North Korea's move to test a missile?" 

    (왓 이즈 더 유에스 퍼지션 안 노어쓰 코어리어즈 무브 투 테스트 어 미설?)

    마치 미국이 이미 다 아는 것처럼 상황을 가정해 "북한의 미사일 동향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말해달라" 요렇게 말이다.

    미국의 입장을 말하면 대박이 나는 것이고, 아니면 기사로 쓸 수는 없다.


    뭐 내가 현장에 있었어도 비건 대표가 입을 열지 않으면 말짱 꽝이지만, 그래도 혹시 어메뤼칸 스타일로 한두 개라도 대답을 해 줬다면 기사가 더 풍성하고, 한반도 정세를 좀 더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참고로 본인이 말주변이 없는데 뭔가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다면 절대 기자와 말을 섞지 말기 바란다.

    사람이란 게 묘해서 뭔가 알고 있으면 대화에서 조금씩 그 내용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물론 나 나한텐 말해도 됑.

#단상 #질문법 #기정사실화질문


이전 10화 언론과 권력의 갑을관계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