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방송작가의 다큐 제작기 #3
내가 방송작가로 처음 작업하게 된 프로그램은 'sbs 특집 다큐 행복한 일터, 달라지는 근로시간'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방송아카데미 구성작가 과정을 수료하고 이곳저곳으로 면접을 보러 다닌 게 3개월. 열 군데가 넘는 곳을 지원하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던 때였다. 그러다 같은 기수 아카데미 반장을 하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업 때 하루 특강 왔던 작가님이 막내작가를 구한다고, 특집 다큐멘터리 한편이니까 3개월 정도만 일하면 된다는데 경험 삼아 한번 해보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함께 일할 메인 작가님에게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다. 아무런 면접이나 절차 없이. 갑작스럽지만 그렇게 나는 방송작가가 되었다.
드디어 여의도 입성이구나!! 역에 내려 방송국을 지나쳐 걸어가면서 나름 벅찬 감정이 들었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해 볼 수 있겠구나 싶었고 진짜 이 한 몸 다 바쳐 좋은 방송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찼다. 사무실 주소를 찾아가 보니 여의도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오피스텔이었다. 제대로 잘 찾아온 게 맞겠지? 생각하며 벨을 눌렀는데 다행히 특강 때 뵀던 작가님이 웃으며 문을 열어 맞이해주셨다.
어림잡아 6,7평 정도 돼 보이는 작은 오피스텔 원룸. 문 옆에는 작은 싱크대에 주전자, 커피믹스가 놓여있었고 중앙에는 회의용 테이블, 그 뒤로는 영상 편집용 컴퓨터가 하나 놓여있었다.
"여기 너무 이상하지?" 웃으며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작가님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맞다. 사무실을 보고 많이 당황했다. 외주 제작사가 열악하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10명,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일하는 작은 사무실 정도는 되겠지 생각했었다. 이렇게 원룸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사용할 줄은 전혀 생각 못했다.
작가님은 나에게 믹스커피를 타주며 본인도 매일 출근 안 할 거니까 굳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친한 선배 언니가 영상 제작사를 만들어 다큐 제작을 부탁받아서 하는 거라고. 이 방송 말고도 외부 강의, 다른 고정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며 각자 집에서 편하게 일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외주제작사이긴 하지만 공중파 방송이니 다른 프로그램 갈 때 이력서에 쓸 경력은 충분히 될 거니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카데미에서 연결해주던 취업 자리는 공중파 방송국 본사에서 제작하는 교양 프로그램들이었고 외주제작사는 급여나 환경이 좋지 않아 고생만 한다며 아예 취업 추천에서 제외되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나이도 한참 어렸고 본사 프로그램에서 계속 미끄러지니 차라리 외주제작사에서 일을 시작해 그 경력을 가지고 본사 프로그램으로 옮겨가는 게 더 나을 것도 같았다.
당황한 마음을 접어두고 한껏 결의에 찬 눈빛을 하며 가져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메인작가님께 건넸다. "면접도 없이 일하게 된 거라 저에 대해 궁금하실까 봐 가져왔습니다!" 메인작가님은 "어 그래 알았어 봐볼게" 라며 귀엽다는 듯 웃으며 말했고, 대화는 바로 내가 해야 될 일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해야 할 일에 대해 빠르게 노트에 받아 적는데 작가님이 조심스럽게 급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 외주 제작사라 여유롭지 못해서 페이를 많이는 못준다더라... 월 80만 원인데 너무 적지?"
당시 나는 일을 시작만 할 수 있으면 급여는 얼마를 받던 상관이 없었다.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이 좋아서 하려는 거니까 당장은 적게 받아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아무런 경력이 없는 나에게 방송일을 가르쳐주고 돈까지 준다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까지 들면서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프로그램은 3개월 뒤가 방송 예정일이었고 메인작가님이 써둔 구성안대로 촬영을 진행하면 되는 상태였다. 다큐멘터리 내용은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고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하고 있는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정책과 노력들을 담고자 했다.
내가 처음 한 일은 메인작가님이 구성안에 써 놓은 해외사례를 보충할만한 문헌자료들을 찾는 것이었다. 다큐에 소개된 첫 번째 기업은 일본의 유명한 중소기업인 미라이 공업. 동종업계 1위에 일본의 샐러리맨들의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도 파격적인 근로시간과 복지혜택으로 언론에 소개된 기업이었다.
1년에 140일 휴가, 정년 70세 보장에 평균 연봉은 동종기업보다 높은 6천만 원. 야근도 없고 1일 근무시간은 7시간. 더 놀라운 건 직원들의 파격적인 직원 포상제도다. 1973년부터 5년에 한 번씩 전 사원 무료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것! 왜 이렇게 직원들을 쉬게 하는 걸까?
휴가를 많이 주면 사원들이 편해져요. 사원들이 편해지면 목표가 없어도 100% 열심히 하죠.
열심히 일하게 하기 위해서 휴가를 많이 주는 일을 합니다.
우리 회사는 인생을 즐길 시간을 많이 줍니다. 일만 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그것이 일로 이어지고 일을 하는데 원동력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 야마다 아키오 미라이 공업 창업주 -
일만 하지 말고 남는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 그게 곧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자극해 스스로 생각해 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미라의 공업의 철학이다. 이 기업의 복지혜택을 보고 진짜 이 회사 다니는 사람들 좋겠다 부럽다 싶으면서 이렇게 운영해도 매년 15%의 흑자를 기록했다는 게 신기했다.
후에 촬영본을 보니 회사 곳곳에는 '생각하라'라는 표어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공간을 따로 만들어 회사 창립 이래로 직원들이 개발해 특허를 받은 제품들을 전시 해 놓았다. 미라이 공업 창업주는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가 직원들의 창의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틀에 갇히지 않고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오랜 시간 지켜간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사례는 독일의 근로시간 정책이었다. 독일은 '근로시간 계좌제'라는 건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내가 일한 시간을 차곡차곡 적립해서 회사가 정한 근로시간보다 더 일했을 경우 나중에 적립된 시간을 써서 개인 시간으로 활용하도록 운영된다. (근로시간뿐 아니라 휴가도 마찬가지!) 내가 지금 더 일했으면 나중에 덜 일할 수 있고 휴가도 누적이 되어있으니 일과 개인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일과 여가생활에 균형을 맞추는 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촬영했던 독일의 기업은 이미 30년 전부터 다양한 근무시간 체계를 시도해오고 있었다고 하니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당시 나의 업무 시간은 잠자는 시간을 뺀 24-8= 16시간에 가까웠다. 오전부터 자기 전까지 자료조사, 촬영 테이프 프리뷰(촬영된 영상의 화면과 음성을 글로 받아 적는 작업), 촬영할 국내외 기업 섭외 등 하루를 다 써도 매일 해야 될 일을 끝내지 못해 무거운 맘으로 잠들곤 했다. 아마 근로시간 계좌제가 나한테도 적용됐다면 남들의 2배는 일하니까 내가 일한 기간만큼의 유급 휴가를 얻을 수 있었겠지?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금방 씁쓸해지곤 했다.
제작기간이 미뤄지면서 나는 처음 일하기로 한 3개월의 두배인 6개월을 일했다. 이 팀에 소속되어 한 편의 다큐를 만드는 동안 거쳐간 PD는 4명, 메인작가는 3명. 열악한 제작비, 본사 책임 CP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다들 중도 포기하고 떠나갔다. PD와 메인작가들이 바뀔 때마다 진행된 내용을 이해시키는 건 막내인 내 몫이었다. PD와 메인작가들은 떠나갈 때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떠나지만 너는 남아서 이 방송을 끝내라, 그게 너한테는 이득이다".
그들은 이미 방송계에서 적어도 10년은 일한 사람들이니 자신이 원하면 하고, 하기 싫으면 언제든 손 털고 나오는 게 익숙한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방송 경험이 없었으니 온갖 갑질과 서러움 속에서도 무조건 이 방송을 끝내야 했다. 나중에는 방송일을 수능시험날짜 세는 것처럼 D-DAY로 설정해 놓고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다큐는 겨우 방송되던 날. 화면엔 참여한 제작진 이름이 자막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자료조사 김은진>이라고 적힌 자막을 보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뿌듯하거나 기쁘지 않고 기분이 이상했다. 다른 작가 동기들은 방송 끝나고 자기 이름이 올라가는 자막을 볼 때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하던데... 친구들이 "첫 방송 축하한다, 고생했다 " 말해주었지만 정말 이렇게 방송이 끝난 건지 믿기지 않으면서 약간의 해방감과 허탈감이 섞인 묘한 감정이 들었었다.
몇 년 만에 이 다큐멘터리를 다시 찾아보면서 자연스럽게 행복한 일터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적은 근로시간' '좋은 사람' , ' 좋아하는 일' '높은 월급' '복지' 등등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원하는 조건은 뭘까?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일’ 만 충족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되 내가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업무강도, 그리고 마음 맞는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고 싶다. 행복한 일터에 필요한 조건들 중 무엇 하나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부픔과 연료처럼 나에게 필요한 조건과 환경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