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뭘까

전직 방송작가의 다큐 제작기 #1

by 김은진

매년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이라는 프로그램이 MBC에서 방영된다. 지금까지 무려 12년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가족들의 사연을 담았고, 큰 인기를 얻었다. 마비로 몸이 굳은 아들과 그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돌시인과 어머니’, 대장암 말기의 고통 앞에서 가족을 위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빠의 이야기를 다룬 ‘안녕, 아빠’ 등등. 당시에도 이 이야기들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책으로까지 출간되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내가 제작에 참여한 편은 치매인 엄마를 모시고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인 ‘우리 엄마 본동 댁’,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언니와, 그 언니를 돌보는 동생의 이야기 ‘내겐 너무 예쁜 언니’였다. 휴먼 다큐멘터리는 사람의 이야기로 한 시간 동안 영상을 이끌어가야 되기 때문에 주인공의 사연뿐 아니라 그 사람이 주는 인간적인 매력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실 주인공 선정에 무척 공을 들이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제작팀에서 내가 주로 했던 일도 다큐의 주인공을 찾는 일이었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 담당 PD는 나에게 ‘가족 간의 사랑(단, 암 환자는 제외할 것)', ‘남녀 간의 사랑’을 보여줄 주인공을 찾으라는 미션을 주었다. 이전까지 휴먼다큐 사랑에서 나온 가족들은 대다수가 임종을 앞두거나 곁에서 보기에 너무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주로 다뤘다 보니 좀 더 밝은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가족 간의 사랑' 편은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님을 모시는 딸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이야기가 모아졌다. 나는 수도권의 치매주간보호센터에 혹시 다니는 분들 가운데 각별하게 엄마를 챙기는 사람이 없냐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달가워하지 하지 않았다. 내 부모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걸 방송에 보여줄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었고, 혹시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정도의 인사말로 서둘러 전화를 마무리했다.

사실 암환자나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아니니까 오히려 섭외가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섭외에 어려움을 겪어 제작 일정이 점점 미뤄지게 되자 휴먼 다큐멘터리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메인작가님은 말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지 않으면 자신의 속을 내놓고 전부 다 보이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서 임종을 앞두거나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많이 나온 거라고. 물론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극한의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 속, 좀 더 가까이에 자리한 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노인 중 10.2%(72만 5000명)가 치매 환자다.
환자 수는 2024년 100만 명을 넘어 2050년에는 271만 명(유병률 15.1%)에 이를 전망이다.

- 헤럴드경제 신문 '늙어가는 대한민국의 그늘... 치매 환자 급증세' 2017. 09. 20-


'더 전화를 돌릴 곳이 남았나...' 치매 관련기관 연락처 리스트를 보던 중에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설마 하고 받았는데 드디어!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자기 센터에 어머니를 낮에 맡기는 딸이 있는데,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 있다고. 딸한테도 방송에서 촬영하고 싶어 하는 걸 물어봤더니 흔쾌히 허락해서 전화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촬영할 수 있겠구나! 더 이상 전화를 안 돌려도 된다고 안도하며 어떤 가족들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찾아갔다.

4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딸과 70대 후반의 어머니, 그리고 호쾌하게 장모님을 대하는 남편과 장난꾸러기 아이들. 집안에서는 아픈 노인과 함께 사는 집안 특유의 가라앉은 분위기가 없었고 생기가 가득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해도 장난으로 받아치는 딸과 사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까르르 웃어대며 놀리는 아이들을 보며 이 가족을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딸에게 방송 촬영을 허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딸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이야기했다.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서요. 영상으로 남겨 놓으면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가족들이 영상을 보고 엄마의 모습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참 선하고 따뜻한 딸이었다. 8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나 정작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진 못하며 자란 자식이라고 했다. 딸을 포함한 여덟 명의 자식들 전부 성인이 되어서는 각각 서울과 대도시로 흩어져 살고 있었고, 어머니는 전남 벌교인 고향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셨다.

혼자 사시던 어머니가 3일을 굶다 쓰러지신 게 2년 전, 병원에 모시고 가서야 뒤늦게 어머니가 치매 중증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딸은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다. 아픈 어머니를 고향집에 혼자 둘 수 없었던 딸의 결정을 전적으로 이해해주었던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곁에서 돌볼 수 있었다. 그러나 힘든 날들은 그 이후에 몰려왔다. 어린아이들과 남편의 뒷바라지뿐 아니라 시도 때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며 집 밖을 나가려는 어머니를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돌봐야 했다. 8남매를 홀로 농사일을 하며 뒷바라지한 강인한 어머니였기에 처음엔 치매라는 걸 온전히 받아들이기 조차 힘들었다.


실은 우리 아이들한테도 "할머니가 아파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저도 스스로가 아픈 엄마를 인정 못했어요. 우리 엄마는 항상 건강한 사람이어야 되는 거 있잖아요.
이제 엄마가 진짜 옛날의 강한 엄마가 아니고 아프구나, 진짜 아파서 나한테 도움을 받아야 되는 사람이구나. 그걸 인정하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 딸 인터뷰 중에서-


한 평생을 보냈던 고향 벌교의 기억에 머물러 있는 어머니. 딸은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이전보다 더 어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어릴 적 많이 나누지 못했던 추억과 사랑을 더 늦기 전에 나누며 생활하고 있어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 엄마가 저런 것들을 좋아했었구나. 저런 면이 있었네?
저렇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했었구나 싶은 순간들이 많아요.

엄마는 우리가 시골 내려가면 항상 반겨주시던 분인데 막상 엄마가 없을 것을 생각하니
이별 준비가 필요했어요. 우리한테도 엄마한테도.
사실은 엄마가 늘 바쁜 분이었기 때문에 모녀간의 정을 나눌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추억도 없었어요. 그래서 엄마하고 이별할 시간도 좀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던 거죠.

-딸 인터뷰 중에서-


내가 이 다큐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첫 장면이다. 조용하고 나른한 일요일 오후, 각자 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족들. 갑자기 어머니가 고향집에 가서 밥하고 일해야 한다며 나가려 한다. 딸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추워서 지금은 못 간다고 말리고, 사위는 본동 댁 어딜 자꾸 가려고 하냐며 어머니의 두껍고 긴 발톱을 보고 발톱이 아주 살인 무기라고 찍히면 죽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며 어머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시선을 돌린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건들지 말랑게! 라고 외치다가 금방 웃음을 터트린다.

온 가족을 긴장 시키다가도 결국은 모두를 웃게 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보며 한바탕 까르르 웃는 가족들을 보며 사랑이 이런 걸까 싶었다. 그저 한없이 다 품어주고 함께 웃어주는 것. 얼핏 보면 쉬운 일인 듯 느껴지지만 내가 가족한테 대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그저 반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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