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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Sep 21. 2022

어느 행복한 하루


있잖아,
미래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 .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미래에 대한 단상을 하나하나 허공에 그려가기 시작했다. 높은 층고의 통유리로 되어 있는 공간 안으로 햇살이 붉게 내려앉았다. 온 공간이 노랗게 채워져 있는 집 안에는 지난밤 즐거운 대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빈 잔, 반쯤은 덜 비워진 잔, 드라이한 와인의 향이 아직 겉돌고 있는 식탁. 사방팔방 아직도 넘치는 웃음소리가 속닥거린다. 누군가의 물컵이, 누군가 먹다 만 치즈가, 먹다 흘린 자국을 치우겠다고 나선 휴지가 그대로 놓여 있다.


눈을 떴다. 멀지 않은 곳의 온기가 아직 잠들어 있다. 일어나는 매 순간마다 나를 향해 돌아선 채로 잠들어 있는 꿈같은 사람. 한참을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넘겨주려다 손을 다시 돌려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난다. 바삭거리는 이불 소리와 함께 발바닥으로 바닥을 짚는다.


부엌 저편에 나 있는 문은 이 집을 꾸미기 이전부터 존재한 시간들을 품고 있다. 단지 문 밑으로 그녀의 작은 친구들이 나다닐 수 있는 자그마한 문이 있다는 이유로 이 집에서 남겨둔, 유일한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다.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멀리서 친구들이 달려온다.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다. “앉아.” 작은 목소리로 쓰다듬으며, 기다리고 있는 개와 고양이에게 내리쬐는 햇살을 잠시 바라본다. “먹어.” 오도독 거리는 소리에 그 사람이 깨진 않을까 잠시 침대 쪽을 바라본다. 그대로다.


청각이 부족하다면, 이젠 후각이다. 언제나처럼 커피 내릴 준비한다. 얼마 전 새로 산 원두의 향은 과일의 산미로 가득하다. 분명 바깥은 아직 서늘한데, 여름이 성큼 다가온 기분이다. 아이스만 마시는 당신을 위해 짤랑이는 얼음컵을 준비하자 바스락 소리가 멀리서 뒤척였다.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햇살이 가장 많은 들어선 거실로 나온다. 그녀의 키보다 더 높이 들어오는 햇살이 식물들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 아래로 쌓여 있는 책과 대본들을 슬쩍 내려본다. 쌓여있는 고민들 옆으로 고민 따위 잊어버리라는 듯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의자가 그녀에게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이 친구도 이 집에 오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시간의 무게라기엔 아직 견고한 가죽이, 해져서 살짝 갈라진 틈조차 햇살의 따스함을 머금어 앉을 때마다 폭삭 안아준다. 그녀의 모양에 딱 맞게 나이 든 가죽의자는 오로지 이 햇살 안에서만, 그녀의 오랜 고민 앞에서만 존재한다.


‘이런 게 동반자인 거지.’ 무심히 한 생각을 비집고 온화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로 마중 나온다. 의자에 앉아 어제 읽다가 만 대본을 들었다. 멀찍이서 사랑이 담긴 안온한 목소리가 말한다. “일찍 일어났네? 나랑 좀 더 자지.” 눈곱도 덜 뗀 어눌한 말투가 오늘따라 더 웅얼거려서 얼굴에 절로 웃음이 활짝 폈다. “커피 내려놨어. 이리 와.” 커피를 한 손에 들고 헤실 거리며 다가온 그가 그녀의 어깨 옆에 서서 햇살이 들어오는 창밖을 바라본다. 어느새 털 달린 동물 친구들도 나란히 햇살 곁에 섰다. 멀리서 흐르고 있는 물가에 햇빛이 반짝 고여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 뚜렷이 그려진 그림이 보여준 황홀경에 나도 붓을 들었다. 손길이 닿기도 전에 캔버스에 과거가 스며 들었다. 스며든 자국엔 향초가 있었고, 따뜻한 공기와 붉은 카펫, 붉은 소파, 존경하는 책들로 가득한 책장, 당신이 쌓아둔 가까운 마음의 흔적들, 늘어져 있는 부엌들 틈에 내려지는 커피 향, 커피 향에 뒤섞인 담배 향, 알고 있던 선율이지만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노래들, 바삭거리는 침대 맡에 놓인 당신의 불면증, 창가에 늘어져 있는 화분들 틈으로 푸르게 자란 당신의 외로움, 당신으로 가득한 그림들, 그리고 당신이 있었다. 너의 가장 행복한 미래는 어떤 모습이냐는 그녀의 질문에 내 그림은 대답을 내려놓고 캔버스를 가득 메운 하양을 보며 말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뭔가를 그리라고 하면 
자꾸 과거로 .
아무래도 행복을 두고 왔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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