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시가 싫대요.”
“원래는 좋아했다가요?”
“아니요,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고
무슨 얘기를 하다 말고 혀를 내두르면서
시가 싫다 하더라고요.”
“소여 씨 글이 싫다는 말로 들렸겠네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 현재의 마음은 사뭇 다르다. 그때만 해도 철렁했던 심장이 지금은 안타깝게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여름을 사랑해 마다 않는 당신이 그러하듯 나는 시에 담긴 기나긴 한숨을 사랑하고, 당신이 시를 이룬 활자들로부터 멀리 등 돌리듯이 쏟아지는 비에 짓눌리는 이 습기를 난 외면하고 싶었다. 그런 내게 당신은 쨍한 여름이었고, 따사롭다 못해 따가운 햇빛을 견디지 못한 나는 그늘을 따라 홀로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 난 누구에게나 겨울 새벽 공기 같은 존재가 되었고, 숨에 담긴 서늘한 호흡으로 한 걸음씩 눈길 위에 스쳐 지나간 온기를 닮은 글을 썼다. 그 와중에도 당신은 불변의 계절로, 흐르지도 멈추지도 않는 여름이었다. 한때의 설렘을 차게 식은 심장이 앗아 가려는데, 그 마음의 유서를 쓰려다 시가 되었다.
“덕지덕지 응축되어 있는 감정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평소에도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쉽진 않으니까.
내 마음 돌아보기도 어려운데.”
“시라는 문학 자체가 담담한 듯 의외로 깊긴 하죠.
하지만 난 시가 비어있는 여백을 바라보는 일이라
생각해요.”
“저도 그래요. 장황하게 늘어뜨린 말들 틈에서
진리를 찾는 행위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무엇이든 결국엔 나로 가득한 생각의 틈을 벌려
타인에게로 향하는 행위가 중요한데,
그걸 잘 유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해요.”
“그럼 소여 씨가 생각하는 시는
태도에 더 가깝겠네요.”
태도에 가까운 글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깊어졌다. 영화 <생각의 여름>에서의 한 장면이 스쳤다.
시인 같은 게 뭔데?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 거.
활자는 울지 않는다. 덤덤한 걸음으로 획마다 아름다움을 무던히 담아내고, 굳게 눌린 슬픔이 음절 사이에 고여 찰랑인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에 기어코 내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에도 고요하다. 끝끝내 자신의 마음은 드러내지 않고, 오롯이 그 글을 마주하고 있는 당신의 마음만 위로한다. 활자는 울지 않는다, 울음 곁에 가만히 앉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태도에 열려있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요.
짧게 응축된 활자들 틈으로 행간을 읽고,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요. 시는 읽을수록
다양한 깊이의 물웅덩이들을 여럿 발견하게 되니까.
길게 늘어뜨린 장황함보다 단조로운 듯
쉽게 맺어지지 않는 말에 흔들리는 사람이랄까요.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시름시름 앓는 마음과 스쳐 지나던 음절을
붙잡아 끌어오는 필체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는.”
“정말 얘기할수록 태도에 가까운 글이네요, 시는.
사람마다 그 속도와 온도도 다른 글이니까요.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글이니,
태도네요. 마음가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