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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Sep 15. 2022

목소리에 담긴 겨울 공기


눈이 내리던 그날,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그가  목소리를 듣자마자 건넨 말이었다.


목소리가 겨울을 닮았어요.


한여름의 시작, 기나긴 장마의 중간 어딘가쯤  생이 시작됐. 고된 진통 끝에 무더위같이 태어난 나에게 여름은   없는 계절이었다. 시원한 물놀이를 즐겨 하고, 햇살을 좋아해 항상 까무잡잡한 피부. 여름에 여행을 떠나면 덥지 않은 나라를 간다던데,  여전히 여름을 좇아 어딜 가도 바다로 향했다. 매시간마다 선크림을 바르면서 쉬어 가라는 부모의 말에도 간식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물과 한 몸이었. 여전히 여름의 그을림이 손끝을 떠나지 못해 제법 까만 피부를 가진 나였기에, 목소리에 겨울이 묻어있을 거라생각해  적이 없었다.


“겨울이요? 그럼 목소리가 차가운 느낌인 건가?”

“아니요,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는 어떻게 설명할지 단어를 하나 둘 헤아려보고 있었다. 문장에 일일이 맞대어 보고, 정확히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표정에 내 시간이 머물렀다. 기대하고 있던 진중한 모습에 대답을 듣기도 전부터 벅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당신이 고른 단어가 무엇일지, 어떻게 겨울을 표현할지 궁금한 마음에 몸이 반쯤은 더 앞으로 기울었다. 옆자리에 앉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 잠시 커피잔에 시선을 내려놓은 사이 그가 입술을 뗐다.


차갑다기보단 시원한 느낌이랄까요?
상쾌함에 가까울  같기도 하고.
서늘한데 그게
추위를 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여유롭고 선선하게 공간을 만드는  같은,
겨울 아침 공기 같달까요.
그런 겨울이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라 생각보다 오래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온화한 미소가 겨울 아침 공기라는 단어를 물고 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의 순간을 짚으면서 내 목소리가 그 순간을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 속으로 삭혀 들어간다고 생각한 웅얼거림에 마침내 계절이 생겼다.


이렇게 만났으니 이제 당신 글을 보면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읽을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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