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여 Sep 16. 2022

“그 사람, 프루스트를 읽어요.”


“듣기는 많이 들었던 책인데, 정작 읽어본 적도 없고 읽을 엄두도 안 났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그 사람이 읽어요. 그제서야 그 책을 집어 들었어요.”


사실 거짓말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본연의 느낌 그대로 읽으려면 번역본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한 호흡으로 기나긴 여정을 쉬지 않고 달리는 문체가 아니고서는 온전히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시작할 생각조차 없었다. 이마저도 프루스트의 철학을 논하는 알랭 드 보통의 책과 한 포로수용소에서의 기억을 토대로 쓰인 짧은 에세이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땠어요? 뭔가 좀 더 이해에 도움이 되던가요?”


처음은 그에 대한 해설집이라도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내면을 들춰볼 수 있을 것만 같아 기대했다. 그러한 의도로 관심을 두게 된 책이었으나,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의문과 의구심만 늘어났다. 그걸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저런 질문을 건네다니.


“전혀요. 알 듯하면서도 모르겠어요. 제 생각이 자꾸 개입해서 그런가 봐요.”


“누군가를 온전히 안다는 게 가능할까요?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은 소여 씨의 생각인걸요. 이해에 부담을 느끼지 말아요.”


“...프루스트는 예술작품의 위대함이 외관에 나타나는 성질보다는 차후의 처우와 더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던데, 그럼 사랑도 동일하게 볼 수 있을까 -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럼 사랑 이후의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거죠?”


“진행형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랑 이후에 보이는 속성을 ‘위대함’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냥 그 순간에 충실한 나머지 넘겨버린 것일 수도 있고, 안일함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어때요? 후회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생각해 봐요. 바꾸고 싶은 것들이 보이면서 그 순간이 위대하게 느껴져요.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였는데 내가 안일했구나’.”


“위대함이라는 게 그 사랑이 유지되었던 순간 그 자체의 위대함이라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과, 배려와, 모든 것에 대한 경외감일 수도 있죠.”


그런데 저는 왜 막상 떠올려보면
사랑이 그다지 아름답지가 않죠?
누군가를 사랑할 때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전심으로 사랑을 행하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를 사랑하느라 친애하는 가족과 친구에게 소홀하거나, 그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온갖 질투와 열병에 시달려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이 오는 일이다. 다가오는 세상에 내 주체가 무너지고, 사랑의 원동력은 나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신비로운 역동으로 이뤄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런 사랑이 되지 못한다. 매 순간 끝없이 변하고 규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이 마음은 바라보고 있는 대상이 있더라도 그 외의 존재들을 인식하며, 그중 누구에게도 오롯이 머물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당신은 가까워지고 동시에 멀어진다. 사랑은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라, 알겠다 싶은 순간 모르게 된다. 프루스트가 말했듯이, 그리고 당신의 깊고 짙은 눈동자가 말했듯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것 또한 같은 의미가 된다.



이전 03화 목소리에 담긴 겨울 공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