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던 그날,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그가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건넨 말이었다.
목소리가 겨울을 닮았어요.
한여름의 시작, 기나긴 장마의 중간 어딘가쯤 내 생이 시작됐다. 고된 진통 끝에 무더위같이 태어난 나에게 여름은 뗄 수 없는 계절이었다. 시원한 물놀이를 즐겨 하고, 햇살을 좋아해 항상 까무잡잡한 피부. 여름에 여행을 떠나면 덥지 않은 나라를 간다던데, 난 여전히 여름을 좇아 어딜 가도 바다로 향했다. 매시간마다 선크림을 바르면서 쉬어 가라는 부모의 말에도 간식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물과 한 몸이었다. 여전히 여름의 그을림이 손끝을 떠나지 못해 제법 까만 피부를 가진 나였기에, 목소리에 겨울이 묻어있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겨울이요? 그럼 목소리가 차가운 느낌인 건가?”
“아니요,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는 어떻게 설명할지 단어를 하나 둘 헤아려보고 있었다. 문장에 일일이 맞대어 보고, 정확히 전달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표정에 내 시간이 머물렀다. 기대하고 있던 진중한 모습에 대답을 듣기도 전부터 벅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당신이 고른 단어가 무엇일지, 어떻게 겨울을 표현할지 궁금한 마음에 몸이 반쯤은 더 앞으로 기울었다. 옆자리에 앉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 잠시 커피잔에 시선을 내려놓은 사이 그가 입술을 뗐다.
차갑다기보단 시원한 느낌이랄까요?
상쾌함에 가까울 것 같기도 하고.
서늘한데 그게
추위를 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여유롭고 선선하게 공간을 만드는 것 같은,
겨울 아침 공기 같달까요.
그런 겨울이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라 생각보다 오래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온화한 미소가 겨울 아침 공기라는 단어를 물고 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의 순간을 짚으면서 내 목소리가 그 순간을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 속으로 삭혀 들어간다고 생각한 웅얼거림에 마침내 계절이 생겼다.
“이렇게 만났으니 이제 당신 글을 보면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