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순간들이 주는 힘이 무서울 때가 많아요. 별거 아닌데, 그게 송두리째 나를 잠식할 때.”
잠잠히 밖만 바라보다 은연중에 또 두려움을 드러내고 만다. 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당신 앞에서 난 얼마나 부질없이 부서지는 존재인가. 그러다가도 이 말을 건넨 내가 우스워서 비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런 나를 보고 그는 살포시 말을 던졌다.
거 봐요, 다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무심한듯 부드러운 그 한 마디에 주마등처럼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스쳐 지나갔다. 드라마에서 들었던 그 명대사를 어디에든 쓰고 싶어 무심코 말해본 적이 있는데, 막상 내가 듣는 상황이 되니 생경했다. 아는 사람이어야지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껴야지만 입 밖으로 건넬 수 있는 말.
“처음 그 말이 가진 온기를 흉내 내고 싶어서 입에 담았을 때, 영 그 의미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적이 있어요. 정말 상대를 깊이 알아야지만, 그 영혼을 믿어야지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알고서는 언제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생길까 싶었는데.”
“안다는 것도 사실 꽤 먼 이야기 같아요,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데. 전 이해라기보다 유추와 공감이라 생각해요. 이해는 너무 큰일이라.”
“사소한 순간이 무서운 건 이해가 오해가 되진 않을까 싶은 두려움 때문인가 봐요. 이해는 늘 오해의 여지와 함께하니까. 혹시나 헛다리 짚은 거면 어쩌지, 원하는 게 이게 아니라면 싶은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죠. 그렇게 나 자신조차 무얼 이해하려 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까지 다다르는 거요. 결국 그 과정 중에 전 사랑이란 마음을 잃어본 적도 있어요.”
타인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건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라는데 당신이 말한 고집이 이런 걸까, 언제나 나에게만큼은 관대하지 않은 거. 이해와 오해 사이를 극복하는 건 둘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의 깊이를 좁히는 것이다. 덜도 더도 말고, 아무것도 아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