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으로 맞서 싸운다는 게,
세상에 날 덜지는 용기일까요?
그 영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절로 스민다. 세상 부질없는 질문들과 답변들 틈에서 우리가 좇는 진실은 무얼 보여주고 싶은 걸까? 나를 작아도 너무 작은, 미립 분자에 불과한 존재로 만드는 새로운 발견은 어디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그 발견을 알게 된 이후의 우리는 서로가 돌이 되어서 돌을 바라보는 느낌일까? 부동하는 중에도 우리는 사고와 감정을 이어갈 수 있을까?
“에에올을 보면서(이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우린 모두 혼자서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했던 부분이 사랑스러우면서 공포스러웠어요. 사랑이 필요한 이유를 상기시켜줘서 좋았지만, 다정함과는 먼 세상을 보면서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막연해지고 두려워졌달까요.”
“전 죄책감도 들었어요. 세상이 다정함을 잃고 있는데 난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혼자만의 삶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 아니었을까, 주변의 슬픔과 고뇌를 얼마나 많이 놓치고 있었을까… 심지어 에블린은 자신의 남편과 딸의 아픔을 앞에 두고도 몰라보고 있었는데 나라고 다를까.”
“감독이 영리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딸의 행동에 프레임을 씌워 ‘조부 투파키가 정신을 차지해서 그런 거’라고 말하는 에블린을 보면서, 조이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딸의 모습으로, 정확히 표현하자면 엉망투성이인 엄마를 닮지 않은 딸을 원하는 걸 저런 방식으로 표현해 내다니.”
“돌이 되는 방식도요. 그 어떠한 행동도 이뤄질 수 없어 모든 것이 부질없는 세상을 저렇게 그려낼 수도 있구나. 앞선 유머러스함도 그렇고 표현력이 출중해서 더 흡입력이 있었어요.”
“소여 씨는 그 유머가 잘 맞나봐요. 전 그저 심심하게 보다가 뒤로 가면서 판타지로 사회철학을 논하고 있어서 호되게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어요. 뒷부분이 너무 좋아요.”
“'최악의 나'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가능성이 더 무한하다는 말도 묘하게 설득력 있고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잖아요.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더 절박하게 바라게 되는 거죠.”
“본인은 어때요?”
나의 절박함은 늘 시선 끝에 가만히 앉아 다른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 닿지 않은 곳에 내 소망이 있었고, 시선이 마주친 순간에는 왠지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기억이 수평선 너머 아득해지고 나서야, 내가 경험한 순간이 상상에 불과했다 느껴질 법한 순간이 다다라서야, 부질없는 아름다움과 보잘것없는 내 마음이 색이 바래 형체조차 불분명해지고 나서야, 아득하게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와 털썩 주저앉곤 했다.
“세상 모든 것을 올려둔 그 베이글이 이해가 됐었죠. 그 붕괴가 자신을 파괴하는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다행히 전 그 베이글을 멀리 알지 못하는 곳에 묻어뒀어요, 어디에 있는지 흔적도 모르게.”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 마음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구멍이 있다면 메웠을 텐데, 그저 흩날리는 먼지들이 주변을 맴돌며 바스러지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이대로 괜찮다, 쌓아올린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다. 멀리, 꽃길만 걸으라던 당신의 말이 아직도 허공에 매달려 있다, 부적처럼.
아름다운 소리만 반짝이는 풍경처럼.
그런데 제 베이글은
종종 얼굴을 닮았던 것 같아요.
다정함을 표방한
아름답고 침울한 베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