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너무 걱정돼

초등학생 육아일기 (4) #조퇴, 불안, 마음 달래기 연습

by 티치미

전화벨이 울렸다. 무심코 바라본 전화기에 뜬 8글자. '큰아이 담임 선생님'


요즘 같은 때에 아침 10시에 학교에서 오는 전화라면 둘 중 하나였다.

아이가 아프거나,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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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벨이 두 번 울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속엔 여러 걱정이 오갔다.

잔뜩 긴장해 받은 수화기 너머로 담임 선생님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님, 00가 지금 수행평가를 보고 있는데요. 턱 밑에 뭐가 만져진다면서 매우 불안해하네요.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가보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혹시 아이가 아프거나 열이 나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우연히 발견한 모양인데, 걱정이 되나 봐요."


이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고 차분히 생각을 해본다.


큰 아이는 매우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아이다. 꾀병을 부리거나 조퇴한다는 말을 쉽게 할리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딴에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 짐작이 된다. 우선 아이의 사정을 들어봐야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네, 선생님.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가 마치고 아이와 통화를 한 번 할 수 있을까요?
수업에 방해되지 않을 때 부탁드리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도 언젠가 목 주변에 볼록 튀어나온 것들이 있어서 나름 걱정하고 찾아본 기억이 있다.

중학생쯤이었는데 불편한 마음에 자주 만지곤 하다가 잊었다. 그리고 다시 찾았을 때는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그 생각이 나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아이와 할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턱에 뭐가 생겼어.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심각할 거 아닐까?"
"엄마도 전에 그런 게 생긴 적이 있었어. 걱정되고 불편했었는데, 잊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사라졌더라고. 그 부분이 딱딱하거나, 아프거나 열이 나니?"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럼, 엄마에게 전에 생긴 거랑 같은 거 같은데. 엄마가 찾아보니까 간혹 피곤하거나 할 때 생긴다고 하더라고. 요즘 좀 피곤해서 그런 것 같아. 그래도 걱정되면 양호실에 한 번 가볼래? 선생님께서 보시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시면, 바로 가자. 알겠지?"
"네, 그럴게요."
"응, 다녀와서 병원 가라고 하시면 바로 연락해줘!"


잠시 후 담임 선생님께서 연락을 해오셨다. 나나 담임선생님 생각대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우연히 아이가 그것을 발견하고 두려운 생각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하셨다. 보건 선생님도 괜찮다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고..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이 일로 수업에 집중을 못 하고 있으니 원하면 와서 데려가도 좋다고 내게 결정하라고 하셨다.


고민스러웠다.

맘 졸이며 앉아 있을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맞는 결정인지 고민스러웠다. 선생님 말씀은 어차피 수업에는 집중을 못하고 있으니 공부마저하고 데려간다는 것이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의미셨는데, 내가 염려하는 건 공부가 아니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수많은 불안이 우리를 찾아온다. 아무러지 않게 외출하다가도 어느 날엔 ‘가스불은 껐나? 문은 잠갔나?’하고 의문이 생겨 당장이라도 달려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달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아이가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아이의 내면의 힘에 기대를 걸어보았다. 그리고 경험하길 바랬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현실적으로 판단하여 실체가 없는 자신의 불안을 맘 속에서 내쫓는 그런 경험 말이다.



"선생님, 제가 외출 중인데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아픈 것은 아니니 지켜봐 주시고 상황이 더 악화되거나, 수업에 방해가 돼 집이나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드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불안한 마음을 다스려보는 것도 필요한 공부 같아서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하교시간까지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교문 앞에 가 기다리니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는 히죽거리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고 괜찮은지 물었다. 친구가 과학적 근거를 대며 '종양'과 같은 큰병에 어린아이가 걸릴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해주었다나? 이제 괜찮다며 친구와 학원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나 참.... 어이가 없지만... 아이가 좋아졌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다 자랄 때까지는 그 사람의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좀 불편한 것을 참아 병을 키우면 그저 아둔한 스스로를 탓하고 말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내 결정이 아이를 아프거나 힘들게 하는 것은 도저히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조급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하게 된다. 또 내 몸이나 생각이 아니다 보니 너무 가볍거나 무겁게 치부하는 것은 아닌지 매일 반성한다.



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엄마가 당장 달려오지 않아 서운했다고 했다. 나 또한 바로 가지 못한 사정을 말하고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아이는 몇 번이고 내 턱 주변을 만지고 자신의 것과 비교하는 것도 모자라 내게 괜찮다는 말을 여러 번 듣고서야 마음을 완전히 놓는 것 같았다. 내 권유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마도 이성의 영역에선 별 일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듯했다. 다만 불현듯 찾아온 불안이 쉬 떨쳐지지 않아 엄마의 확신에 찬 말이 몇 차례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쫓는다는 주술사의 주문처럼 말이다.

괜찮아, 다 괜찮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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