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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근 Sep 19. 2021

아버지의 이부자리

제 목 :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

부 제 :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지은이 : 이상운

출판사 : 문학동네

출간일 : 2014년 12월 11일

사 양 : 256쪽 / 145ⅹ210mm          



느지막이 일어난 어느 아침. 물을 마시려다 널브러져 있는 아버지의 이부자리를 보았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셨던 걸까.


먼저 베개를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아버지 머리를 잠든 내내 홀로 받아 준 베개. 머리 누인 곳이 꽤나 움푹해 보였다. 요즘 들어 근심이라도 있으신 걸까. 베개를 베고 누운 아버지를 상상하니, 밤새 무슨 생각을 하며 잠드셨을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것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었던가? 다음으로 이불을 집어 탁탁 털었다. 그리고 양옆 여분의 길이를 똑같이 맞춘 후 주름을 곱게 폈다. 오늘 아버지의 하루도 이처럼 정리된 날이 되기를.


나는 문득, 정말 문득 아버지의 누일자리마저도 떠올려 버렸다. 아버지 삶의 마지막 잠자리. 영원한 잠에 들기 바로 전, 스르륵 하고 빠져들 듯이 희미해지는 시야 너머로, 아버지는 삶의 마지막 밤에 무슨 생각을 하실까. 그 밤이 지나면 아버지는 더 이상 뒤척이지 않으실 것이고, 나는 아버지의 이부자리 또한 더 이상 정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과연 그 순간을 견뎌 낼 수 있을까. 또 그 순간 이후의 순간들을 견뎌 낼 수 있을까.


며칠 동안은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그러나 TV였던가, 라디오였던가, 아니면 내 마음속이었던가. 불현듯 ‘아버지’라는 단어가 뇌리를 강하게 울렸고, 나도 모르게 저 너머로 보이는 아버지의 침대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지만, 내 가슴속은 아주 뒤척이고 뒤척여 어지럽혀졌다. 나는 책장으로 가서 책 한 권을 급히 찾았다. 어느 서점의 신간 코너를 훑다가 본, 제목이 담담히 슬펐던 책. 마음 한 편이 아려 그 길로 사 온 책. 괜히 부끄러워 아버지 몰래 읽은 책. 울다가 들킬까 봐 방문 닫고 몰래 읽은 책.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는 이상운 작가가 그의 아버지를 1254일 동안 직접 간병했던 경험의 회고이자, 아버지의 이부자리를 마지막까지 정리한 한 아들의 고백이다. 그의 글은 울먹이지 않는다. 그의 글은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한 명의 대한민국 중년 남성으로서 겪은 일을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쓴다.


나는 고령의 병든 아버지가 당신 삶의 터전과 감정적 유대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당신 집의 당신 이부자리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을 함께하는 동안 느끼고, 생각하고, 배운 바를 여기에 담았다.(4쪽)


작가는 아버지를 감상하지 않는다. 작가는 점차 소멸되어 가는 아버지의 육체와 정신에서 삶과 죽음의 관계, 늙어가는 것의 의미, 인간 존엄 등의 보편적 인간생명을 성찰한다. 또 작가는 현실에 분개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종합의료시설의 실태, 노인 복지 제도의 문제점을 차갑게 지적하고, 초고령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을 직시한다. 요컨대 그의 글은 아버지이자 결국 스러져 가는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 그리고 그 길고 느린 죽음의 여정에서 얻은 갖가지 통찰들이 뭉쳐져, 먹먹하고 묵묵하다.


내일은 아버지의 이부자리를 다시 정리해 보련다. 아니, 그 전에 아버지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부자리 위에 한번 누워 보련다. 아버지로부터 삶이 시작됐고, 아버지에게 삶을 배웠으며, 아버지와 같이 삶을 마치게 될 것이기에. 나 또한 그렇게 작아질 것이다만, 아버지는 이미 그렇게 작아져 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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