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지구를 가꾼다는 것에 대하여
원 제 : Replenishing the Earth
지은이 : 왕가리 마타이
옮긴이 : 이수영
출판사 : 민음사
출간일 : 2012년 9월 21일 (원서 2010년)
사 양 : 209쪽 / 140ⅹ210mm
나에겐 여름에 태어난 아주 귀여운 조카가 있다. 산등성이에 빽빽이 뿌리 내린 나무에서 도로변에 나란히 서 있는 가로수, 주택 단지 내 조그만 화단의 풀들까지 모두 절정의 푸르름을 뿜어내는 그 여름날의 생명. 그래서일까, 아기의 미소 띤 얼굴은 여름 낮의 잎사귀처럼 싱그럽고, 아기의 자는 얼굴은 나무 그늘 밑의 바람처럼 평온하다. 나는 이따금 조카의 미래를 그려 보곤 한다. 매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주위는 온통 따사로운 여름 햇살 아래 푸르른 생명으로 가득 차고, 이 아이의 삶도 같은 햇살을 받으며 만발한 여름을 닮아 가겠지.
이 미래는 나만의 소망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이웃이, 우리의 아이들이 맑은 햇빛을 맞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깨끗한 물로 씻으며, 푸른 잎사귀를 만지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자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과 자연을 따로 분리해 놓은 채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고만 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편을 선택한다. 인류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안타깝긴 하지만 자연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실제로 나무 몇 그루 즈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를 상당히 지탱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지구를 가꾼다는 것에 대하여』는 바로 그 생각이 우리의 푸르른 여름, 아름다운 자연, 단 하나뿐인 지구를 부수고 있다고 일갈한다. 책은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에서 생존의 문제로의 사고 전환을 촉구한다.
이 책의 저자 ‘왕가리 마타이’는 케냐 태생의 환경운동가이다. 아프리카는 무분별한 벌목으로 인해 사막화가 심화되고 생태계가 악화되고 있었다. 그녀는 훼손되어 가는 밀림과 자연환경을 복원하고자 ‘그린벨트 운동’이라 불리는 나무 심기 운동을 이끌었다. 그 결과 무려 450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아프리카에 뿌리 내렸다. 나아가 그녀는 식수와 땔감을 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구속당했던 가난한 이들이 조금씩 해방되는 것에 주목해서 아프리카의 인권 신장과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힘썼다. 그녀는 아프리카의 자연환경을 되살리고 인간의 존엄을 정성껏 키운 공로로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인류의 지위는 이원적이다. 가장 의존적이기에 책임이 있고, 가장 유약하기 때문에 피조물의 정점에 위치한다. (72쪽)
그녀는 기독교 성서에서 인류의 지구적 위치를 보여 주는 이야기를 읽어 낸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느님은 해와 달을 비롯하여 모든 식물들과 동물들을 창조한 후 마지막 금요일에 인간을 창조한다. 이는 인간이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위대’하다는 사실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그들 중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진실을 의미한다. 그녀는 우리가 지구에서 가장 의존적인 존재임을 인지하는 동시에, 그것이 인간을 지구에서 가장 의무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구에게 가장 많은 것을 받고 있으므로 가장 많은 것을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지구를 무료 시식 코너쯤으로 여겨 그저 받아먹고만 있다. 책은 우리가 먹고 버리는 이쑤시개가 지구에게는 흉기가 되고 있음을 갈파한다.
식탁 분위기를 화사하게 꾸미려고 동네 작은 가게에 가서 (…) 그 장미꽃은 케냐의 꽃밭에서 화석연료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비행기에 실려 온 것인지도 모른다. 케냐에서 양식장으로 쓰이거나 야생동물들이 헤엄을 치고 새끼를 낳았던 호수의 물을 끌어다가 길러 낸 것인지도 모른다. (70쪽)
왕가리 마타이는 케냐 전통 부족 중 자신이 속한 키쿠유족의 문화나 기독교적 문헌과 사상에서 정신적 근원의 대부분을 탐색해 낸다. 혹자는 지금의 것을 버리고 과거로 회귀하자는 전통주의적, 또는 하느님이 창조했기 때문에 사명감으로 보호하자는 종교적 색채가 가미됐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도 밝혔듯이, 지구는 어떤 부족에도 속해 있지 않으며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구가 우리를 살게 만든다는 순수한 사실이며, 우리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존경과 경외를 표해야 한다는 진실이다. 그녀는 푸른 지구를 까맣게 태우고 있는 불길을 끄고자 우리 모두 벌새가 되기를 소망한다. 멀뚱히 서 있기만 하는 ‘위대한’ 사자가 아니라, 물 한 모금일지 몰라도 날개를 멈추지 않는 ‘작디작은’ 벌새가 되기를.
우리는 스스로가 벌새처럼 작게 느껴진다 해도, 작은 부리로 그 구슬만 한 물방울을, 다시 말해 작은 변화의 씨앗을 물어다 필요한 곳에 떨어뜨려야 하며, 아무리 성공할 가능성이 적더라도 그 일을 되풀이해야 한다. (192쪽)
책의 첫 장에는 “나의 손녀, 루스 왕가리에게”라고 적혀 있다. 그녀는 2009년 자신의 손녀가 태어났을 때 지구를 가꾸는 것에 대한 시급함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손녀가 지금 자신의 나이가 되었을 때 “당신들은 왜 이렇게 했나요?”라며 실망하고 분노한다면……. 그녀의 손녀와 나의 귀여운 조카는 같은 여름을 보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라나는 모든 아이들은 같은 미래를 공유할 것이다. 그들이 훗날 정말로 그 미래에 도달했을 때, 그날의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무성히 자란 잎사귀 아래서 푸르게 웃고 있을까, 아니면 거친 모래 바닥 위에서 바스러지고 있을까? 우리의 여름이 결코 우리만의 여름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구를 가꾼다는 것에 대하여』가 독려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