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미드가 된다면 좋을까, 나쁠까

캐나다 싱글 하우스에 살면 생기는 일

by 캐나다글쟁이



새 집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밴쿠버가 어떤 곳인지 좀 더 알아보자.

사진 속 스티커가 밴쿠버이고, 한국에서 비행기로 직항 10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헐리웃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LA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실리콘밸리의 샌프란시스코가 나오고, 계속 가면 영화 "트와일라잇"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배경인 워싱턴주가 있다.

거기서 국경선을 넘으면 밴쿠버가 나타난다. 그래서 밴쿠버에서 자동차로 미국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태평양과 인접해 있어 캐나다에서 가장 기후가 좋은 도시. 바다와 호수가 많아 자연이 훌륭해서 캐나다인뿐 아니라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든다.


잠깐 부동산 얘기를 하자면, 부동산 법칙은 어디나 똑같아서 기후 좋은 밴쿠버는 집값이 비싸다.

밴쿠버 시내에는 서울보다 비싼 집은 물론 강남 집값을 훌쩍 넘는 곳이 많다. 학군 좋은 곳의 집값이 가장 비싸고, 대중교통이 통하는 곳의 가격도 높다.


원래 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치솟는 렌트비 때문에 외곽으로 떠나고 있으며, 이는 정치인의 지지율을 좌우할 정도로 큰 문제다. 여기도 집값이 뉴스의 단골 소재다.




캐나다 하면 떠오르는 이런 풍경은 몬트리올, 토론토, 오타와, 캘거리에서 볼 수 있으며, 밴쿠버에는 추위가 없고 1년에 눈이 며칠 내리는 정도로 따뜻하다.




캐나다의 주(Province)는 우리의 도와 비슷한 개념이며, 비유하자면 부산광역시가 있는 경상남도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약자로 BC주라고 할 수 있다.


보다시피 BC주는 남한의 약 10배인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TMI를 하자면 우리나라 지역감정은 캐나다에서 명함도 못 낸다. BC는 전반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비슷한 점이 많으며, 주민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점은 꼭 기억하자.





한국의 수도권처럼 밴쿠버 근교 생활권을 메트로밴쿠버라고 부른다. 서울에 살 때 집 근처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도보 가능한 슬세권을 사부작사부작 돌아다니는 생활을 추구했는데... 여기선 불가능하다. 앞서 말한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신도시 같은 곳에 자리 잡았다.



첫 입국과 정착


우여곡절 끝에 캐나다에 땅을 밟았다.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혼란의 연속이라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출국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하겠지만 오후 6시 출국이었는데 그날 아침 10시 반에 피부과에서 수술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약 타러 갔다가 살을 째고 바늘로 꿰매게 된 사건이 생겼다.)


36도를 넘나드는 날씨는 숨 막히게 더웠고, 짐 분류하고 버리는 과정에 지쳐 정든 집을 떠나는 섭섭함보다 시원한 마음이 컸다. 이사에 지치고 짐 정리에 넉다운되어 아쉬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 비자를 받고 정착서비스 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 집주인 암스트롱 부부의 웰컴 카드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내용이 꽤 정성스러워 감동했다.


그 카드를 통해 그들이 세입자를 깐깐하게 고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아이 둘과 커다란 강아지를 키우며 이곳에 살다 스코틀랜드로 텍스타일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갔다. 살림살이 대부분을 그대로 두고 떠났기 때문에 집과 살림을 소중하게 다뤄줄 세입자를 매의 눈으로 고른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싱글하우스는 단순히 주거 장소가 아니다.

옆집 사람 몰라도 상관없는 아파트와 달리, 하우스에는 특별한 삶의 방식이 있고 우리는 그 생활방식에 적응해야만 했다.


우선 나무집이라 보안도 아파트 같지 않고, 이웃과 마당도 공유하는 삶이라 옆에 누가 사는지 엄청나게 중요하다. 민폐족이 들어오면 동네 전체가 괴로워지는 구조 그 자체였다.


이 동네는 매우 조용하고 주변에 모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이 살고 있다. 아마도 학군이 괜찮은 곳이라 그런 듯하다.

여기선 이웃 간 교류가 매우 활발하고 집주인인 가브리엘 -이웃들이 개비라고 부름-과 이웃들의 관계가 끈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변 이웃 아이들이 우리 집 작은 애와 동갑이거나 살짝 어렸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많았다.


집을 계약할 때는 전혀 몰랐던 내용을 이 동네에 살면서 깨달았는데, 또래 아이를 키우며 이웃과 잘 어우러질 이웃으로 우리가 무려 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





그렇지만 기쁨도 잠시.


서울에서는 어지간한 사이가 아니면 이웃을 집에 초대하거나 음식을 선물하지 않았다. 서로 어느 정도 친해진 다음에 집을 오가는 것이 보통인데... 밴쿠버에 이사 온 직후, 우리 가족이 시차적응도 마치기 전에 갑자기 옆집 가족이 찾아와 느닷없이 이웃사촌 관계를 맺게 되었다.


미드 좋아하나?

조금 오버하자면, "위기의 주부들"이라는 미드 속에서 내가 새로 이사 온 이웃 에피소드의 등장인물이 된 느낌이었다.

그 미드에서 옆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여자들은 빵을 굽는다. 그리고 빵 먹어보라는 핑계로 이웃집 문을 여는데... 우리는 정식 초대를 받아버렸다.

너무나 당연히 의사소통은 영어이고, 그들의 즐거운 담소는 우리에겐 리스닝과 스피킹 테스트가 가 됨 ㅠㅠ


고백하자면 나 역시 캐나다에 도착하기 전 근사한 해외 생활을 꿈꿨다. 상냥한 캐나다인과 즐겁게 커피를 마시고, 서로 집을 오가며 아이들 플레이데이트 하는 평화로운 미드의 한 장면 말이다.


그/러/나


막상 옆집 가족이 우리를 찾아오자 내 머릿속이 하얘졌고, 난 어버버 하기 바빴다.

압박 면접을 받듯 무작위로 쏟아지는 질문에 미소 짓기는커녕 더듬거리기만 했다.


환상 속의 나는 영어를 잘했으나 현실은...

영어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쭈구리.


sticker sticker



캐나다 정착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지.

출국 준비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눈치챘어야 했나?

아니면 집주인이 영어로 가족 인터뷰를 볼 때 느꼈어야 했을까.

끈끈한 이웃 사이에 파고들어 간 이방인 신고식이 너무너무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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