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는 왜 나이아가라 폭포가 없지?

머나먼 토론토와 밴쿠버

by 캐나다글쟁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하니, 미리 고백부터 하겠다.

비록 지금은 캐나다에 살고 있으나 불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모른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저 완벽한 무지상태 였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미국 땅도 밟아봤지만 유독 캐나다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국 드라마에서 캐나다인을 ‘촌놈’ 취급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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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캐나다 지식이라곤 미국 위에 있다는 지리 정보.

단풍잎 국기, 나이아가라 폭포, 메이플 시럽, 그리고 호수 많은 나라.



아, 하나 더 있었다.
오로라.


‘언젠가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를 봐야지.’
그게 내 버킷리스트였다.


하지만 검색을 해보니 영하 30도에서 새벽 3시에 중무장하고 북극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금 버킷리스트를 접었다.


“아니, 버킷리스트를 그렇게 빨리 포기해도 돼요?”


그렇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포기가 빠른 인간이다.


만약 당신이 ‘포기는 김치 담글 때만 하는 것’이라 믿는 분이라면
앞으로 펼쳐질 내 이야기에 꽤나 당황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이렇게도 살아간다고??”


네.
저도 될 줄 몰랐습니다만 되네요.
아이 둘 데리고 캐나다에서 제법 잘 살고 있거든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 ‘포기 잘하는 성격’이
이곳에서 꽤 도움이 되었다.


(스포일러하자면, 캐나다에 온 지 몇 달 만에 뒷마당 슬리퍼 차림으로 버킷리스트를 달성했다.
당사자인 나조차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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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다.
지금 이렇게 캐나다에 살고 있는 것도 그 우연 중 하나다.

미혼일 땐 노력하면 인생이 내 뜻대로 굴러갈 줄 알았다.

하지만 첫 아이 임신 때 그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다.


3년 반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상황을 대화로 재구성해보자.



의사: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나: 선생님, 무슨 문제인가요? 제가...
의사: 아뇨. 두 분 다 이상 없습니다.
나: (멍...) 이상이 없는데, 왜요?

의사: 글쎄요. 난임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환자분처럼 특별한 사유 없이 임신이 늦어지는 경우도 꽤 흔합니다.


이후 첫째와 둘째를 연년생으로 출산하면서
나는 인간의 계획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배웠다.
그때 겸손을 배웠고,
지금의 내 인생관이 생겼다.


우리 가족의 캐나다 생활도 결국은 우연이 불러온 결과였다.

간단히 가족 소개를 하자면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연년생 남매는 현재 ‘중2병’을 앓는 중이다.


교수는 6년에 한 번씩 안식년(연구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은 계속 일을 꼬였고 아이들 학년이 올라가면서 난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다 뒤늦게 기회가 찾아왔다.
예정보다 2년 늦은,
작은 아이가 중1, 큰 아이가 중2가 되는 여름이었다.


큰 애가 막 중1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을 시작했던 날, 내가 했던 생각은 딱 하나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까?”


그 질문 하나로 여름 내내 고민했고,
가을쯤엔 ‘Yes’라는 답을 내렸다.

그래서 아이들 입시는 일단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캐나다행을 결정했다.

사춘기 때 해외에 나가면 부모 자식 사이가 좋아진다는 근거 없는 소문에도 은근히 기대를 걸었다.


과거 미국 텍사스에서 백인에게 미묘하게 차별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 이번엔 ‘이민자가 많은 도시’로 정했다.

그렇게 토론토와 밴쿠버, 두 도시를 놓고 고민했다.

토론토가 서울이라면 밴쿠버는 부산쯤 된다고 할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밴쿠버가 토론토 근처에 있는 줄 알았다.

검색을 해보니 시차가 3시간.

비행기로 4시간 반, 자동차로는 무려 일주일 거리라니!

그제야 캐나다의 땅덩이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 거기까지 깨달은 상태로 유학원을 찾아갔다.


"중학생이면 당연히 토론토죠."


몇몇 유학원에서 이렇게 대답했지만, 우리는 밴쿠버를 택했다.

답답한 서울에서 벗어나 자연과 가까운 도시에서 공부도 좀 내려놓고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어쩌면 치열한 경쟁보다는 여유로운 삶을 꿈꿨던 것 같다.

(유학원은 상담만 받고 수속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밴쿠버에 정착한 덕분에 캐나다에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본다는 나이아가라 폭포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폭포 대신 여기서 바다와 호수, 산과 들판, 그리고 야생 곰까지 실컷 보며 살기 때문이다. 또한 메이플 시럽도 이제는 지겨울 만큼 먹었다.


마지막으로, 유튜브에서 ‘밴쿠버’를 검색하면 뜨는 빅나티의 노래.

그는 캐나다로 떠난 첫사랑을 그리며 이 곡을 썼다고 한다.

한국에서 미지의 도시를 상상하던 그 시절의 나처럼,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나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https://youtu.be/jy8eGRwI9h8?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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