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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현주 Feb 16. 2024

어려운 바운더리: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공감 능력이 높고 남을 배려하는, “공감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은 그만큼 감정적이고 관계적인 에너지 소모가 항시 커서 이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민한 이들은 현실 세계뿐 아니라 가상 세계 (드라마, 영화, 소설, 인터넷 등) 의 인물과 상황에도 쉽게 감정 이입을 느끼고 자신의 일인 것처럼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초민감자, 엠패스들은 잔인하거나 무서운 작품들을 아예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 상황 속에 실제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내가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못 본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신기하고 이상하게 바라봤다. 이건 커서도 마찬가지인데 흔한 반응은, “그럼 도대체 뭘 봐요?“ 였다. 심지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것도 좀 봐야죠. 세상에 그런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뭐 일견 완전 틀린 말은 아니다. 심지어 이렇게 영상화나 소설화되는 것들은 현실의 일들을 그나마 최대한 미화해서 각색한 것이란 얘길 듣고 참 씁쓸함을 느꼈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매우 제한적이다. 폭력적이거나 잔인하고, 차별적이거나 불편한 내용들이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책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내용이 그렇게 구성이 되어버리면 일단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람 때문에 힘들었을 때 가장 의지했던게 책과 노래 가사였으니 말이다. 다만 감수성 맞거나 힐링되는 소설, 에세이, 심리서, 전문서나 실용서를 주로 본다.


이런 책들만 해도 너무 많아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내 취향이 아닌 이야기들에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를 모르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서점이나 영화관 등에 갔을 때 내가 볼 것들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취향인 작품이 나오면 그만큼 반가워하며 “덕질”을 하게 된다. 작년에 나왔던 디즈니와 픽사의 합작 작품, ”엘리멘탈“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아서 영화관에 세 번을 가서 봤다. 같은 작품을 그렇게 여러번 본 건 ”해리포터“ 이후로 거의 처음이었다.


이렇게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은 못보니까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거리두기가 되었다. 물론 가끔 모르고 봤다가 거리두기에 실패하고 짜증을 느낀 적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현실 세계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는 여타 작품들과 달리 제대로 된 제목도 없고, 줄거리나 예고편 등이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니 알아서 거르고 거리두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채용 공고를 보고 들어갔는데 생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은가?


만약 나르시시스트 같이 작정하고 속이고 착취하려 드는 이들은 더더욱 거르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마치 악덕 기업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최대한 좋은 인재를 물색하고 최대한 싼 값에 부려 먹으며 일 시키는 기업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남들을 은밀히 착취하면서도 자기 이미지 관리는 열심히 한다. 이중 인격적 가면으로 가스라이팅하며 가학적 우월감에 집착하는 이들이다.    


세상에 잔인하고 끔찍한 소설과 영화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 세계에 나르시시스트, 악성 나르시시스트들이 많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이 연재를 읽는 분들 중에도 나르시시스트 피해자들이 멘탈이 약해서 운 나쁘게 소수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만난 거 아니냐며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타입의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사람이 그렇게까지 악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디 외딴 섬에 혼자 살아가지 않는 이상 나르시시스트들과 한 번도 얽히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물론 나르시시스트 성향도 정도의 차이가 있고,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잘 모를 때는 그들의 기만적인 행위들이 잘 파악되지 않기 마련이다. 자신의 주위 현실에서는 잘 없다고 해도 영화나 소설을 읽다보면 너무 쉽게 ”미화된 악인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악인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스토리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


가상 세계에도 현실 세계에도 넘쳐나는 나르시시스트에 대응하기 위해 예민한 사람들이 신경써야 하는 것은 바로 ”바운더리 (boundary)“ 이다. 해석하면 ”경계“ 정도의 사회 심리학 용어인데, 중독자 부모가 있는 역기능 가정의 자녀들이 관계에 있어 경계 설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알려진 용어이다. 우리는 타인의 약한 점에 공감할 때 평소보다 경계 태세를 내리고 그 사람의 일이 나의 일인 것처럼 느끼고 반응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이렇게 경계가 느슨해졌을 때야말로 아군인 척하면서 적군의 진영에 숨어 들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이 나르시시스트에게 당하기 쉬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을 너무 의심하지 않고 타인들의 입장이 너무 잘 느껴지기 때문에 나르들의 덫에 걸리기 쉽다. 내 편이라고 생각해서 경계를 소홀히 하다가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공감 능력이 높고 배려심이 높은 편이라면 특히 이 바운더리에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안그래도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너무 잘 느껴지는 내적, 외적 자극에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 것이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믿었던 나르시시스트에게 경계가 무너진 채로 교활한 가스라이팅 공격을 당하다 보면 그 피해 정도가 굉장히 심각한 편이다. 특히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의 자기 신뢰와 자아 존중감을 가차없이 훼손하기에 더 파괴적이다.    


타인들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도 큰 피해 중 하나이다. 또 다시 그렇게 안좋은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큰 과제가 된다. 자신의 바운더리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어가며 타인들과 행복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해 감을 잡아 나가는 것은 정말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에 직결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해로운 사람을 알아보고 멀리하며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 없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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