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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현주 Mar 01. 2024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한다는 것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는 느낌일 때가 있었다. 도대체 이 상황은 언제쯤 끝이 날까, 나는 언제쯤 괜찮아질까, 나아지긴 하는 걸까, 라는 질문들을 끝도 없이 반복하던 오랜 시간들이 있었다. 힘들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심리학 서적들을 찾아보면 대부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게 안되니까 힘들어하고 있는 거였는데 말이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 때문이었을까? 항시 불안과 공포에 노출되다 보니 공황장애 환자가 급증했고, 강제적으로 사회적 고립이 되다보니 여러가지 심리적이고 관계적인 문제들이 증가하여 사회적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팬데민도 서서히 물러가고 2023년, 마침내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어쩐지 서점의 베스트 셀러 리스트에는 그 동안 찾아볼 수 없던 염세주의와 회의주의에 대한 책들이 순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팬데믹도 종식이 되었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염세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물론 악화된 경제적 상황이나 불안한 세계 정세와 같은 상황들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인류는 긍정적인 사고만 강조한다고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체감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고 고통 없는 삶은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런 이야기들이 딱히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는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큰 힘든 일들이 나에게 닥칠 것이라는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도 사실 힘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왔던 게 아닌가 싶다.


시간이 흘렀고 소위 청년기에 진입한 나의 삶은 긍정이란 것을 찾아보기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서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보려 했고, 괜찮다고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나르시시스트들을 만나 심각한 내상을 입거나 20년 가까이 함께 한 강아지를 떠나 보내며 펫로스를 겪을 때 무너져가고 있었다. 긍정적일 수 없는 사건들을 겪으며 찾아온 깊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찌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예민한 사람들은 감정을 남들보다 깊게 그리고 오래 경험한다. 이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모두에 해당한다. 문제는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큰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예민한 이들은 긍정적인 사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깊이 느끼는 바람에 상황이 끝난 후에도 슬픔, 불안 등에 압도되어 있는 것이다.


마음 챙김의 영향을 받아 만든 수용 전념 치료 (ACT: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는 이런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접근법을 제시한다. 삶의 고통이 다가왔을 때, 그것을 애써서 비가시화하려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고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고통을 통제하려고 하는 대신, 그 감정을 알아차리며 마음 안에 공간을 주고 머무르거나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힘들거나 불편한 감정들을 억제하거나 통제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시간을 주면서 거기에 압도되지 않고 현존하는 것이 수용 전념 치료의 목표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면 과거의 트라우마를 다루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만 현재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보다 잘 다룰 수 있게 되어 걱정이나 불안에 너무 사로잡히지 않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이어서 알아차리기 힘든 감정의 통제를 내려놓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고통을 두려워하는 방식으로는 그것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고통이 있는 가운데서도 삶이 건네줄 수 있는 여러 선물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긍정에도 부정에도 너무 집중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현재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과거도 미래도 소중하지만 그것들 또한 다 지금이라는 순간으로 만들어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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