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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현주 Feb 26. 2024

완벽주의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완벽하다는 말은 언뜻 보면 나쁜 말이 아닌 것 같다. 부족한 점이 없이 다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사람이 되라고 사회는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든 부족한 면이 있는데 이것을 부정하고 완벽을 위해 집착하는 것은 강박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이어진다.


자율 신경 밸런스 측면에서 봐도 완벽주의는 교감 신경만을 지나치게 활성화시키고 이완을 위한 부교감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엑셀만 밟으며 나아가는 삶으로 비유해도 좋을 것 같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다 보면 심신의 건강에 무리가 오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완벽을 요구한다. 완벽함을 선망하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매우 강한 편이다. 이렇게 허상을 쫓는 불건강한 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힘들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낄 확률이 매우 높다. 완벽주의가 건강하지 않은 것이라는 인식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적대적, 학대적 분위기라 할 수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사람들에 대한 기준이나 기대들이 비현실적으로 높으면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학대하고 착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의 기준이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이나 타인을 돌보지 않고 희생시키는 경향이 있다. 약한 점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나르시시즘과 깊이 연관되기도 하다.


완벽주의가 이렇게 약점을 억제하는 측면은 예민한 사람들과 나르시시스트가 서로 만나게 되는 불행한 연결 고리가 되기도 한다. 완벽의 기준이 타인들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인 사람들이 생존 경쟁에서 완벽해지고자 타인들을 착취하는 나르시시스트와 얽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완벽하게 공감하려 노력 할수록 진흙탕에 빠져들게 된다.


예민하고 공감 능력 높은 사람들은 타인들을 챙기고 좋은 사람이 되느라 정작 자신에게는 불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너무 높은 도덕적, 윤리적 기대들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에게는 엄하고 타인들에겐 관대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들은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계산적이지 않은 척 하지만 매우 계산적인 이들의 타겟이 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의 내면에도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흐르는데 이는 예민한 사람들의 완벽주의와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가진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은 가차없이 차단하고 오직 생존과 성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집중하라는 목소리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이중적인 인격, 병적인 사고 방식은 다 여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예민한 사람들은 완벽주의를 내려 놓을 필요가 있다. 이게 나르와의 연결 고리가 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도 그렇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이나 기대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꾸준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단 예민한 사람들 뿐 아니라 너무 높은 기대나 기준은 달성할 수가 없기에 좌절과 불행, 부정적인 사고와 무기력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특히 타인들의 시선에 따라 자신을 재단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자책하며 삶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이렇게 불건강한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주기적으로 타인의 기대에 어느 정도는 초연해지는 연습을 하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공감하고 친절해지는 연습,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남들이 뭐라고 해도 그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태도들은 삶의 질과 행복감을 높이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내 삶의 기준이 없으면 남들의 시선에 흔들리거나 그것을 내재화 할 가능성이 높다. 남들처럼 사는게 안좋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그렇지만 각자에겐 각자의 때가 있을 수 있고, 나름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남들과 다르게 산다고 비난을 받거나 스스로 조급함을 느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삶이 제대로 풀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대체되고 자발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삶을 잘 지속해나가고 싶기에 불건강한 완벽주의를 자연스레 경계하게 된다. 완벽주의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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