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선생님이 브런치 작가에 당선됐어~!"
"그게 뭐예요?"
각자 하던 것을 멈추고 선생님 곁으로 모여듭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자신들이 발견한 마냥 말이지요.
"선생님이 여러 번 떨어졌거든... 그래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서 도전하고 또 도전했더니 드디어 된 거야!"
아이들 표정에는 유심히 들여다보니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꿈꾸던 일에 도전해서 결실을 얻어냈다는 사실에 내 마음처럼 기뻐해 주었습니다.
"선생님 축하드려요!"
"저는 이번에 학예 발표회 하는데 선생님 말 들으니까.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들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사람도 꿈과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 번 떨어졌지만 계속해서 재도전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아이들도 느껴지는 것이 많은가 봅니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그때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고야 마는 엄마가 롤모델이었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고생길에 오른 엄마는 어린 딸에게 크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지만 무심한 듯 툭툭 내뱉던 애정 어린 말투가 귓전에 들려옵니다.
차조심.
사람조심.
신호등은 파란불 켜지고 하나 둘 셋. (초록불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안 들리시나 봅니다.)
엄마의 18번은 지금의 내 자식에게 전의 되어 특별한 인사처럼 잘 써먹고 있습니다.
무언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생각이라도 읽은 마냥, 저를 살피시고 밖에서 속상한 일 당하면 나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내 편을 들어주셨던 어머니입니다. 어린 딸 하나 강하게 키워 보고자 애정 표현은 거의 없었지만 엄마는 참 든든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다음 만난 롤모델은 중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거처를 옮겨 다녀야 했던 저는 학업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친구들 사귀기만도 벅찬 아이였지요. 학교는 안 빠지고 꼬박꼬박 잘 다녔지만 눈에 띄게 잘하는 것이라곤 달리기와 놀기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시선에는 그다지 좋은 아이로 인식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마다 반 아이들 모두 돌아가며 교과서를 낭독시키셨는데 내가 맨 앞줄에 앉아서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으셨는지 맨 먼저 첫 구절을 시켜주셨습니다.
"민정아, 너는 커서 아나운서가 되면 좋겠다. 글자를 또박또박 잘 읽고 호흡도 좋구나."
살면서 어른에게 받아보는 최고의 찬사였달까요. 그 후로 학교 생활에 더욱 흥미가 생겼습니다.
중학교 1학년을 보내며 한 학기만 끝내고 경기도 일산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2학기 때 전학을 가서 어중간하려니와 위쪽 아이들은 대구가 시골이라고 여기는 탓에 저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왕따'를 겪어야 했습니다.
"야, 사투리 써봐. 킥킥킥"
"대구가 어디야? 밭매고 논매다 왔냐?"
그중에 자신도 돌림을 당할까 봐 몰래 도와주곤 했었던 아이들도 몇 있었습니다. 그때의 담임 선생님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번도 힘들다고 내색한 적 없었고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고 학교 끝나고 맛있는 간식거리를 사들고 선생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타지에서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여러 가지로 힘들지?"
끓어오르는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과자만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작은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아셨는지 어느새 내 손등 위에 선생님 손이 포개어져 있었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이라는 최고의 든든한 백을 두어 좋은 친구들과의 사귐도 퍽 좋아졌습니다.
이 외에도 저에게 삶의 방향을 틀어준 귀인 같은 사람들이 제 주변이 있었습니다. 삶이 힘겹고 포기하고 싶을 때 그분들을 생각하고 떠올리며 힘을 냈습니다.
토론 공부방에도 여러 사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가끔 수업 내용과 맞물려 선생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선생님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구나. 힘들었겠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구나. 생각하며 상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집니다. 자신의 치부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도 배웁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유를 얻는답니다. 선생님이 먼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도 힘들었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집니다. 가끔 부모님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애는 집에 오면 얘기를 안 해요."
기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모님들께서도 아이에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질문만 하고 여러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 없다든지 하는 대화 방식에 문제가 있거나요.
토론 공부방에서는 그날의 주제도 있고 교재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주제에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도 오고 가는 것이지요. 교재대로만 수업이 진행된다면 너무 진부하지 않을까요? 우리 친구들이 이다음에 커서 지금의 저를 떠올리며 '참 좋았던 선생님'이라고 기억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답니다. 수업에 집중하는 선생님의 태도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작게나마 동기부여가 되길 바라고 누군가에겐 롤모델이 되어 줄 수 있다고 믿고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