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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민 Oct 27. 2024

취업이냐, 창업이냐.

선택 장애를 딛고 나로 살기

 취업이냐, 창업이냐.

선택 장애를 딛고 나로 살기


 육아 최전방, 열심히 육아하면 보상이 따라올 것 처럼 열심히 살았다. 누군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도 만날 시간이 나지 않을만큼 그렇게 바쁜척을 해대며 스스로를 채근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것 저것 배운덕에 좋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되었고, 경험의 배경 지식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어릴적에는 "한 눈 팔지마."라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었는데 한 눈 많이 팔았더니 '사리분별' 하는 능력도 자연스레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눈치없는 사람'보다는 어느정도 '눈치 좀 있는 사람'이 더 나은 것처럼 나도 사람됨의 자격을 조금씩 챙겨갔나보다.

 20대 30대에는 이런저런 다양한 일들을 해 보는 것이 인생 경험이 되고 열정도 최고치라 성과가 좋다. 30대의 후반부에서부터 삶에 대한 진심이 마음에서 요동칠때, 집안 사정에 위기가 들이닥쳤다. 그것은 내가 '돈을 벌어야겠다' 마음 먹기 적절한 시기였다. 이리재고 저리재고 할 틈이 나질 않게 해 주었다.

 남편의 암 선고...다행이 초기여서 수술후 꾸준히 치료하면 괜찮을거라고 했지만 나는 충격이 잦아들지 않았다. 푸석푸석한 남편 얼굴이 마치 곧 사라질 것만 같아서 얼굴을 바라보기도 힘들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었다. 아이들이 방에서 재잘대는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지만 웅웅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갔다.

 처음에는 결혼 전 습관처럼 구인, 구직 광고를 찾아 보았다. 여태껏 나 좋자고 한 배움들이 물거품이 된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어떻게서는 돈! 생각뿐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케어 하면서 좋은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책을 좋아하니까 도서관 사서로 일을 해볼까 싶어 찾아보니 관련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근무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취업이냐, 창업이냐. 아마도 그때부터 안보이던 흰머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었다. 결국은 내 꿈과 좀 더 가까운 일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결론을 내렸다.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나 혼자 하는 사업, 어떤 부분에서는 잘하는 내가 보이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미숙한 내가 보였다. 나는 뭐든 느리게 배우는 편이다. 느림속의 변화가 힘을 발휘하면 속도가 붙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무언가 시작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걸림돌이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확신이 없었던 내 마음이었다. 이 일과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없는 것이었다. 아직 내 손길이 필요한 자식들과 나의 현재 상황을 알려주고 이해 시켜야 하는 남편, 그리고 여러가지 사소한 이유들...그런 생각들도 어찌보면 나의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나에게 그만큼 절박한지를 계속해서 질문했다. 어떻게서든 나 자신만의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내가 가진 선한 영향력은 무엇인지. 나의 에너지를 어떻게 나누어 주고 싶은지. 그렇게 여러 질문들을 거치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걸림돌은 디딤돌이 되었다. 그것이 나의 경쟁력이 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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