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와 쓰고 싶지 않다
백일장 나가고 싶은 사람? 국어 쌤이 지원자를 받으러 교실마다 돌아다녔다. 다른 친구들은 친구들의 추천이라도 있었는데 난 내 손 번쩍 들어 백일장에 나갔다. 교실에 있는 것보단 나가있는 게 살 것 같았다. 반나절의 자유시간 중 2시간 남짓 생각을 쏟고 다시 원고지에 옮기는 일은 쉽기도 했지만 어렵기도 했다. 후다닥 쓰고 첨삭받고 원고지에 옮겨 적을 때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잡아주던 나의 왼손. 조심스레 적던 내 오른손.
글은 친구이면서 타인 같다. 쓰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정작 쓰려고 하면 데면데면 낯설었다. 자연스럽게 엮어가고 싶은데 삐그덕 삐그덕 거리고 그래서 포기할라치면 그래도 내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서 몸살이 났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었다. 많이 읽고 많이 비슷하게 써냈다. 비슷하게 써냈지만 내 것이 더 낡고 구차했고 용렬했다. 읽힐 때면 들킬까 봐 겁이 났다.
글로 순위를 가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일이다. 특히 시는 더 더욱이 그러하다. 2시간 동안 써 내려가는 시는 꾸덕한 핏자국 같다 생각했다. 피비린내 나는 고뇌의 흔적이라고 쓰고 싶지만 내 피비린내는 금세 잊힌다. 가슴에 남는 글을 쓰는 일은 신이 준 축복이다. 나는 축복받지 못했지만 계속 그 길을 기웃거렸다. 내가 쓴 시도 외우지 못하는데 시를 쓴다는 말하기 참 부끄러웠다. 가슴에 품을 만한 구절이 없는 시를 쓴다는 사실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요즘은 그때와는 다르게 시를 쓰고 싶은 욕구가 이는데, 이뻐 보이는 단어와 단어를 두고 어찌할 바 모르게 껴안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써 내려가다 보면 정작 오갈 데 없다. 어디라도 끼워 넣어보고 싶어서 안달 난 건 글이 아니라 나다. 갑자기 어디선가 한기가 몰려오고 추워진다. 어깨아래 견갑사이 풍문이라는 곳으로 한기가 몰려오고 나는 큰기침을 한다.
쓰고 싶다는 욕구와 제대로 된 글을 올려야지의 욕구사이에 갈등한다. 퇴고를 몇 번을 반복해도 돌아서면 수정하고 싶은 욕구가 인다. 외우지도 못하는 시는 수시로 지워지거나 수정되기도 한다. 참 창피한 일이다.
그럼에도 쓰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싶다.
같이 백일장 나가던 친구가 생각난다. 백일장 나가면서 같이 나란히 앉아도 서로에게 말 걸일 없던 너와 나였는데 이제와 궁금하다. 넌 너의 재주를 어디에 쓰며 살아가는지. 너는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는지..
가끔 월요일 운동장 조회날 호명되던 너와 나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너만 불릴 때 아무도 모르게 오른발로 운동장 바닥을 꾹 눌렀던 나의 마음이 이제는 보인다. 큰 대회 나가서 너도 나도 불리지 못했을 때 한참 너의 등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이제는 보인다. 작은 바람이지만 너도 이 길 어디선가 만났으면 좋겠다.
시를 쓰고 싶은 밤이다. 하지만 마음껏 쓰이지 못하는 밤이다. 쓰고 싶은 마음은 자라고 자라는데 표현은 늘 더디게 자라서 균형감을 잃어간다. 그래도 얼르고 달래며 내 언어들을 서툴게 써 내려간다.
산문은 때론 시에 도움 되지 않는다. 열거는 빈곤의 상징이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산문에 젖어버린 글은 시를 빈곤하게 만든다. 알면서도 제대로 퇴고되지 않은 글들을 세상으로 뱉어낸다. 미친 듯이 쓰고 싶다와 제대로 쓰고 싶다와 쓰고 싶지 않은 밤이다. 쓰는 내가 부끄러운 밤이다.
그럼에도 시가 쓰고 싶다. 쓰고 싶은 소재들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풀어내지 못하는 어휘들을 잡고 나를 책망한다. 그럼에도 쓰고 싶다. 나의 언어로 쓰고 싶다. 자신 없지만 그래도 쓰고 싶다.
습작의 방이다. 부디 가여히 여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