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호사몬이다. 친구도 간호사몬이다. 하필 전날 우리의 듀티는 나이트(밤샘 근무)였다. 새로 입사한 나이트 근무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2년만에 나이트를 해본다. 하지만 다음날 9시 45분 비행기로 제주도에 갈 일정이 잡혀있었다. 친구는 원래 나이트킵(밤샘 근무 고정)이었고 나는 이 친구가 그 바쁜 아침을 뚫고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래서 실제로 기도하기도 함) 친구는 웃으면서 모든 걸 제쳐두고 오겠다고 했다. 마침 우리가 여행가기로 한 날 회식이 잡혀있었지만 팀장님께 말해서 너무 쿨하게 허락을 맡았다고 했다. 오랜만에 나이트에 들어오니 어찌나 바쁘던지, 집에서 집안일하고 애들 병원에 데려가는 등, 출근 직전까지 밥을 차리고 먹느라 저녁을 8시 다되어서 먹을 수 있었다. 정작 내 짐은 나중에야 싸기 시작했다. 밤에 배고플까봐 방탄커피를 챙기고 키토 초콜릿을 챙겼다. 나이트를 하더라도 공복 16시간은 지켜야 했으니까.
남편이 병원까지 데려다주었고 덕분에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지갑을 놓고 왔는데 남편이 다시 병원에 가져다 주었다. 얼른 인계가 끝나고 일을 끝내놓길 원했다. 미리 항공, 렌터카, 숙소를 예약했는데 친구 덕분에 엄청 싸게 예매할 수 있었다. 베뉴 2022년식을 7900원에 예매했다. (블박, 보험 별도 14000원) 주유비는 별도다. 항공도 평일이라 그런지 6만원대에 왕복 예매(국적기는 아니고 LCC였다.). 제주도는 비싸다(?)라는 편견이 깨진 계기. 숙소는 우리는 계속 돌아다닐거고 잠만 자면 됐기에 정말 저렴한 곳에 예매했다. 주차되고 따뜻한 물나오는 침대 2개면 충분했다. 제주도하면 어디부터 가야할 지 몰라서 막막했었는데 1박 2일 빈틈없이 일정을 짜준 친구 덕분에 선택지를 많이 줄여갈 수 있었다. 가족여행 이후 제주도는 4년만이었다.
이 병원에 와서 나이트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이트 선생님이 건네준 투두리스트를 참고했고 별다른 이벤트가 없어서 수월했다. 인계를 10분만에 끝내고 저는 비행기를 타러 가야하니 먼저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수선생님왈. " 아 그게 오늘 이었어? " "네. 오늘입니다." 뒤도 안돌아보고 짐을 챙겨 탈의실을 나섰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 OO공항에 도착했다. 병원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걸렸지만 30분만에 도착했다. 공항 도착 4시간전 모바일 체크인을 해두었고 생체인식만 등록하면 되었다. 옷을 많이 가져갔었기에 가방은 꽤 무거웠고 그래서 수화물을 붙이기로 했다. 항공사에서는 이상이 있으면 전화가 갈거라고 했고 비상연락처를 물어봤기에 친구의 번호로 등록을 했다. 그렇게 신나게 생체인식을 등록하고 친구에게 어디쯤 오냐고 전화를 하는데 통화중이었다. 아직 안끝났나? 오고 있는건가 걱정이 됐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 수화물이 걸렸고 나에게 먼저 전화하지 않고 비상연락망에 등록된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고 한다. 앞뒤를 다 자르고 말한데다가 말투가 CS적이지 않아 빈정이 살짝 상했다고 했다.
" OOO항공사 인데요. OOO님 맞으세요? "
" 아닌데요. "
" OOO님 아니세요? "
" 아닌데요. "
" 그럼 혹시 일행중에 OOO님 있으세요? "
"네. 근데 왜요? "
" 수화물 걸리셨어요. OOO님에게 전해주세요. "
그래서 친구는 바로 나에게 전화를 했고, 도대체 뭘 가져왔길래 걸렸냐고 했다. 사실 나는 선물을 준비했는데 하필 선물이 안데스 소금이었던 것. 입자가 고운 편이라 마약으로 오인받지 않을까 설마설마 했는데 그 설마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덕분에 머리털나고 처음 수화물 보관 검색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직원은 내가 가져온 게 무엇이냐고 물었고 소금이라고 하니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소금인 걸 확인한 직원은 가지고 탈 수 있다고 확인시켜주었다. 그렇게 입국심사부터 노멀하지 않았고, 친구는 먼저 가보겠다고 하고 퇴근했다고 했다. 친구까지 생체인식을 등록한 다음 탑승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서로 나이트 하고 와서 졸리지는 않은지 피곤하지 않은지 물었고 카페인을 충전하기로 했다.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서 탑승구에서 탑승수속을 기다리는데 비행기가 연착됐단다. 1시간 연착이 됐고 그 사이 밀린 수다를 대방출했다.
친구는 왜 내가 마약으로 오해받으면서도 소금을 가져왔는지 궁금해했고 사실 너 선물이 아니라 너네 부모님 선물이라고 고백아닌 고백을 해야했다. 지난번에 친구네 부모님이 고구마를 주셨는데 너무 잘 먹어서 소소하지만 답례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500g 짜리 소금을 공항까지 들고 온 이유였다. 친구는 우리 집에 소금 많아. 라고 말했고, 아 사실 말이지. 이 소금이 어떤 소금이냐면부터 시작해야했다. 안데스 호수에서 나온 소금이며 고기에 넣어서 먹으면 존맛탱이래. 라는 말을 했다. 그 사이에 탑승구가 열렸고 비행기에서 오늘 빡센 일정을 위해 각자 잤다. 깊이 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피곤이 덜한 것 같았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곧바로 렌터카 업체로 향했다. 키오스크로 등록하게 되어있어서 생각보다 무지 간편했다. 주변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비교적 빠른 시간안에 등록과 결제를 마치고 차에 탑승했다.
1일차: 제주공항 - 렌터카 - 판타스틱 버거 - 동백 포레스트 - 남원큰엉해안경승지 - 숙소 도착 - 흑돼지 굽굽
베뉴 2022년식이었는데 평소 모는 차와 달랐지만 내부나 차 크기 자체는 비슷했다. 가는 길에 바깥 구경을 하며 여기가 제주도긴 제주도인가보다 라는 이야기를 했고 마침 점심 시간이 되어 우리는 고민했다. 동백 포레스트를 먼저 갈 것인가? 밥을 먼저 먹으러 갈 것인가? 알아보니 판타스틱 버거는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 밥을 먼저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다이어트 중인 나를 위해서 친구는 햄버거를 먹어도 괜찮은지 물었고, 나는 빵을 걷어내고 고기와 야채를 먹었다. 맛있기는 했지만 둘 다 가성비는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맛은 있었다. 화이트 크림 버거 추천. 다음에 와서 또 먹을거냐고 물어본다면 굳이 또 찾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 목적지는 동백 포레스트였는데, 우리가 일정을 잡은 내내 제주도 날씨는 눈, 비 예보가 있었다. 이미 동백 포레스트에 도착했을 때는 찬바람 쌩쌩, 날이 흐렸다. 그렇지만 이 인파 무엇. 다들 평일인데 어떻게 오셨는지 연인, 가족, 친구끼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포토존은 웨이팅해서 찍어야할 정도라고나 할까. 다들 사진에 진심. 동백꽃이 활짝 피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꽃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라 막 엄청 감동적이야 하는 감동은 없었지만 친구가 좋아한다길래 충분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면 예쁘기는 했다. 사람이 조금만 더 없고 날씨가 좋았다면 천천히 둘러봤을텐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고 추웠다. 사진 그만찍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언니였기 때문에 친구에게 티내서는 안됐다. 하지만 몇 번이나 사진 그만 찍으면 안돼? 라고 물어봤던 듯. 나도 모르게 나왔던 속마음 고백. 아마 동생도 더 찍고 싶었지만 내가 추워해서 중간 하차했을지도
동백 포레스트에서 남원큰엉해안경승지는 차로 15분 거리였다. 도착했을 때 탁 트이 바다뷰를 보니 힐링 그 잡채. 둘레길로 조성되어 있었고 너무 추우니까 조금 걷다가 사진 몇 장 끝고 중간에 되돌아오기로 했다. 여기가 포토존인데 사람들이 오기전에 사진 찍기를 해치워야했다. 뒷사람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란 서로서로 불편한 광경이었지만 아무튼 사진찍고 마저 걸었다. 서울과 공기부터 달랐다. 시골에 와있는 느낌이랄까. 뭔가 더 청정지역 같았고, 공기 끝이 시원했으며 맑은 느낌이 났다.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불과 몇 시간전 병원에서 밤새고 일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그렇지만 바다 옆이라 바다바람이 추웠고 중간 정도 걷다가 춥고 길이 어두워지는 것 같아서 되돌아왔다. 차로 돌아오니 역시 내 집이 제일 좋아 이런 것처럼 내 차가 제일 좋았다. (비록 내 차는 아니고 렌터카였지만 말이다.)
히터를 틀고 숙소로 향했다. 친구는 가는 내내 운전하느라 고생한다. 피곤하지는 않냐고 했는데,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운전하는 걸 좋아했고 즐기는 편이랄까. 그래서 제주 풍경을 보면서 운전하는 것이 좋았다. 숙소는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는 곳으로 잡았는데 알고보니 성산이.. 정말 애매한 위치였더라는 하지만 다음날 성산 일출봉에 갈 거였기 때문에 괜찮았다. 우리는 들어와서 보일러를 켰는데 난방이 작동이 되는지 모를 정도라 친구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프런트로 전화를 했다. 여기 OOO호인데 난방을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물었다. 보일러는 중앙에서 조정한다고 하며 틀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에어콘 처럼 생긴게 사실 냉난방기라며 추우면 틀라고 했다.
평소 이 친구랑 연락을 자주하는 편이지만 만나면 할 말이 한 보따리라 와인바를 가려고 했으나 식단중인 내가 먹을 게 없다는 이유로 숙소 바로 옆 흑돼지 맛집이 있어 테이블링까지 해서 들어갔다. 흑돼지 600g에 계란찜 1개, 소주 1병을 시켰는데 친구는 예언했다. 분명 배불러서 남길거라고 그리고 그 예언은 적중했다. 이쯤되면 노스트라다무스?ㅋㅋㅋ 고기는 쫄깃했고 맛있었지만 배가 불러서인지 생각보다 잘 먹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니 계란찜에, 쌈에, 야채에 엄청 싸먹었던 듯, 그리고 응가를 못해 배가 불렀던 것도 한 몫 했다. 직원들이 반 정도 구워주고 그 이후부터는 각자도생이다. 고기가 두꺼워서 익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테이블은 만원이었고 제주도에 관광객은 여기에 다 모아놨나 싶을 정도. 우리는 천천히 1시간 넘게 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거의 2시간 정도 밥먹으면서 이야기 했던 듯) 맨날 카톡하는데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은지. 나도 궁금?
이야기의 주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직장 생활, 일상 다반사에서 연애, 내년에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등등, 친구와 나에 대한 이야기까지 딥하게 나누었던 것 같다.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약간 눈치보이기도 하고 다음날 또 분단위로 나눈 빡센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슬슬 일어났다. 숙소 바로 옆이라 걸어서 2분컷. 씻고 각자 마스크팩하고 조금 이야기하다 이제 자자 하고 잠듬. 나이트 오프의 여파였는지 마그네슘을 먹기는 했지만 딱 1번 깨고 꿀잠 잤다는...
2편에서 제주도 1박 2일 후기 또 이어집니다.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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