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2월. 설날 명절이었다. 나는 명절 근무 멤버로 당첨!되었다. 왜 당첨되었냐고 하면 특별히 내가 리퀘스트(근무 신청)를 내지 않았다. 명절 전 어머님에게 명절에 리퀘스트를 내서 내려갈까요? 라고 물으니 어머님은 바쁜데 굳이 리퀘스트를 내면서까지 시댁에 올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돈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 라는 말로 들렸는데 아무튼 굳이 꼭 와야 한다는 시어머님 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서 명절멤버로 당첨되었는데 설날을 앞두고 요양병원에서는 외출, 외박, 귀원 환자,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외출, 외박 나가는 환자마다 외출증을 받고 식사 취소를 하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었다. 아니! 일임에 분명하다!
여자 공동 간병방에 90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가래, 잦은 폐렴으로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가 처음에 오실 때만 해도 고관절 골절로 오셨기 때문에 재활 치료를 했었고 자식들은 우리 어머니 언제 걷냐며 물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연세가 많아서였을까. 걷는 것 까지는 어려웠다. 일단 다리 힘이 없었고 걸으려고 재활치료를 하려고 하면 가래가 많아 폐렴까지 진행되기를 몇차례 반복했다. 그런 내과적인 문제 때문에 재활치료를 할 수 없었다. 물론 폐렴이 끝나면 할 수 있기도 했지만 90이 넘은 노인이 다시 general condition으로 회복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보호자들은 우리 엄마가 걸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또 할머니의 문제는 식사를 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는데 처음에는 죽으로 식사를 하셨던 분인데 어느 날 부터인가 점점 기력이 없어지더니 혼자 식사를 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간병사가 떠먹여 줘야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죽도 드시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였다. 결국 경구용 캔(뉴케어 같은 식사)을 시켜서 간병사가 수개월을 숟가락에 담아 먹여드렸는데 식사 하는 시간만 해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콧줄을 껴서 식사하지 않으면 굶어죽겠다 싶을 정도였다. 매번 수액을 놔드릴 수도 없고 했으니까 말이다. 주치의가 바뀌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고 바뀐 주치의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고 콧줄을 끼워주었다. 아마 이 때 튜브를 삽입하지 않았다면 할머니는 더 빨리 돌아가셨을거라 생각한다.
할머니는 컨디션이 괜찮을 때 간병사에게 종종 고맙다고 말한다거나 우리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발사할 때가 있어서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자식들도 가끔 면회에 와서 할머니를 만나고 갔는데 딸이 오면 말을 잘한다고 했다. 나중에는 우리와 대화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할머니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갔고 자식들이 올 때만 말을 하려고 비축해두는 듯 했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는 듯 어느 정도의 의사표시는 가능했다. 그렇게 누워계신지 2년이 넘었을무렵, 보호자(아들)는 병원비가 부담된다며 요양원으로 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요양원 입소 절차는 요양원을 통해 알아보시라고 했지만 폐렴이 자주 재발하는 환자라 요양원에 가더라도 상태 악화시 다시 요양병원이나 상급병원 진료를 받을 수도 있음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딸과 아들의 입장이 달랐다. 결국 할머니는 요양원에 갈 수 있는 컨디션은 아니였던지라 요양병원에 계속 계시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들은 대놓고 언제 돌아가실 것 같냐며 물어보기도 했지만 사람의 생명을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대답했다. 내심 아들은 일찍 돌아가셨으면 하는 두 마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맞는 2월 할머니는 생신을 가족과 보내고 설날에 돌아가셨다. 자는 것처럼 아주 편안히 말이다. 이 모습을 보고 양가 부모님의 건강도 보장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걸을 수 있을 때 내 발로 화장실에 가고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좋은 곳도 많이 가고 여행도 다녀야겠다 싶었다. 부모님이 계속 내 옆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가정이 생기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부모님과 보낼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따로 시간을 내고 마음을 쓰지 않으면 가장 가까우면서도 만나기 힘든 관계가 부모님이지 않을까 싶다.
한줄평: 이젠 바쁘더라도 가끔 전화를 해보시오. 라고 말했던 조피디의 노래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