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행복하고? 타인은 불행한?
할머니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설날 이틀 뒤, 출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이불속에서 베개를 안고 10분만, 5분만 하며 미적거리고 있는데 전화기 벨 진동이 울어댄다.
겨우 한쪽 눈을 뜨고 받으니
“언니야, 지난번 준거 팬티기저귀 아니가?”
“응, 그냥 생리대야. 너의 시어머니 요실금에 쓰시면 될걸...”
동생은 요즘 어머니가 부쩍 실뇨와 실변이 잦으시다고 한다. 자기들 방과는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거실에 나오면 냄새가 진동을 하고 날이 갈수록 더해진다며 어쩔 줄을 몰라하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시어머니 치매검사를 미리 해뒀다. 그날은 오전 일찍 병원 MRI 검사 예약해 놔서 모시고 나가려는데 실변을 해서 욕실로 씻으러 들어가셨다고 한다. 씻고 나오셔도 뒤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 검사 결과로는 뇌의 일부분이 하얗게 변색이 되었다고 했다. 그날 치매 등 약을 처방받아 아침, 저녁 식후에 한 번씩 먹는 거라고 일러드렸다.
그다음 날 어머니가 화장실을 들락거리셔서 병원으로 모시려니까 극구 가지 않으려고 하셨다. 약을 체크해 보니 조석으로 한 알씩 복약해야 하는 것을 한꺼번에 세 알을 드신 거였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절대 약을 안 드셨다고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동생의 시어머니는 허리는 폴드 전화기처럼 반으로 접히셨지만 잘 걷고 식사 잘하시며 크게 아픈 데가 없으신 양반이셨다.
얼마 전부터 외출하셨다가 돌아오시면 집 번호를 잊고 엉뚱한 번호를 계속 눌리셨다. 나가보면 전자키는 줄을 달아 호주머니에 넣고 있으면서도 손가락으로 다른 번호를 누르신다. 번호를 몇 번이나 적어 달래서 번번이 적어드려도 잊음이 더해지고 변실금도 심해지고 있으시다는 동생의 얘기에 가슴이 살짝 저렸다.
아주 가끔 뵈면 내 손을 잡고 활짝 웃으시고 “참 좋다, 참 좋다” 하시던 꾸밈없이 좋은 분이었는데......(“누구나 적당히 떨어져서 보면 다 좋게 보이니까요, 사돈 어르신.”)
설날에 동생네 가족이 와 있는데 제부 전화로 어머니의 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받으면 끊기고 걸면 통화 중이거나, 나중에 전화를 드리니 정작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셨다.
동생의 시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나오실 때나 화장실에 들어가실 때마다 혼자서 중얼중얼하셨다. 동생이 화장실 가까이 가서 들으니 “빨리 죽어야지, 빨리 죽어야지”를 염불처럼 중얼거리셨다고 한다.
병원결과를 알고 난 제부는 동생에게 “그나마 어머니가 치매로 죽음의 공포를 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아흔다섯, 동생의 시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에 이틀째 다녀오셨다.
오늘도 밖에서 번호를 잘못 눌러 '띠링 띠링' 오류작동센서가 계속해서 울려서 문을 열어드렸다.
주간보호센터나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이 같이 활동하고 계시기에 약물과 병행하면 빠른 진행은 막을 수 있고 서로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어르신 유치원’ 같은 데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신다고 했다. 어른들이 모이는 경로당 같은 곳에서는 너나없이 요양기관엘 가면 죽어야 나오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모두가 그리 알고 절대 갈 곳이 못 된다며 죽으면 죽었지 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 말도 틀린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옆집에 살던 할아버지가 치매 기를 보이자 연로한 할머니가 돌볼 수 없어서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가시지 않겠다고 다리를 뻗대어 봤지만 요양원에서 나온 사람들의 양팔잡이에 이끌려 차에 실려가셨다.
이를 보고 아버지는 매우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보이면서 한동안 우울해하셨다. 아버지는 절대로 그런 곳엘 가지 않겠다던 바람대로 집에서 계시다가 조용히 운명하셨다.
막내 동생의 시어머니는 한 해 먼저 별세를 하신 시아버지의 사진 앞에 음식을 갖다 놓거나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다. 밤에는 주무시지 않고 집안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하셔서 집안 식구들을 깨우기 일쑤였다.
직장에 있는 아들한테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를 눌러대다가 나중에 연락을 하면 무슨 일이냐며 다른 말씀을 하셨다. 금방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셨다. 집, 요양원을 왔다 갔다 하시며 몇 번의 골절로 요양병원에서 일반병원을 반복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치매는 어른이 아이가 되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그 어른을 보는 가족들은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차츰 불행해지는 병이라고 한다.
치매를 다룬 영화 <아무르>가 떠오른다. 화려한 경력의 부부가 살아있음이 서로에겐 빛이었다가 치매로 황혼의 여유로운 삶이 점차 암흑으로 무너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치매가 자신이나 가족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영화였다.
오래전 내가 아는 이야기다.
한 노부부가 극단적 선택을 하였다. 그들 부부에겐 내로라하는 자식들도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봐 두 분이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남겨진 자식들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 일은 한동안 작은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치매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못하던 때였는데도 사람들의 입에 한참을 오르내렸다.
나이가 들면 지병으로 인해 치매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치매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지만 진행률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고 4-50대의 치매환자들도 늘고 있다. 하루빨리 치매를 정복하는 날이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누구도 건강을 장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특히 어른들의 건강이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노인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고 말하면서도 곧 닥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씁쓸한 감정이 된다. 저 일은 비단 누구누구 네의 일이 아니라 모든 부모님의 일이며, 빠르게는 2-30년 후에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작년에 보였던 분, 며칠 전에 보았던 그 어르신은 어디로 갔을까? 정류장처럼 요양원으로 들렀다 저세상으로 가는 사람들. 생로병사가 정해진 자연의 이치라고는 하나 사람이 늙고 초라하게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양원에 모셔둔 부모를 자주 방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입소시킨 뒤로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는 보호자도 있다고 한다. 임종이 가까워질 때조차도 돌아가시면 연락하라는 보호자도 가끔 있다고 한다. 요양원에 근무하는 친구의 말처럼 요양원은 오늘날의 고려장인 셈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 친구는 요양원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어르신은 그러지 못하는 어른들에 비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정서나 편의, 위생 등 요양원 생활에 완전한 만족은 있을 수 없지만 고맙게 생각하는 어르신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적응을 못해 나가고 싶어 하거나 선셋(sunset) 증후군 등의 우울증을 앓는 어르신들도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예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어른들도 있다고 하였다. 요즘은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깊이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알아채기가 힘든 세상이다.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영원한 젊음도 영원한 삶도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유한한 시간 위에서 미끄러지듯이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누구든지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두 손을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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