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인생이라는 바다에 순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살아가는 제주도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는 시작부터 우리 세대의 정서와 이국적인 제주도 풍경으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수산시장을 중심으로 상인들과 제주 해녀들의 삶이 생소한 듯 공감되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우리네 인생처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펼쳐졌다.
결국 최종회를 보면서 그동안 재미난 웃음과 슬픔을 넘어 시청자들을 눈물의 바다에 빠지게 하였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인공 역은 국민 어머니 김혜자와 반항아 이병헌이었다. 이들의 연기는 찰지다는 표현을 넘어 요즘 말로 현실감에 쩔었다.
“우리가 전화할 만큼 친한 사이야?, 죽고 나면 연락해. 그때 장례는 치러줄 테니까 “
시장 바닥에서 엄마에게 아들이 패악을 부린다. 시장 사람들 모두가 영문을 모르고 놀란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죽음이 왔음을 알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란 걸 알았고 담담하게 순순히 받아들였다. 엄마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엄마의 깊은 병을 알게 된 이웃사촌들의 간곡한 권유에 떠밀린 아들은 병원이나 한번 동행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병원이 아니라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곳으로 가보고 싶었고 아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을 나선 것이다.
엄마의 마지막 생에서 마주한 모자(母子)의 여행이랄 수도 없는 여행길. 어색하기 짝이 없다. 엄마의 삶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던 아들은 엄마와는 가족도 이웃사촌도 뭣도 아닌 채로 의절하고 혼자서 떠돌며 살아왔다.
여행길에서 마주친 사람이나 동물에게도 따뜻하고 살가운 모습을 보이는 엄마가 아들에겐 무척 낯설었다. 처음 본 강아지나 다른 이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미소를 아들인 자신에게는 왜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는지를 따져 묻는 기구한 운명의 엄마와 아들이다. 아들의 한에 찬 원망의 말을 가감 없이 내뱉는 모습에
엄마는 그저 할 말을 잃은 채 먼 시선으로만 눈길을 보냈다.
인생의 고비에서 순진한 젊은 엄마의 선택은 평생 아들의 가슴을 응어리지게 하였다. 그것이 모자(母子) 사이를 얼마나 멀리, 아무 사이도 아니게 만들 거라는 것을 엄마는 미처 알지 못했다.
어릴 적 아버지와 누이의 죽음을 경험하였지만 막상 엄마의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들이었다. 그토록 미워했고 평생 보지 말고 살고자, 봐도 못 본 척하고 살아왔는데 혈육의 정은 그게 아니었다.
“오만경, 이천소, 제주, 목포, 바다, 푸름, 얼룩이, 까망이, 한라산...” 배 안의 창가에 입김을 호호 불며 엄마와 아들은 그리운 이름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
“지금”
“암 걸린 지금?”
그 어설픈 여행으로 빙하처럼 겹겹이 쌓여있던 아들의 상처받은 어린 영혼은 어느새 봄 햇살에 눈 녹듯이 녹아들고 있었다. 아들은 다시 태어나면 엄마와 아들로 만나자고 한다. 서툴고 투박한 아들의 사랑을 확인한 엄마는 어느 때보다 편안하였다. 젊은 날의 파도가 무서워 피한 삶의 모습은 언젠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외면하고 무시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엄마의 된장국만 한 게 없었다는 아들을 위해 된장국을 끓여 상을 차리고 강아지들에게도 마지막 죽을 끓여 먹인다.
지치고 고단했던 여정을 마무리하듯 엄마는 자신의 삶에 평화롭고 깊은 잠을 위하여 가만히 몸을 누인다.
생의 마지막에 미련 없이 담담하다. 어떤 아픔도 슬픔도 없이 고요한 안식을 찾은 듯하다. 모든 집착과 미련과 아쉬움과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신을 놓아버린 모습은 오랜 시간을 정진해 온 수행자 같다.
엄마의 삶은 그 선택으로 그렇게 살아내고 겪어내야만 했다. 이번 생의 어려운 과제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떠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서운한 듯 서운하지 않게, 아쉬운 듯 아쉽게 않게 살다 가는 인생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한 달에 한 번씩 상담을 했던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타인들에게 매우 배타적인 배우자와 20여 년간 동거를 하셨다. 할머니는 순하고 다정다감한 분이어서 그런지 두 분 사이는 좋으신 편이었다. 할머니는 몇 달 동안 돌봄을 받다가 병세가 심하여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자 할아버지의 딸들은 할머니의 짐을 챙겨가라고 복지센터에 연락을 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아버지를 20년이나 모신 분인데 어떻게...
갑자스런 이별에 할아버지도 인지저하가 심해지고 나중에는 요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도 어쩌다 멀리서 잠깐 다녀가는 아들이 있었지만 혼자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병과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에는 “살고 싶다, 살려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그렇게 순하고 얌전하신 분이 그랬다는 것은 아마도 못다 한 이야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어르신도 마지막 삶을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눈감고 싶어 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자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그분은 온몸으로 맞서며 살아냈으리라는 짐작은 했었다. 남편의 자녀들과 자신의 자녀들로부터 인정 받지 못하였지만, 그분의 삶을 누구도 질타할 수는 없다. 자녀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어른들의 삶을 판단하고 관여하였다. 어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살아냈으므로 그분들의 삶을 인정해야 했다. 마지막 길을 편안히 가시도록 두 분을 만나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갖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 너무나 서운하게 아쉽게 떠나신 분을 생각하였다. 인생의 바다에 이는 파도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어르신, 더 이상 슬픔과 아픔이 없기를 바랍니다.
가시는 길이 부디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바다에는 어쩌다 큰 기쁨이 있으며 가끔씩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작은 기쁨들도 있다. 또한 화나는 일이나 슬픈 일도 해 지고 바람 부는 일처럼 우리의 일상에 있는 일이다. 우리 삶의 바다에 바람은 언제나 불어 온다. 크고 작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더 늦기 전에 용서하고 화해하고 살았더라면 서로의 삶이 조금 더 행복하고 아름답지 않았을까를 시청자에게 던지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삶의 마지막까지 따뜻한 연민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