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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Oct 11. 2023

나의 죽음

  

라울 뒤피의 생애와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참 기분이 좋다. 암울한 어두운 시대를 겪으면서도 시대의 모순과 아픔과 어두운 것들을 거둬 내고 자신 만의 색과 빛과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라울 뒤피.


그의 전시를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주스를 만들기 위해 사과와 당근을 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쩍하고 번개가 치듯 내 뒤통수가 찌릿하였다.

너무 놀라서 몸이 덜덜 떨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가끔 머리가 묵직하던 느낌 하고는 확연히 달랐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아버지처럼 뇌경색 증상인가?     

‘아, 이대로 내 삶이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주방 앞에 어질러놓은 것들과 정리되지 않은 집안, 일어나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짧은 원피스 차림으로 구급차에 실려 가야 하나?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아, 간혹 주변에서 들리던 이런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나.


멀리 있는 우리 딸은 화들짝 놀라서 엄마 봐야 된다고 티켓팅하고 난리겠지.

늘 담담한 우리 아들도 크게 놀라서 달려올 테고....        

  

아버지께서 떠나신 이후로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엄마랑 자고 오는데 오늘이 그날이었다.     

엄마는 기다리던 딸은 오지 않고 이상한 비보를 들으시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급히 일회용 아스피린을 3알을 먹었다.

서둘러 요즘은 안 먹고 있던 오메가 3 한 알 먹었다.

좀 더 있다가 아스피린 2알을 더 먹었다.

어딘가 막혔다면 확 뚫어주길 기대하면서....

의사, 약사가 들으면 약물 오남용이라고 하겠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껴안고 이게 무슨 현상인가 싶어 검색을 해보았더니 ‘3차 신경통’에 가까운 증상이었다.

여러 증상 중에서도 목에 관련된 것이 나에게 일어난 증상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자 깜짝 놀랐던 것과는 

달리 조금 진정이 되었고 무엇 때문인지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늦잠을 자고 눈을 떠서 맨 처음 한 일은 엎드린 채로 친구와 통화를 몇 십분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엎드린 채로 다음 주에 있을 동창회 모임 공지를 밴드, 단체 카톡과 50여 명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개별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올해 초 1월인가 2월에 한의원에 간 일이 있었다. 목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 아파서였다. 그때는 추운 겨울이라 따뜻한 이불속에 엎드려 몇 시간씩 책을 읽고 메모도 했다. 


내 얘기를 들은 의사는 ‘절대로 엎드려서 생활하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목과 어깨운동이 적힌 처방전을 주었다.   


그래 이것은 내가 나의 몸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학대한 결과라는 생각으로 결론을 냈다. 내 몸 상태가 어떻게 해도 회복이 빠른 젊은이가 아닌지는 오래되었다. 이제는 몸의 말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진 것 같다. 건강검진. 치과, 뇌 검사....  죽었다 깨도 주사가 무서운 나는 갑자기 먹먹해진다.  

   

새로 고침,

내가 건강하게 살아야 민폐가 아니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들-

제때 잠자기. 제때 먹기. 운동하기. 

쉬운 것이 제대로 안되어 문제가 일으키는 것들이다.

정말 사소한 것들이 나의 건강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치명적인 결과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니까. 

    

다시 삶은 얻은 듯, 늘 해오던 오래된 것에서 벗어나야겠다.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내 삶을 살고 싶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자신을 추앙하고 싶다. 

    

아침에 일어난 소동은 어쩌면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나의 미래의 죽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베르나르의 <죽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두근거리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죽음이 나를 부르는 날까지, 다시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의 세계에서 가슴 뭉클하고 설레는 나만의 꿈을 꾸어 볼까 한다.


#라울디퓌 #죽음 #건강


fall in you     by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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