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판별용 신속 항원 검사키트

사랑도 자가진단이 가능한가요?

by 이지완
제품 소개


오늘은 마지막으로 사랑 검사키트를 팔겠습니다. 말 그대로 사랑에 빠졌는지 신속하게 판별해 주는 제품입니다. 내 감정도, 상대의 감정도 정확히 알고 싶은 건 우리 모두의 욕망이죠. 특히, 사랑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이 글에서 사랑이란 이성 간의 감정을 뜻함. 신과 신자,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간, 전우애, 동료애, 동지애, 팬심, 이런 거 제외).


제품 사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코로나 신속항원 검사와 동일하죠. 피검자의 시약을 테스트 패널에 두어 방울 떨어뜨립니다. 다만 코를 후벼 파는 것이 아니라 애정 피의자(愛情 被疑者) 사진이나 영상, 실물을 본 직후에 속눈썹을 뽑아 시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이를 본 당신의 속눈썹을 훑은 액체 방울이 삼투압으로 두 줄을 그으면 양성, 한 줄이면 음성입니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감정을 판별하는 방식도 같습니다. 당신을 보여주고 눈썹을 뽑은 뒤에 시약을 묻혀 떨어뜨리면 됩니다. 당연히 더 어렵겠지요. 사랑하는 사람도 자기 속눈썹을 허락하지 않을 텐데 사랑을 의심받는 사람이 응할 리 만무죠.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라는 거.. 요령껏 재주껏 해보세요.


Maladie d'amour 사랑이라는 열병


동서고금을 통틀어 봅시다. 사랑은 무수한 시와 음악, 그림, 이야기와 영화로 탐구되고 정의되고 표현되었습니다. 조용필은 아름다운 죄라고 했고, 존 덴버는 갈등과 고통의 바다, 겨울왕국 안나 공주는 열린 문이라고 노래합니다. 거의 모든 철학자와 시인과 화가와 작곡가 들은 이 감정을 이해하고 해석하느라 진땀을 뺍니다.


평범한 사람들 역시 이 난제 앞에서 부풀었다 김빠졌다, 기뻤다 슬펐다, 행복했다 비참했다를 반복합니다. 사랑과 이별 노래를 듣고 러브 스토리를 읽고 즐겁거나 괴로워서 술도 마십니다. 밑도 끝도 없이 막막한 이 경험을 끝내고 이제는 사랑을 판별해 봅시다. 바야흐로 실측의 시대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아픔을 유발하는 병에 비유하는 게 바람직해 보이네요. 바로 사랑의 열병입니다(그래야 진단키트가 잘 팔릴 테니까요). 검진이 올바로 되어야 처방이 제대로 나옵니다. 사랑을 헛되이 믿거나 잘못 기대하면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입니다. 저희 진단키트를 사세요. 질병의 아픔에서 기쁨과 쾌락, 적어도 헛심 쓰지 않는 다행히 찾아올 겁니다. 사랑이라는 묘약이지요.


저희 제품은 이런 분들을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을 몰라 답답하신 분

내 일편단심을 저쪽이 아는지 모르는지 속 터지는 분

너무 오래 만나 사랑이 고갈된 건 아닐까 확인하고 싶은 분

사랑꾼인지 사기꾼인지, 순애보인지 스토킹인지 헷갈리는 분

날 갖고 노는 나쁜 넘인지, 원래 성격이 시크한 건지 궁금한 분


사랑도 판별이 되나요


내 감정은 진단키드가 아니어도 잘 관찰하면 파악이 가능합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떠올릴 때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얼굴에 홍조가 뜬다면 사랑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들여다볼수록 미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키트가 필요한 순간이죠.


감별은 병아리 성별, 판별은 감염병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인류의 최대 난제인 사랑도 측정할 수 있어요. 시중에 거짓말 탐지기를 응용한 애정 탐지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신경전달 물질(아드레날린,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 따위)을 체크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사기입니다.


사랑은 정의와 범위가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설렌다고 해서 전부 사랑인 것은 아닙니다. 썸일 수도 있고 그냥 호감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 제품은 피검자가 사랑을 느끼는지 아닌지 판정해 주는 놀라운 기술입니다. 일반적인 수치를 따지지 않아요. 당신 입장에서 사랑의 여부를 진단합니다.


모든 병은 바이러스가 일으키고 이를 항원(抗源)이라고 합니다. 항체가 이를 저지하지 못하면 감염이 발생하지요. 사랑도 같습니다. 상대가 일으킨 무언가(외모든 성격이든 언변이든 사상이든)가 다가와 항원이 됩니다. 내가 저항할 항체가 없으면 반하게 되죠. 사랑이라는 열병에 감염되는 겁니다.


어긋난다고 실패는 아닌


경우의 수가 네 가지 있습니다. 나와 그, 서로 사랑한다(1사분면), 나와 그 둘 다 사랑하지 않는다(4사분면), 나는 사랑하는데 그가 사랑하지 않는다(2사분면), 나는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가 날 사랑한다(3사분면) 그러나 어긋났다고 낙심하거나 일치한다고 방심하지 마세요. 유명한 광고카피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겁니다. 소중히 다루세요.


아카시아 잎 따기가 아닙니다. 저희 사랑 진단 신속 항원 검사키트는 믿을 수 있습니다. , 더 정확한 측정 방식도 있어요. 진지하게 직접 대놓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너, 나를 사랑하니? 나, 그녀를 사랑하는가?라고요.




그동안 뚱딴지같은 제 상상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먼 우주의 블랙홀도 찾아내는 시대지만 이 작은 가슴이 품는 마음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완벽히 이해되거나 완전히 통제될 수도 없지요.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것 아닐까요? 스스로를 조금씩 더 알게 되고 그래서 더 뿌듯한 과정 말이에요. 비록 상상이지만 발명품의 도움으로 마음을 탐험해 보았습니다. 같이 여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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