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가 많은 두어 달이었습니다. 저도 낀둥이의 중학교 졸업식, 막둥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시무식, 업무협약 체결식, 기증식, 위촉식 등 다양한 식에 참석했습니다.
행사를 영어로 세레모니 ceremony라고 하죠. 스포츠, 주로 축구에서 득점한 선수가 하는 자축의 행위도 세레모니라고 합니다(공식적으로는 goal celebration). 손흥민의 찰칵 네모와 호날두의 시우 세레모니, 음바페의 팔짱끼기가 떠오르네요.
어쨌거나 뭔가를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의식을 세레모니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을 일컬어 하객賀客이라고 합니다. 골 세레모니를 보는 관객 모두는 하객인 거겠죠?^^
행사의 사회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내외빈 여러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내빈이 있고 외빈이 있어서 합치면 내외빈인가? 하고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내외빈은 틀린 말이라네요. 내빈이 맞고요. 내빈은 내부 참석자가 아니라 '온(來) 손님(賓)'이란 뜻입니다. 당연히 외빈은 없는 말입니다.
내외한다는 동사가 있습니다. 서로 거리를 둔다는 뜻이죠. 안과 밖은 사실 만날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부를 내외라고 표현합니다. 안쪽이 부인, 바깥쪽이 남편입니다. 아내라는 말도 안애, 즉 안에 있는 아이란 의미에서 나왔다고 하죠. 여전히 남자가 부인을 지칭할 때 안사람, 집사람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을 비롯한 유교 문화권에서는 구분 짓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차별로 여겨질 수도 있는) 구별은 전통 유교의 핵심 메커니즘입니다. 주인과 손님, 남과 여,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주인과 하인 등 많은 인간관계가 이분법입니다.
자연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자문의 시작은 하늘과 땅의 구분이죠(天地玄黃). 하늘과 땅, 낮과 밤, 해와 달, 독과 약, 음과 양...세계관 자체가 구분 짓기입니다. 그 구분에 따라 역할과 도리를 정하고 그걸 지키는 일이 순리라고 여깁니다.
서양은 순리가 아니라 합리를 따지는데 구별이 아니라 판별이 기준입니다. 무언가에 호기심을 품고 실체를 알아내려는 마음의 기제입니다. 효율도 중요한데 투하 에너지 대비 산출 에너지의 비율이죠. 산업, 정보혁명을 이끈 생각이기도 하고 그런 혁명이 강화한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샛길로 빠져 보겠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막둥이가 영어를 배우는데 두 낱말이 헷갈린대요. 그래서 이렇게 외우라고 했죠.
"different와 difficult는 different 한데 구분하기가 difficult 하다"
짜증을 내더군요. 구분은 이만큼이나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서구 유럽의 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동안 내외하는 법을 잃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기초적인 분별력을 잃고 알량한 판단력에만 의지하는지, 순리를 족쇄로 여겨 무모한 질주만 하고 있는지, 탐험과 정복의 방식으로 공존은 뒷전에 미뤄놓는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