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 유쾌하지 않은 정치 이야기를 해볼게요. 곧 국회의원 총선입니다. 22대라는데 4년 임기니까 88년이네요. 권위주의 시대만큼 위신이나 권한은 크지 않다고는 해도 배지를 차지하려는 정치인들은 여전히 절박합니다. 의석을 점하려는 정당들의 수고도 안쓰럽고요(물론 가증스럽기도 합니다).
선거를 보도하는 용어들은 흔히 전쟁과 전투에 비유됩니다. 공방을 펼쳤다, 포문을 열었다, 승전보를 울린다 등과 같은 비유 표현도 그렇지만 일단 선거전戰이란 제목부터가 싸움입니다. 혈전, 혈투, 격전, 폭로전 등 戰이 안 들어간 뉴스가 없을 정도예요.
정치인가 전쟁인가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정치는 전쟁일까요? 이기지 못하면 죽음이 기다리는 전투일까요? 물론 일자리는 잃겠지만 죽는 건 아닙니다. 소수당이 되겠지만 파멸은 아니고요. 그런데도 정치를, 선거를 전쟁에 빗댑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정치인들 하는 짓이 싸움박질이라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상대 눈의 티는 잘도 찾아냅니다. 작년에 잼버리장이 진흙탕이 되어 대회를 망쳤는데 여기에 정치인들을 투입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지요. 촌철살인미수범 (잼버리 진흙탕에 정치인을)
또 하나의 이유는 진짜 전쟁이 없어서일지도 모릅니다. 관해난수라는 말이 있다죠. 觀海難水, 바다를 보게 되면 작은 물에 대해서도 말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입니다(제 인생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진짜 전쟁의 공포를 겪는다면 스포츠나 정치에 빗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삶을 개선시키는 레이싱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정치는 전쟁 아니라 스포츠에 비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훨씬 순화되는 느낌입니다.스포츠도 전쟁 대용이기는 하지만요. 정치가 너무 격화되어 환멸과 냉소를 부르고 무용론까지 나오는 시대라 이렇게라도 애써 보면 어떨까 싶어요.
스포츠 중에서도 둘이 치고받는 격투 종목이 아니라 레이싱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육상이나 수영처럼 기록을 놓고 뛰는 경주와 가깝죠. 경쟁 내용은 기록 대신 민심이고요. 물론 가끔 부딪히기도 하겠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위해 더 열심히 뛰는 것이 정치의 본질일 겁니다.
타협 없는 정치의 뿌리
언론과 국민도 자성해 봐야겠습니다. 이종격투기 방식의 중계나 관전을 즐기면 곤란하죠. 깊이 없이 경주마 순위 전달하듯 하는 보도도 문제입니다. 정치인은 내 삶을 풍족하게 하는 일꾼인데 아이돌식 무조건 지지하는 경우도 많아요. 권력을 준 뒤에'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비판적 지지와 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긴장을 유지하고 독재를 막는다는 사실을 잊은 듯합니다. 철새 정치인은 나쁘지만 철새 유권자는 필요하죠. 유연해야 정치가 오만해지지 않습니다. 잘하는 것 봐서 표를 준다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콘크리트 지지는 본분을 망각하는 정치를 만듭니다.
용어 순화로 정치를 제자리에
격전지 대신 경합지라는 표현이 어떨까요?서로에 대한 논평 기사는 덜 쓰면 어떤가요? 언론이 정치를 하지 말고 정치가 언론처럼 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상대 진영의 비판을 인용하는 보도가 정치인들의 못된 습관을 키웁니다. 제 할 일 열심히 하는 정치인의 목소리를 더 주목해 줍시다.
어쩌면 인생 자체가 전쟁이기도 하죠. 매일 치고받고 살아남으려 노력하고 다시 쉬었다가 전쟁 같은 일상을 치릅니다. 하지만 늘 그렇게 생각하면 우울해지죠. 꽃이 피면 보고 파란 하늘도, 친구의 우정도 누리며 삽니다. 우리 정치 경쟁 속에서도 인정과 존중, 경청과 타협이 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