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톤먼트

속죄라는 동기에 대하여

by 이지완


죄라는 개념은 인간에게만 있다. 죄책감이란 감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믿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는 죄를 중요한 개념으로 다룬다. 논리적으로도 그렇다. A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는 필연적으로 A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금지를 수반한다. 종교인이 아니어도 인간은 누구나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에서 방황한다. 죄와 선, 죄책감과 의무감은 샴쌍둥이다.


그런데 이런 가정을 해본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혹은 실수로 죄를 짓고 그 죄가 다른 이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면? 비극은 대체로 고의가 아니라 무지 혹은 실수에서 비롯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들, 오이디푸스의 저주, 이카루스와 프로메테우스의 운명... 극대화된 비극은 다 그렇다. 모르고 저질러야 더 가슴 아픈 것이다.


영화 어톤먼트도 순진한 소녀의 실수가 초래한 비극을 다룬다. 나는 책을 먼저 읽었다.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 영국 작가 이안 매큐언의 소설이 영화의 원작이다. 과연 이야기에 힘이 있었다. 개별 사건에서 보편 공감을 이끌어내는 솜씨가 거장의 조건이요 그 표현의 깊이가 명작의 기준이다.



책을 읽던 시기가 마침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즈음이어서 아, 이런 작가라면 노벨상도 받겠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년 노벨상 단골 후보란다. 책 말미 옮긴이의 말 덕분에 영화로 제작되었단 걸 알았다. 바로 검색해서 바로 그날, 책을 덮은 날, 영화까지 마무리했다.


배경은 1930년대의 영국이다. 감수성과 상상력이 뛰어난 소녀 브리오니는 보는 걸 믿는 게 아니라 믿는 걸 본다. 대학생 언니인 세실리아, 언니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로비 터너, 이모의 이혼으로 저택에 머물게 되는 사촌들, 오빠 레온과 사업가 친구 폴 마셜, 이들이 섞이고 꼬여 벌어지는 한나절의 에피소드가 1부의 이야기다. 이날의 원죄가 이들의 운명을 뒤바꾼다.


2부는 몇 년 후의 전장이 배경이다. 브리오니의 '모함'으로 감옥에 갔던 로비 터너는 징집되어 프랑스의 전쟁터에서 퇴각 중이다. 온갖 고생 끝에 됭케르트에서 극적으로 귀향한다.


3부는 성장한 브리오니의 이야기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서서히 깨닫고 참회의 마음으로 진학을 포기한 뒤 간호사가 된다. 그녀 또한 병상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다. 그러던 중 연락을 끊었던 언니 세실리아와 만나는데 언니의 집에 휴가 나온 로비 터너가 있었다. 이들의 조우는 화해와 수습으로 이끄는 듯하다. 그러나..


4부는 세월이 흘러 늙은 브리오니의 이야기다. 그녀는 작가로 성공했다. 그날의 이야기를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데 작품은 사실을 다르게 다룬다. 스포가 될 것이므로 이 반전은 말하지 않겠다.


많은 소설이 영화가 된다. 많은 경우 영화가 원작인 소설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연하다. 며칠 동안 몰입과 충성을 주는 독서라는 행위는 적극적이다. 그걸 두어 시간에 압축해 보여주는 영화는 우리를 (독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방관자로 만든다. 투자가 커야 성취감도 큰 법이다.


이 영화는 약점이 최소화되었다. 불필요한 각색 없이 원작에 충실했다. 책의 매력, 영화의 매력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사건을 다른 인물들의 다른 시점에서 다룬 방식도 흥미로웠다. 불과 3년 반이 지난 시점인데 브리오니 역할의 배우가 바뀐 것은 옥에 티. 마지막 반전은 소름 돋는 압권이다.


어리고 무지했던 브리오니의 속죄는 3단계였다. 대학을 포기하고 간호사가 된 것이 1단계, 사촌의 결혼식을 들러 언니를 만나러 간 것이 2단계다. 그러나 진정한 속죄의 기회는 없었다. 3단계 속죄는 2단계를 무력화하는 이야기의 힘으로 성립되었다.(스포일링 우려로 추상적으로밖에 소개를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어떤 죄는 찰나고 어떤 속죄는 평생의 시간이 든다. 그 시차에 어지럼이 인다. 소설 속죄와 영화 어톤먼트로 인간 내면을 여행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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