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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은 갈라지는가

9화 유투부 시대와 조선의 분열

by 이지완


작금의 조선 정국은 불안정이 극에 달해 있다.


연산군 시절의 무오사화, 중종 시절의 기묘사화 이후 가장 큰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왕의 충성파와 견제파 간의 대립은 동서고금 항시 있어 왔다.


그럼에도 정치란 것은 본디 갈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견을 좁히면서 타협을 모색하는 과정이 고관대작 나으리들의 임무일 터.


그러나 지금은 자당의 독식을 도모하는 걸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다.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이 상대를 배척하게 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만들어낸다.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긴 것은 다름 아닌 유투부(遺鬪富-싸움과 부유함을 남긴다는 뜻)라는 신문물이었다.


조선뿐 아니라 만국의 백성들은 이십 수년 전부터 손안에 작은 기계를 들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수마투포누(手摩妬砲漏)라는 것인데 손으로 누르면 시샘하는 마음이 포탄과 같이 새어 나온다는 뜻이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오락물들이 있는데 유투부도 그중 하나다.


사람들은 유투부 창에 활동사진을 올리는데 이것으로 생업을 삼거나 심지어 졸부가 되기도 한다.


재화를 많이 벌려면 백성의 이목을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자극적인 활동사진을 보여야 한다.


남산골의 선비처럼 점잖은 것만 올렸다가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풍악 시전, 식음료 섭취, 실험, 전자오락 중계, 타국 유람, 교양 습득, 신문물 소개, 아녀자 구경 등 다양한 내용들이 있다.


사회갈등에 불을 지른 것은 정치 유투부(遺鬪夫)들이다.


이들은 한쪽을 노골적으로 편들고 반대편을 심하게 모함한다.


마치 투견이나 소싸움을 부추기는 것 같다.


온갖 험한 말들을 쓰고 심지어 진실을 교묘히 바꿔가면서 자기 편의 득세를 도모한다.


이들의 활동사진을 보는 백성들은 생각했던 바가 확실해지고 믿음은 굳건해진다.


조정의 벼슬아치들도 사간원뿐 아니라 유투부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중에는 윤종(尹宗)도 있었다.


그는 유투부를 통해 정치를 배우고 지지 기반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간원의 쓴소리는 그에게 너무 괴로웠고 유투부는 눈과 귀에 달았다.


성균관 학자들은 이를 두고 '확증편향'이라 부르는데 보는 걸 믿는 게 아니라 믿는 대로 보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소통과 타협을 저버리고 외골수에 빠지기 쉬운 이유가 되는 것이다.


렬은 전형적인 뺄셈의 정치를 하였다.


자기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계속 갈아치웠는데 홍당(紅黨) 수장들은 벌써 여러 번 바뀌었다.


그중에는 분홍당(分紅黨)의 이중석도 있다.


사실 그는 젊은 당수로서 렬이 왕관을 차지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렬은 심기를 건드린 그를 놔두지 않았다.


최근에 훈(訓)을 내쫓은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홍인 세력의 정상적인 지도부 기간이 길지 않고 대행이나 비대위 등으로 어수선한 기간이 훨씬 길었음은 윤종의 뺄셈 정치를 반증한다 하겠다.


위 이름들은 가명임을 밝혀둔다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렬(列)은 수상한 발언을 일삼았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부정식품이라 하여도 궁핍한 백성들은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 줘야 마땅하오. 이거 먹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극빈한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일천한 자는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를 못하오."


왕위에 오르고 나서도 설화(說禍)는 이어졌다.


"내부 칼질이나 하던 수장이 낙마하니 홍인이 달라지지 않았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이오."


"무속이 웬 말이오? 내 처는 예가(豫家)를 신봉하여 구약성서를 통째로 외는 여인이올시다."


"민의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쪽팔려서 어찌하겠는가?"


"처소에서 지쳐 잠들었다 깨면 중전이 과인의 수마투포누로 밤새 누군가와 통신을 하고 있는 것이오."




집권 초기 그는 일부 사간원 집단과 극렬히 대립하였다.


특히 눈엣가시와 같던 애무비시(碍無非是) 소속의 사간원 정언(正言)들에게는 전용 날틀 탑승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개엄 이후 밝혀진 사실은 렬이 유투부에 푹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개엄 선포 당시에는 밝히지 않았으나 이후 담화에서 부정선거를 운운한 것도 이를 반증한다.


이미 극단적인 유투부들이 선거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고 음모론은 널리 퍼져갔다.


그것이 윤종의 머릿속까지 침투하여 개엄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들이 문제삼은 것은 청인이 압도한 스물두 번째 민의 선거다.


불리한 결과에는 일단 딴지를 걸고 보자는 심리인 것이다.


감사청, 국가정보청, 포도청 등이 여러 차례 점검하였으나 부정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퍼뜨렸고 정말?, 혹시? 하는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급기야 병사들을 동원해 증좌를 찾아보겠다는 개엄 선언까지 이른 것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청인 역시 극단적 대립의 한 축이다.


청당의 수장 명(明)도 강성 지치층의 힘으로 자리 잡은 인물이었다.


소위 개딸이라 부르는 세력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를 지지하였는데 이는 온건파의 근심과 견제를 샀다.


파란색을 표방한 유투부 역시 백성의 이목을 붙들기 위해 애썼다.


그리하여 조선은 내 편과 네 편, 홍색과 청색으로 나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민의에서 다수를 차지한 명과 청인은 입법을 밀어붙였고 윤종과 홍인의 거북권을 행사하여 거북한 심기를 숨기지 아니하였다.


청인은 다시 탄핵으로 맞섰고 이 같은 악순환은 윤종 집권 이 년 반 동안 내내 이어지다 개엄으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이상으로 주고받는 협상이 아니라 죽거나 죽이거나의 정국이 형성된 내막을 살펴보았다.


익주 월요일에는 윤종의 탄핵 결정에 앞서 경국대전심판소가 영상 한득수의 탄핵소추 결과를 먼저 발표한다.


인용일지 기각일지, 이것이 윤종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줄지, 어떤 세력이 죽고 누가 남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0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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