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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귀환이냐 파면이냐

12화 경국대전심판소 결정 미리 보기

by 이지완



"조선의 왕 렬(列)을 파면한다."


경국대전심판소장의 목소리는 우렁찼으나 긴장한 듯 가늘게 떨렸다.


심판소 방청석에서 환호와 탄식이 동시에 나왔다.


피청구인 자리에 앉은 렬(列)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상체를 숙인 채 두 팔로 책상을 짚은 것이 전형적인 윤종(尹宗)의 자세였다.


'아, 이게 무슨 망신인가? 도대체 앞으로 이 나라를 어찌해야 하는가?'


그를 변호해 온 율사들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편 심판소 서쪽에 앉아 있던 자들은 환호와 함께 두 팔을 높이 들며 기뻐했다.


민의(民議) 대표자 정정래는 율사들과 얼싸안았다.


대래비전(代來飛全-대신 날아와 온전히 보여주는 신문물)과 유투부(遺鬪富-싸움과 부유함을 남기는 신문물)로 지켜보던 팔도의 백성들도 둘로 쪼개졌다.


재판소 주변 북촌은 며칠 전부터 출입이 통제되었다.


인근의 조선현대미술관, 고조선(古朝鮮)의 옛 궁궐인 경복궁도 관광을 금하였다.


그래도 경비구역 밖 육조대로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파란 깃발이 펄럭이는 쪽은 함성과 환호로 시끄러웠고 빨간 쪽은 침울함에 조용해졌다.




경국대전심판관은 여덟 명이었는데 그중 일곱이 인용을 택하였다.


여섯 이상이 찬성해야 렬의 파면이 결정되는 구조였다.


한 명만이 기각 의견을 냈는데 왕이 저지른 죄가 파면에 이를 만큼 중하지는 않다고 보았다.


나머지 다수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 전시 혹은 그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 아님에도 계엄을 선언한 것은 경국대전을 위배한 것임

- 계엄을 위해서는 어전회의를 거쳐야 함에도 얼렁뚱땅 대충 하여 절차를 위반함

- 전조(全祖)의 포고령을 잘못 베꼈다고는 하나 구시대의 폭압을 따라 하여 혼란을 야기함

-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이유로 군사를 일으켜 민의를 폐쇄하고 정적을 체포하려는 의도의 불순함이 인정됨




삼십여 분의 결정문 낭독이 끝났다.


렬은 즉시 왕위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내란죄뿐만 아니라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죄목도 소추가 가능하게 되었다.


명(明)을 위시한 청인(靑人)은 한껏 고무되었다.


"경국대전심판소의 결정을 환영하며 조속히 나라가 안정되도록 노력하겠소."


그러나 홍인은 실망과 좌절감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였다.


홍인의 임시 수장은 권영새인데 이렇게 말하였다.


"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긴 하나 납득하기 어렵소. 북쪽 오랑캐의 사상에 지배된 판관들이 어찌 올바른 판단을 하였겠소? 백성들의 상심이 깊어 심히 우려되오."


홍인 과격파 몇은 극성 지지자들의 반란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이들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면서 재판소를 불태워 없애 버려야 한다고 외쳤다.


허나 지난번 서부재판소 습격 사건 때문인지 이번에 폭동은 없었다.


이거도 성숙이고 발전인가?


온갖 일들을 겪어야 비로소 조금 나아지는 것인가?


이제 조선은 두 달 안으로 새 국왕을 뽑아야 한다.


잠룡(潛龍)들의 기지개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이다.


(1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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