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최종화 석렬군이 조선에 남긴 숙제
본 사관(史官)의 예상대로 조선의 왕, 렬(列)은 파면되었다.
을사년 사월 나흗날 오시(午時) 이십이 분이었다.
"경국대전심판소 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렬을 파면한다!"
유력했던 윤종(尹宗)이라는 묘호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그는 사가(私家)에서부터 불리던 석렬군(君)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신조선 개국 이후 근해군에 이어 탄핵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두 번째 왕이 된 것이다.
조선 팔도는 온갖 감정으로 뒤덮혔다.
기쁨의 환호, 좌절의 탄식, 안심의 호흡, 분노의 함성, 원망의 눈물, 성취의 박수 등
동짓달 사흗날 이후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다.
임인년 호랑이 띠 봄에 호랑이처럼 등극한 렬.
그는 신(新)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특이한 왕이었다.
사헌부가 배출(혹은 배설)한 첫 대통령이면서 스스로 사법의 굴레에 빠진 인물이다.
사헌부 장령과 집의, 대사헌에 오를 정도로 그는 실패를 모르고 성장하였다.
강직한 성품이 백성들의 마음을 사 왕권까지 쥐었지만 되려 그 강직함이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
수사와 국문을 통해 사람을 죄 주던 사람에게 정치는 매우 복잡하고 힘든 일이었다.
"망치는 모든 문제를 못으로 본다."
이 말이야말로 렬의 비극을 가장 잘 표현한 비유일 것이다.
경국대전심판소의 최종 판결문에서도 정치의 실종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다.
"대화와 타협, 즉 정치적으로 풀어야 마땅한 문제들을 사법의 영역으로, 급기야는 무력의 수단으로 풀고자 하였다. 이는 조선의 국가 운영원칙에 부합하지 아니한다."
"청인의 무도한 벼슬아치 탄핵 등으로 정상적인 통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렬은 큰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최고권력자가 슬기롭게 풀어야지,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었다."
"경고성, 호소용 개엄이란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뜨거운 서빙고 얼음'이라 하겠다. 개엄은 그리 쉬이 하는 것이 아니며 신조선의 역사에서 불법적인 개엄으로 얼마나 큰 희생이 있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경국대전과 기타 법을 위반하고 정적(政敵) 제거를 위한 개엄임이 인정되며 그를 파면하여 얻는 이득이 직을 유지시킬 때의 이익을 압도한다."
이제 조선은 역사의 한 장을 넘겼다.
렬의 등장과 등극, 퇴장까지 거치면서 깨달아야 한다.
임금 하나가 나라를 얼마나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 조선은 목도하였다.
사람은 사람을 잘못 볼 수 있다.
백성은 임금 깜을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임금 하나가 전횡을 일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나라의 체계이다.
명(明)이든 훈(訓)이든 경상 관찰사든 한성판윤이든 그 누구든 유월에 대권을 잡을 것이다.
그러나 팔도의 백성은 이제 안다. 알아야 한다.
권력은 쥐겠다고 발악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휘둘러 시위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뽑아준 백성의 것이며 이를 무시하는 권력자는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는 사실...
신조선의 가장 뜨거웠던 임금 석렬군.
그의 시대는 저물었다.
그와 건(乾)의 운명은 풍전등화처럼 흔들릴 것이다.
마땅히 사필귀정의 과정도 거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정의를 주장하는 자와 통합을 외치는 자가 또 대립할 것이다.
역사는 직진하지 않고 우회한다.
그러나 결코 뒤로 흐르지는 않는다.
렬이라는 우회를 거친 조선,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
본 사관도 백성의 일인으로서 계속 지켜볼 것이다.
(그간 읽어 주셔서 감사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