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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Oct 15. 2019

덕질의 역사

경험의 취향 #2.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끝낼 수는 없는 게 덕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누군가를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다. 이른바 팬질, 덕질을 온 생애에 걸쳐서 해오고 있다.



 덕질사의 스타트를 끊은 사람은 ‘배용준’이었다. 초등학생 때 썼던 필통과 공책의 한 귀퉁이에는 그의 얼굴 스티커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지금도 가끔 TV에 그가 나오면 엄마는 “우리 시에나가 엄청 좋아했던 배용준 나오네~배.용.준”이라며 놀릴 정도로 좋아했었다.


 이제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왜 그렇게 그를 좋아한 건지 잘 모르겠다. 훈훈한 대학생 역할이나 수천억을 버는 사업가로 출연했던 그의 모습에 끌렸던 거겠지? 그의 젊고 멋진 외모와 매력적인 드라마 캐릭터에 반했던 것 같다.



이 오빠들은 나이가 들어도 한결같이 재밌고 멋있어




 덕질사의 2세대를 차지하는 오빠들은 ‘G.O.D’였다. 중학생 시절 팬클럽에 가입하고 팬미팅 때마다 선물을 사다 바친 것은 물론이요. 최애 멤버였던 윤계상의 부모님이 운영했던 명동의 옷 가게 매출을 올려주려고 엄마까지 대동해 쇼핑하기도 했다.


 차마 내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 흑역사지만, 그들이 너무 좋아 무작정 따라하고 싶은 마음에 코스프레 클럽도 어슬렁거렸다. 열심히 기웃거렸지만 타고난 몸치에 박치로, 춤 실력이 아주 형편없었다. 어느 순간 이런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고등학교 진학을 핑계로 팬질과 코스프레 클럽을 그만둬버렸다.



 3세대를 차지한 건 의외의 인물로, 일본 소설 작가인 ‘에쿠니가오리’였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갇혀 있다 보니 연예인을 따라다닐 수 없었다. 대학교 입시에 대한 자각도 자연스레 생겼다. 연예인 대신 근처 남고의 한 친구를 짝사랑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포스터. 영화도 재밌다

 그를 좋아하며, 한창 유행했던 에쿠니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었다. 소설 속 사랑이야기는 그동안 해왔던 덕질과 달랐다. 절절한 사랑이야기에 홀려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을 연달아 읽었다.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어쩜 그렇게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건지. 또 사랑에 대한 철학은 얼마나 확고한지. ‘나도 이런 어른의 사랑을 하고 싶어.’ 라는 소녀의 마음으로, 소설을 쓴 작가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자 연모의 대상은 ‘신민철’이라는 모델로 확 바뀌었다. 『I’m a model』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를 처음 발견했다. 무뚝뚝해 보이는 차가운 인상과 반대되는 수줍은 미소가 귀여웠다. 미니 홈피를 통해 그의 일상까지 보면서 더 친근하게 느꼈다. 그는 꿈을 위해 콤플렉스였던 턱을 교정하면서까지 끊임없이 자기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대학편입 준비로 고민이 많던 내게 큰 자극제로 다가왔다.


 그가 패션 위크의 높은 무대에 데뷔한 날, 워킹을 하며 꿈을 이룬 모습을 보며 그날로 마음을 정리했다. 문득 나도 이제 남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일은 그만하고, 내 꿈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편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덕질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아이돌 ‘샤이니’였다. 누난 너무 예뻐~♪ 마음을 작정하고 훔칠 때는 관심도 없었다. TV속 그들을 보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설마 내가 쟤들은 좋아하나? 의심에는 확인이 필요했다. 나는 헷갈릴 때는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었다.

 공개방송 선착순 입장에서 잘릴까봐 조마조마 했다. 이미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스튜디오에서 하는 녹화였고 기세가 등등했던 다른 보이그룹도 함께였다. 팬들 사이에 응원 경쟁구도가 만들어졌다. 마음을 확인할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내 새끼들이 지는 꼴은 볼 수가 없어서 엄청 큰 목소리로 응원했다. 무대가 끝나고 리더였던 온유가 팬들을 향해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그래. 덕질을 하려면, 이런 애를 좋아해야지.’라며 마음을 굳혔다.


 샤이니가 ‘링딩동’을 타이틀곡으로 활동하는 동안 몇 번의 지방 무대를 제외한 모든 곳에 쫒아 다녔다. 처음 한번이 어렵지.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것이 현장 덕질이었다. 음악프로그램 사전녹화, 지방행사, 사인회, 고정출연 중이었던 『스타킹』 녹화까지 일주일에 4번 이상은 봐야 직성이 풀렸다. 두 명의 언니와 함께 전국 팔도 열심히 따라 다녔다. 좀 더 가까이 보기위해 기자인척 하려고 듣보잡 신문사의 명함을 파기도 했다.


 덕질에도 지켜야할 룰이 있었다. 바로 ‘사생 팬은 되지 말자.’였다. 거의 매일 만나던 우리에게는 농담이 하나 있었는데, “어떻게 샤이니 얼굴을 엄마보다 자주 보냐?”였다. 지금 생각해도 픽 하고 실소가 터진다. 빛나던 샤이니는 첫 연애를 시작하면서 추억 속으로 저물어갔다. 서서히 나의 덕력도 소멸할거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고 덕질의 역사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나의 최애는 배우 ‘박정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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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중략된 이야기는 <안녕, 나의 취향!> 책을 통해,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bookk.co.kr/book/view/69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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