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하이록스 서울 Ep.2

2025년 11월 9일 9시 20분

by 태빅스

Chapter 4. 무너지지 않기 위한 첫 걸음

출발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응원석에서 함성이 쏟아졌고, 모든 참가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러닝 코스에 뛰어들었다.


첫 1km 러닝 구간.

이번엔 기록을 줄이는 것이 목표였지만,

시작부터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6개월 동안 준비했던 모든 동작들을 떠올리며 호흡을 고르고, 내 리듬을 천천히 찾아갔다.


‘이번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그 한 문장만 되뇌었다.

5월 인천에서 완전히 무너져내렸던 기억들과

지금으로부터 2주전, 춘천마라톤에서 지옥같았던 순간들.

그리고 그 이후 회복이 잘 되지 않아 괴로웠던 날들

모든 장면이 머리속을 스쳐갔지만, 이제는 내 옆의 파트너, 그리고 내가 쌓아온 시간을 믿어야 했다.


앞쪽에서는 이미 속도를 올려 치고 나가는 러너들이 보였지만 우리는 계획한 대로, 흔들림 없는 페이스로 가기로 했다.


이번 대회 전, 파트너와 나는 러닝을

km당 4분 50초로유지하기로 약속했었다.

첫 1km는 늘 가장 중요한 구간이다.
여기서 흥분하면 뒤에서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NEXT

Workout 1


첫 번째 스테이션으로 들어가기 직전, 록스존 입구의 IN 아치를 지나쳤다.
시계의 랩 타임 버튼을 눌렀다.


03'42"/km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들어왔다.


01. SkiErg


18056_20251108_090015_587870451_original.JPG 스키 에르그(하이록스 서울 공식 사진)


첫 스테이션, 스키에르그 1,000m.
내가 먼저 시작하기로 했던 구간이다. 여기서 절대로 흥분하면 안 된다.

특히 첫 스테이션은 뛰고 들어온 직후라 체온이 올라 있고 몸이 잘 풀려 있어 더더욱 욕심을 눌러야 한다.

우리는 250m씩 교대하기로 했고, 그대로 지켰다.
오버만 하지 않으면 큰 변수가 없는 스테이션이기에 둘 다 차분하게 리듬을 맞췄다.

순조로웠다. 약속처럼 우리가 평소에 내던 페이스보다 한참을 내려서 스테이션을 진행했지만
스키에르그는 금방 끝났다.

다시 록스존을 지나 러닝존으로 진입했다.


두 번째 1km 러닝.

“심박수 몇이에요?” 내가 물었다.
“지금 164요.”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 러닝을 끝내고 록스존에 진입하며 시계의 랩타임 버튼을 눌렀다.


04'42"/km


계획보다 조금 빠르지만, 아직 괜찮았다.

두 번째 스테이션 입구가 보였다.


02. Sled Push


록스존에 들어가니 저 멀리서 저지(심판)들이 우리가 운동을 수행해야할 레인으로 안내했다.

다른 사람들이 운동을 수행하고 있는 레인들을 지나 우리의 레인 앞에 섰다.


우리는 이 슬레드 푸시를 가장 경계하고 있었다.
지난 5월 인천에서는 사실상 이 구간부터 무너지며 모든게 꼬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파트너가 체력적으로 크게 흔들렸던 곳이라, 이번에는 어떻게든 안정적으로 넘기고 싶었다.

첫 러닝 두 개를 깔끔하게 가져온 덕분인지 다리도 아직 가볍고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이번 슬레드 푸시도 내가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총 50m를 밀어야 하고, 총 4번을 끌어야 하는데 1번 끄는데 길이는 12.5m.

나와 파트너는 지난번과 같이 6.25m씩 끌고 교대하기로 했다.


슬레드는 생각보다 잘 나갔다. 미는 속도도 우리 둘 다 나쁘지 않았고 교대 속도도 좋았다.

하이록스 두 번째 스테이션, 슬레드 푸시(Sled Push)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의외로 슬레드 푸시도 큰 문제 없이 금방 끝났다.

스테이션을 빠져나가 록스존을 거친 뒤 다시 세 번째 러닝을 시작 했다.


Chapter5. 이번엔 달라졌다.

세 번째 러닝이 시작됐다.

아직 호흡도 괜찮았고, 힘도 크게 들지 않았다.

두 번째 러닝까지의 흐름이 좋아 슬레드 푸시, 슬레드 풀까지 한 번에 밀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우리는 계획한 페이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앞만 보면서 호흡에 신경썼다.


NEXT

Workout 3


전광판에 다음 운동을 수행하라는 지시가 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다.

세 번째 러닝을 마치고 록스존 입구로 들어섰다.

슬레드 풀 레인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다시 한 번 저지들의 안내를 따라 우리가 운동을 해야할 레인 앞에 섰다.


18056_20251108_081453_587870438_original.JPG 슬레드 풀(하이록스 서울 공식 사진)

슬레드 풀도 총 50m를 밀어야 하고, 총 4번을 끌어야 한다.

슬레드 푸시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6.25m씩 끌고 교대하기로 했다


슬레드 풀은 내 파트너가 먼저 시작하기로 했었다.

"자 집중! 화이팅!" 내가 파트너의 뒤에서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18056_20251109_094047_587735495_original.jpg

파트너가 줄을 당기며 슬레드 풀을 시작했다.

힘은 들어보였지만 막힘은 없었다. 지난 번 처럼 망설임도 없어보였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끌려왔다.

"교대!" 파트너가 줄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이젠 내 차례였다.


사실 현재 다니고 있는 크로스핏 박스에는 슬레드 동작을 연습할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이번 대회도 8월 쯤 하이록스 시뮬레이션을 할 때 빼고는 해본적도 없고, 아무튼 슬레드 풀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동작이다.

이유는 내가 너무 못하기 때문에.


슬레드를 하고나면 체력이 급속도로 저하가 오는 것도 매 대회마다 느꼈기에 슬레드는 항상 겁이났다.

그래서 이번에도 줄을 잡기 전까지는 '아 또 엄청 힘들겠구만..' 하는 생각으로 슬레드 앞에 섰다.
평소처럼 그냥 하던 동작대로,익숙한 템포로 첫 당김을 하면
언제나처럼 버티는 느낌이 먼저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줄을 잡고, 숨을 한 번 고르고, 정확히 내가 당길 수 있는 만큼의 힘을 줬다.

슬레드가 내가 넣은 힘보다 더 쉽게 앞으로 끌려왔다.

순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힘을 더 준 것도 아니고,특별히 큰 동작을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냥 평소 하던 그대로 당겼을 뿐인데
슬레드가 ‘저항 없이 미끄러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어…?”


속으로 짧게 놀랐다. 한 번 더 당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뒤로 크게 밀려나며 버티는 동작이 필요 없었다.
두 발은 거의 제자리에 고정돼 있었고 상체로 끌어오는 힘만으로 슬레드가 부드럽게 반응했다.

그동안 슬레드만 하면 바로 체력이 바닥나던 그 느낌, 숨이 턱 막혀오며 다리가 풀리던 그 느낌이
오늘은 찾아오지 않았다.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감각. 그게 너무 선명했다.

어느 새 슬레드는 선을 넘어와서 총 한 번 끌었다.

세 번 남았기에 반대편으로 향했다.

하이록스의 세 번째 스테이션, 슬레드 풀(Sled Pull)

두 번째 슬레드 풀 동작을 파트너가 시작했다.

파트너는 아직 괜찮아보였고 슬레드 동작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걸 느끼면서 지난번과는 다르게 자신감이 생겼다.


두 번째 부터는 케틀벨스윙 하듯이 허리를 튕겨서 자리를 이동하지 않은 채로 슬레드 동작을 진행했다.

이번에도 괜찮았다. 슬레드는 잘 끌려왔다.

지난 번 8월 스타브리드에서 하이록스 시뮬레이션 할 때 처럼 쥐가 나지 않았다.


참고: 스타브리드에서 진행한 하이록스 시뮬레이션 글


세번째 슬레드도 그렇게 순조롭게 파트너와 함께 잘 끝냈다.

이제는 마지막을 내가 당길 차례만 남았다.

파트너가 줄을 내려놓으며 내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흡은 가빴지만, 지난번처럼 눈빛이 흔들리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교대!”


나는 다시 끈을 잡았다.

이번에는 두 다리를 고정하고 상체와 팔 힘으로만 슬레드를 끌어왔다.

기대보다 훨씬 더 가볍게, 힘을 크게 주지 않아도 슬레드가 끌려오기 시작했다.

팔과 등만으로 끌어 오는게 가능했다.


“어 뭐여 이거?" 파트너가 뒤에서 나지막히 놀라며 말했다.



나도 속으로 다시 한 번 놀랐다.

몸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확신이었다.

마지막 선을 넘기고 줄을 내려놓았고 이제 슬레드 풀 존을 빠져나가며 러닝 존으로 향했다.


힘듦 속에서도 올라오는 그 묘한 감정.
체력이 바닥나던 느낌도, 다리가 풀리던 느낌도 오늘은 찾아오지 않았다.

슬레드 풀.
내가 가장 싫어하던 스테이션.
그리고 매번 가장 먼저 무너지던 지점.

하지만 오늘은 그 지점을 내가 넘어섰다.


이번엔 달라졌다.

정말 기록을 잘 세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p.2 끝,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