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록스 시뮬레이션, 그리고 무더위 속 내 상태 점검
작년, 하이록스 전문 센터에서 함께 운동하던 동생이 있었다.
하이록스 대회에서 여러 번 포디움에 올랐던, 말 그대로 실력자였다.
그 동생이 이사를 가며 정착한 곳에 자신의 하이록스 크루를 만들었고, 빠른 시간 안에 크루 규모가 커졌다.
속된 말로, 꽤나 핫해졌다.
얼마 전, 그 크루의 오픈톡방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하이록스 베이징 대회를 대비해 풀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는 소식이었다.
부상 이후로 줄어든 운동량, 무더위를 핑계로 실내 크로스핏만 해온 나,
그리고 장시간 하이록스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파트너.
이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하이록스 시뮬레이션.
이름만 보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하이록스의 모든 과정을 대회와 똑같이 진행하는 것이다.
하이록스는 1km 러닝과 8개의 스테이션을 번갈아 수행하는 경기다.
스키에르그, 슬레드 푸시·풀, 버피 브로드 점프, 로잉, 파머스 캐리, 샌드백 런지, 월볼샷까지.
러닝에 강점이 있다면 유리한 점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종목에서 반드시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체력, 근력, 지구력 모두가 받쳐줘야 한다.
아무튼 이걸 또 다시 할 생각을 하다니 아득했지만 결국 미리 매를 맞아서 내 상태가 과연 어떤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더 컸다.
이곳은 노량진에 위치한 한 하이록스 전문 센터였다.
원래는 경찰과 군인 같은 공무원들이 체력 훈련을 위해 찾던 곳인데, 이 센터와 연계해 하이록스 크루가 형성됐다고.
오랜만에 본 그 동생은, 센터에 들어오는 우리를 보며 활짝 웃었다.
“아니,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
“요즘은 하이록스보다 크로스핏에 더 열심이던데... 하이록스 그만둔 거 아니죠?”
"에이 그럴리가."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안 그래도 심각하다 생각해서, 한 번 매 맞으러 온 거야.”
“아, 지난번 인천 대회 때 다친 건 좀 어때요?”
"조금 운동량이 올라갔다 싶으면 신호를 보내긴 해서 많이 조절하고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와 같은 시간에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팀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센터는 생각보다 넓었다.
한쪽 벽면에는 무동력 트레드밀과 로잉, 스키 머신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고,
중앙에는 슬레드 푸시와 풀을 위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버피 브로드 점프를 해도 모자람이 없는 길이.
그야말로 하이록스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자, 첫 타임 하이록스 시뮬레이션 하시는 분들 모여주세요.” 크루장이었던 그 동생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시뮬레이션의 시작이었다.
참가자는 나와 파트너를 포함해 총 네 팀.
간단히 각자의 출전 대회와 부문을 확인하고, 출전 경험이 있는지도 서로 묻고 답했다.
하이록스의 전체적인 방법을 다시 한 번 설명을 들었다.
우리야 2번을 출전했지만 최근 인지도가 많이 늘어나 핫해지는 하이록스를 처음 출전하는 사람들을 위함이었다.
“이번 시뮬레이션은 트레드밀 런이 아니라, 야외 1km 러닝부터 진행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스테이션에 들어갈게요. 자, 러닝 코스 익히러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이 더운날에?
우리가 센터로 들어왔던 우측 끝에 쪽문이 보였다.
저게 왜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유가 다 있었구나.
문을 열자 숨이 턱 막히는 공기가 들이쳤다.
피부를 감싸는 습기와 뜨거운 햇빛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아… 이건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첫 주.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2025년 여름의 한국 날씨가 어떤지 다들 알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걸 몸으로 증명하게 됐다.
센터 밖으로 나가, 크루장 동생의 리딩에 따라 러닝 코스를 익히기 시작했다.
코스는 쪽문을 나와 계단을 내려온 뒤 500m를 달려 반환하는 총 1km.
문제는 첫 500m였다. 얕게 이어지는 업힐, 그늘이라고는 거의 없는 길.
햇빛은 정수리를 직격했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습도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아직 시뮬레이션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앞으로 닥쳐올 고통이 그려졌다.
차라리 뭘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하이록스의 모든 과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러닝 코스가 쉽지 않으니 그게 더 무서웠다.
1km를 달린 후 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땀이 벌써부터 주륵주륵 흘렀다.
물을 한 잔 마시고 파트너와 함께 스테이션별 전략을 다시 한 번 체크 했다.
지난 번 인천대회 때와 똑같이 가기로 했다.
단, 로잉은 250m씩 번갈아가기로.
"자 다들 다치지 않게, 시뮬레이션 진행해 주시고! 20초 뒤에 출발 하겠습니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 됐다.
3,2,1
"출발!"
파트너와 쪽문을 나와 철제 계단을 내려온 뒤 러닝을 시작 했다.
"자 화이팅! 화이팅!" 파트너가 옆에서 함께 달리며 외쳤다.
더웠다. 그리고 얕은 업힐 500m가 상당히 짜증이 났다.
아직 첫 번째 러닝이라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앞으로 계속해서 피로가 누적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파트너와 함께 첫 러닝을 마치고 센터로 돌아오자, 스키에르그 머신이 저 끝에 있었다.
내가 먼저 손잡이를 잡았다.
양손에 전해지는 묵직한 저항, 한 번, 두 번, 당기기 편하게 만든 뒤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500m당 페이스는 1:50-55 초에 맞추기로 했었고 그렇게 진행 했다.
흐트러짐은 없었다.
사실 1스테이션(스키에르그)에서는 큰 변수가 나올 일이 거의 없다.
파트너와 250m씩 교대하며 안정적으로 1km를 소화했고, 총 3분 50초 가량에 마무리했다.
두 번째 러닝도 비교적 가볍게 끝냈다.
그리고 이제 모든 하이록스 대회에서 ‘통곡의 벽’이 시작되는 구간, 슬레드 푸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슬레드를 잡고 밀었다.
하체와 어깨에 평소 슬레드를 밀듯이 힘을 주고 밀었는데, 슬레드는 바닥에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 뭐야? 왜 안 밀려?”
이번에는 하체와 어깨에 힘을 꽉 주고 세게 밀었다. 밀리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조금 밀렸다.
순간,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체감은 마치 하이록스 프로 무게(202kg)를 얹은 슬레드 같았다.
파트너가 옆에서 “엥?” 하는 표정을 짓더니 앞으로 다가왔다.
“뭐야, 이거 오픈 무게(155kg) 아냐?”
“어, 맞는데?”
둘 다 슬레드에 꽂힌 플레이트를 확인했지만 이상은 없었다.
다시 힘을 줘 봤다.
역시나.. 바닥이 잡아끄는 느낌, 밀릴 때마다 발바닥 밑에서 신발마저 헛도는 느낌이 났다.
그때 스테이션을 돌며 다른 사람들을 체크하던 크루장 동생이 다가왔다.
우리는 작전대로 6.25m를 밀고 교대했다.
“야, 이거 매트 왜 이렇게 뻑뻑해?”
“저희 매트 잘 안 밀려요. 에이, 더 힘들게 훈련해봐야죠 형! 화이팅!”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 슬레드 푸시와 함께 다음 스테이지 슬레드 풀은 여기서도 ‘통곡의 벽’을 넘어 ‘지옥의 문’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로 끙끙대며 50m를 채우고 나니, 숨이 거칠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체가 벌써부터 묵직했다. 슬레드를 놓고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 번째 러닝.
파트너도 매트가 너무 뻑뻑해서 안 밀렸다며, 숨을 고르면서 궁시렁거렸다.
해가 점점 뜨겁게 지면을 달구기 시작했고 땀은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세 번째 러닝을 마치고 다시 센터로 들어섰다.
문을 통과하자마자, 저 끝에 슬레드 풀 존이 보였다.
방금 전 슬레드 푸시에서 느꼈던 그 매트의 뻑뻑함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번엔 미는 게 아니라, 잡아당겨야 한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시작했다.
발뒤꿈치를 바닥에 박듯 고정하고, 상체를 뒤로 젖혀 로프를 당겼다.
엉덩이를 케틀벨 스윙하듯 튕기며 일어났다.
원래는 잡아당기며 뒤로 발을 옮기는 방식을 두 번의 대회동안 썼지만,
최근 숙제를 내주는 코치님이 이게 훨씬 힘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며 알려준 방법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뮬레이션에서는 그 방식을 처음으로 써봤다.
확실히 거리는 빨리 끌려왔다. 그런데 여기 매트가 너무 뻑뻑해서 무게 체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슬레드를 잡아당길 때마다 매트가 바닥을 붙잡는 것 같았다.
이 것도 프로 무게와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힘들었다.
파트너도 지난번 인천 대회가 생각날 만큼 힘들어 보였다.
이미 파트너는 사실 슬레드 푸시 때 부터도 힘들다고 난리였다.
아무튼 슬레드 풀을 끝내고 이제 네 번째 러닝을 진행하려고 하니 엉덩이가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 났다.
순간 ‘아, 이거 쥐다’ 싶은 느낌이 확 왔다.
"아 잠깐만요."
허벅지 쥐는 종종 경험했지만, 엉덩이에 쥐가 오는 건 처음이었다.
웃기면서도 황당해서 잠깐 스트레칭을 하며 표정을 관리했다.
그래서 네 번째 러닝은 속도를 최대한 늦춰서 뛰었다.
다섯 번째 러닝부터는 속도를 올리려고 했는데,
한 두 걸음만 빠르게 내디뎌도 쥐가 다시 올라와서
중간엔 또 쥐를 풀기위해 걸었다.
그 와중에도 버피 브로드 점프는 호흡만 일정하게 유지하며 무난히 통과했고,
로잉은 계획대로 250m씩 교대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파머스 캐리는 양손에 케틀벨을 들고 묵묵히 걸어 나갔다.
이 세 구간만큼은 별다른 변수 없이, 그냥 루틴대로 흘러갔다.
우리와 같이 시작했던 시뮬레이션 팀중 하나는 야외러닝을 포기하고 중간에 실내 러닝으로 바꿨다.
진짜 밖은 미친듯이 더웠다. 사실 안뛰는게 맞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걸 이겨내고 싶은 생각이 조금은 더 컸기에 그래도 우리팀은 야외러닝을 계속했다.
7번째 러닝을 마치고 센터로 복귀했다.
7번째 스테이션, 샌드백 런지 100m.
엉덩이 쥐가 계속 올라오는 상태에서, 이 무게를 어깨에 메고 런지를 해야 한다니...
머릿속에선 이미 ‘여긴 지옥이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샌드백을 들어 어깨에 걸치는 순간, 엉덩이 근육에 텐션이 빡 올라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쥐가 슬금슬금 올라오더니 본격적으로 날 괴롭혔다.
엉덩이를 주먹으로 팡팡팡 하고 세게 때렸다.
쥐가 풀렸다.
다시 런지를 시작했지만, 한쪽 다리에 체중이 실릴 때마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너무 고통스러운데 그게 또 웃겼다.
나도 웃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파트너도 웃었다.
둘 다 웃으면서, "아이씨"를 외치면서 100m 지옥행 런지를 이어갔다.
파트너도 허벅지 텐션이 올라오는지 조금씩 쉬어가면서 혼자만의 기합을 넣으며 런지를 이어갔다.
나도 엉덩이에 올라오는 텐션과 쥐와 싸우며 7번째 스테이션을 끝내고 나니
8번째 러닝과 월볼이 남았다.
8번째 러닝에서도 자꾸 올라오는 쥐를 막을 수가 없어서 언덕 러닝에서는 정말 느린 페이스로 러닝을 했다.
파트너는 지난 번 대회 처럼 힘들어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 번 대회 때 처럼 '안되겠다'는 말은
입밖으로 하지 않았다.
꾸역꾸역 참아가며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중간에 걷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월볼샷 100개.
6kg의 메디신볼은 크로스핏 박스에서 9kg으로 항상 WOD를 진행한 덕분에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힘들었던건 엉덩이의 쥐가 문제였다.
다행히 쥐는 참을만한 수준으로 찾아와서 파트너와 25개씩 번갈아가며 운동을 수행하기로 했었다.
다행히 파트너도 체력을 많이 회복한 듯 보였고, 이번에는 월볼샷을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 각자 25개씩 총 4번 100개를 하고 하이록스 시뮬레이션을 종료 했다.
시계를 봤다.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 누웠다.
처참했던 지난 5월 하이록스 대회보다는 정확히 6분을 줄였다.
하지만 첫 하이록스 대회보다 여전히 2분이나 늦다.
더운 날씨, 업힐, 코스 차이… 대회와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대회는 무조건 실내에서 치러지고, 한국에서는 대체로 쾌적한 날씨에 열린다.
하지만 솔직히 그건 핑계다. 첫 대회 때도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은 그때만큼의 기량도 안 나온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지난번 기록보다 줄었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오늘 시뮬레이션을 해본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도, 우리 지난 번 대회보다는 기록을 줄였네요." 파트너가 지친 상태로 누워 이야기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는데 아 일단 고생하셨어요."
나도 파트너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이야기 했다.
너무 힘들었다.
대회는 아니었고, 대회와 같은 상황은 아니 었지만
대회와 동일한 상황을 가정하여 진행했던 시뮬레이션.
춘천마라톤까지 74일, 하이록스 서울 대회까지 88일.
하루는 장거리를, 하루는 하이록스와 크로스핏을
이렇게 번갈아 훈련하는 게 과연 효과적인 방법일까.
시간이 가까워 올 수록 불안은 더 커지고 걱정도 커진다.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을까, 대회 날에 그만큼의 힘이 남아 있을까.
오늘 시뮬레이션은 그래서 더 의미 있었다.
그래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