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니까
집 대문을 나서자, 끈적하고 습한 공기가 훅 하고 들어온다.
시간은 오전 7시 45분.
늘 하던 출근길인데, 벌써부터 모든 게 하기 싫다.
"아… 너무 피곤하다."
전날 했던 크로스핏 와드는 빡셈과 적당함 사이, 애매한 지점에 걸쳐 있었다.
잠도 그럭저럭 잤지만… 더 자고 싶었다.
개운하긴커녕, 더 무겁고 늘어진 기분이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회사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지겨운 루틴.
전날 외근까지 다녀온 터라, 메일함에는 확인할 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하나씩 클릭하며 정리하려는데, 그냥 한숨부터 나왔다.
잔잔하게 들리는 사무실의 음악소리, 일정하게 들리는 마우스 소리와 키보드 타건음.
뭔가 대단한 일도 없었고, 딱히 힘든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냥 온종일 뭔가 찌뿌둥하고 일도 손에 잘 안잡히고,
커피를 마셔도 정신이 맑아지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 반차 쓸까.' 라고 생각했지만 명분이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들 분주히 움직이며 점심을 먹으러 각자 여기저기 흩어졌다.
나도 간단히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회사건물 밖을 나서자 또 뜨겁고 습한 공기가 훅하고 들어온다.
"아 더워."
다른 의미로 정신이 번쩍 드는 날씨였다.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 오후업무를 시작했지만
아침에 느꼈던 그 피곤함이 완벽하게 덜어내지지는 않았다.
오후에도 뭔가 몸이 무겁고 눕고싶고 그런 기분이 이어졌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이 회사건물에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 피로감을 주는 느낌.
생각이 스쳤다. 꽤나 진지하게 생각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운동하러 가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집에서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며 넷플릭스나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쉬어야겠다.
하품 한 번, 시계 한 번
하품을 또 한 번, 시계도 또 한 번
오늘따라 시간이 어찌 이렇게 안가는지 6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오늘도 사무실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평소같았으면 운동을 가기위해 빠르게 움직였다면, 오늘은 집에 빨리 가기 위해 움직였다.
1시간 가까이 걸려 집으로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늘 곁에 두는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참치캔 하나와 김치까지 곁들여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이제 할 일은 하나.
소파에 누워 에어컨 바람 맞으며 넷플릭스 보기.
하지만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결국 유튜브로 넘어갔다.
추천 영상엔 또 하이록스. 얼마 전 시카고에서 열린 월드챔피언십.
그중에서도, 하이록스의 남자 엘리트 15 경기였다.
“이거 재미있겠다.” 무의식적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냥 쉬기로 한 날이었는데, 마음은 여전히 그곳을 맴돌고 있었다.
하이록스 엘리트 15. 전 세계 상위 15명의 HYROX 남녀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는
하이록스 최상위 리그이자 결승전 무대다.
몸은 쉬고 있었지만, 경기를 보는 순간 또다시 도파민이 퍼져나왔다.
오늘은 운동을 쉬었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영상 속 그들을 보며, 내 안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불이 붙고 있었다.
영상을 다 보고 이제 잘 준비를 마쳤다.
유튜브도 끄고, 크로스핏 박스의 카페를 들어갔다.
내일 운동이 뭔지, 습관처럼 확인한다.
와드 설명을 읽고, 장비와 무게를 가늠해본다.